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시작 : | 2020-07-02 (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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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입당송
시편 47(46),2
본기도
말씀의 초대
베텔의 사제 아마츠야가 아모스를 비난하자, 아모스는 자신이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던 사람으로 주님께 붙잡혀 예언자가 되었다며 이스라엘의 멸망을 거듭 예고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를 고치시며,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해 주신다(복음).
제1독서
<가서 내 백성에게 예언하여라.>
7,10-17
화답송
시편 19(18),8.9.10.11(◎ 10ㄷㄹ)
복음 환호송
2코린 5,19 참조
복음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9,1-8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103(102),1
요한 17,20-21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쉬우냐?” 어느 쪽이 쉬운 것일까요.
죄를 용서하는 일은 하느님께만 있는 권한으로 다른 이에게는 불가능하지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은 쉽습니다. 왜냐하면 죄를 용서받은 결과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그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중풍 병자에게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여 쉬운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가 정말로 일어나서 걸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에는 결과가 명확히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죄를 용서받았다.’라고 말하는 것이, 말하기에는 더 쉽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더 어렵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시며 당신 자신을 증명해 보이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중풍 병자는 “일어나 집으로” 갑니다. 오늘 복음은 역설적으로 예수님의 권한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를 낫게 하는 더 어려운 일을, 실제로 그가 병이 나아서 걸어가게 하실 수 있는 분으로 드러나십니다. 따라서 “죄를 용서받았다.” 하신 말씀 역시 이루어질 수 있고, 예수님께도 하느님처럼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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