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시작 : | 2020-09-10 (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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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입당송
시편 119(118),137.124
본기도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성장하게 한다면서,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는 문제를 이야기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약한 형제들의 양심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8,1ㄷ-7.11-13
화답송
시편 139(138),1-3.13-14ㄱㄴ.23-24(◎ 24ㄴ 참조)
복음 환호송
1요한 4,12
복음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6,27-38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42(41),2-3
요한 8,12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어렵다고, 그래서 예수님 말씀을 실천하려면 상당한 노력과 깊은 신앙심이 있어야 한다고들 말하겠지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원수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우리는 복음 말씀의 실천이 어렵다고 합니다.
성급히 단정 지어 말하자면, 원수는 바로 우리 자신이 아닐까 합니다. 다른 이가 내뱉는 몇 마디로 원수라 규정하고, 이웃의 불편한 행동 몇 가지로 ‘웬수’를 만들어 버리는 우리의 옹졸함이 상상의 원수를 매일같이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의 막바지에서 원수를 사랑하는 이유를 이렇게 정리하십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원수를 사랑하겠다는 결기는, 우리가 때로는 타인을 너무나 차갑게 심판한다는 것을 전제하는데, 이를 기억해야 합니다. 서로 뜻이 다른 것을 두고 ‘틀렸다’ 말하고, 비판이라는 미명 아래 비난을 일삼고서, 그럼에도 나는 용서하고 사랑한다고 낯 뜨거운 언행을 밥 먹듯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우리가 원수마저 사랑하는 것은, 우리 존재의 목적과 이유를 위한 것이지 타인의 잘잘못을 심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 아버지처럼 자비롭게 되는 것, 나의 용서로 나의 삶이 사랑으로 풍요로워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사랑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에게 애당초 원수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겠지요. 원수는 내 마음이 만든 우상입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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