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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우 주교님, 어떤 분이실까? 궁금하였다.

1. 인터넷 신문,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주교 임명에 관하여 비판하고 있다. 우선 그 제목부터 보자. 주교 임명, 그것이 알고 싶다.주교 임명문제, 왜 다루나. 주교의 질을 높이려면. 교황대사의 주교 임명제청권 문제없나.모든 권력은 썩는다.주교 임명에 관한 새로운 사고방식 등 모두가 요즘 정치권에서나 어울릴 법 한 것들이다.

    비판의 내용에 앞서 이 신문의 정체가 무엇인지 호기심을 일으킨다. 검색창을 열고 들어가 보니 창간의 배경이, 어떠한 교회 당국에도 예속되지 않은 독립 교회 언론이다. 세상과 교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공정하고 전문성을 갖춘 독립 교회 언론이 절실하다는 취지에 공감하는 많은 평신도, 수도자, 사제가 뜻을 모아 2009326일 창간되었다.’ 라고 한다. 독립성과 공정성의 목마름 속에서 태어났음을 말하고 있다. 이들은 기존의 교회 언론이 오염되어 독립성과 공정성을 상실하였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주교의 임명에 대한 비판은 뜻밖이다. 여기에 이르면 우리 천주교회도 부패한 일반의 사회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어쩌다 우리 교회가 이 지경에까지 왔는지 기가 막힐 일이다.

     그런데 비판의 내용들을 보면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없다. 요즘 정치권에서 일어나는 적폐청산은 문제가 된 구체적인 행위를 놓고 이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이루어지고 있다. 주교들에 대한 비판은 이처럼 그 대상을 특정하지 않아서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총체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식의 비판은 궁금증만 일으킬 뿐이다.

    이런 가운데 문창우 신부가 주교로 임명되었다. 자연스레 그에 대한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그가 어떠한 기준에 따라 임명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서품식 등 몇몇 행사를 통하여 그의 일면이나마 볼 수가 있어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동영상 속의 주교님을 따라가 보았다.

2. 주교님은 학교장 시절 학생들 사이에 있었던 일화를 소개하였다.

    <교장실을 개방하자, 학생들이 찾아왔습니다. 학생들에게 주려고 준비해 둔 계란 30개를 나눠주고 좋아할 줄 알았는데 한 학생이, ‘신부님, 계란 까주면 안 돼요?’ 하여 까주었더니 나머지 29개를 바구니에 담아가지고 와서 이것도 까주세요하여 모두 까주었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지냈던 지난 시간 안에서 하느님의 영신수련을 시작했었고, 그러나 때론 아이들을 보면서 하느님께 푸념도 많이 했습니다. 하느님, 우리 아이들이 저를 호구로 아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어느 날 주님께서 답을 주셨습니다. ‘너도 나를 호구로 알지 않으냐?’, 주님 앞에 지난날 수없이 주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살아온 저입니다.>

    여기서 주교님은 학생들의 뜻밖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지만 하느님을 향한 우리들의 태도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는 성찰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으로 보였다. 다른 화면에서 또다시 주교님 말씀이 이어진다.

3. <주교 임명을 받은 후, 하느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교구 사제들에게 지난 날 제가 사제로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직접적으로 다가가서 다투었던 적은 없었지만, ‘마음속으로 차별을 두고, 구별을 두고 판단하였던것에 대한 용서를 먼저 구하고 싶었습니다.>

1) 여기서부터는 어려워졌다. ‘하느님의 시선이란 말이 무슨 말인지 구체적으로 파악되지 않는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느님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데에 이르면 방향 감각을 잃을 정도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그것이 사람의 능력으로 가능한지 의문이다. 그럴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갈등과 부조리는 없어지고 세상은 하느님의 시선을 따라 정리 정돈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스스로의 능력으로 하느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위험한 발상이 아닐까? 더듬어 들어갈수록 안개 속을 헤매는 기분이다. 잡히는 것은 없고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그만 여기서 덮고 넘어가자.

2) ‘하느님의 시선으로 ……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고 한 부분은 겸손하게 들리면서도 공감이 안 간다. 현실성이 없다고 본다. 어떻게 마음속으로 범한 죄를 일일이 찾아가 용서를 구한다는 말인가? 마음속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할 대상은 하느님뿐이다. 우리들 사이에서는 찾아 나설 게 아니라, 혼자서 성찰하고 반성함으로써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도 직접 찾아가 고백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그럴 경우에 아무것도 모르는 당사자는 오히려 당혹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첫 번째 단계라 한 것을 보면 다음단계가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그것은 무엇일까 또 궁금해진다.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는 표현을 보면 용서의 주체는 차별과 구별의 대상이었던 사제들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 그 주체가 하느님이었다면 구하고 싶었다.’가 아니라 (임명된 순간 용서를) ‘구하였다.’고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덮고 넘기면 그만이다.

3) 놓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사제들 사이의 갈등이다. 이것이 주교님 말씀 중에 드러났다. 사제들도 사람인 이상 이상히 여길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를 대하는 태도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을 피할 수는 없다. 숙명이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해소하고 극복할 것이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갈등을 풀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나중의 문제다. 그에 앞서 먼저 갖추어야 할 자세가 있다. 이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단순하다. 서로가 마음을 터놓고 솔직하고 당당하게 인간미 넘치는 건강한 비판을 주고받으면서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해소해버리면 그만이다. 그런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달리 방도가 없다. 이것이 최선이다. 그런데 속에 꽉 담아두었다가 주교임명을 받고나서야 거창하게 하느님의 시선이니, ‘용서를 구하고 싶다느니 하면서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한마디로 소통과는 거리가 먼 일방통행이다. 이것이 사제들 생활의 한 단면이라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된다. ‘소통이 막힌 이러한 모습은 바람직한 사목자의 태도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려스럽다.

4. 학생들과의 만남에서도 푸념만 있을 뿐 소통의 모습은 안 보였다. 마지막에 <김창렬 주교님과 강우일 주교님의 영성과 비전을 본받겠다.>는 데서도 일방적인 모습만 보인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독선의 싹을 보았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사목의 기반은 소통이다. 그 대상은 평신도다. 행사장을 꽉 채운 그들을 앞에 두고서도 말씀 중에 그들에 대한 관심은 느낄 수가 없었다. 여기서 문득,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는 말이 떠오른다. 주교님한테 평신도는 어떤 존재일까? 마지막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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