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시작 : | 2021-07-02 (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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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 연중 제13주간 금요일
입당송
시편 47(46),2
본기도
말씀의 초대
아브라함은 죽은 아내 사라를 안장하고, 자신의 고향으로 종을 보내 레베카를 데려오게 하여 아들 이사악의 아내로 맞아들이게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세관에 있던 마태오를 부르시고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드시며, 당신께서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이사악은 레베카를 사랑하였다. 이로써 이사악은 어머니를 여읜 뒤에 위로를 받게 되었다.>
23,1-4.19; 24,1-8.62-67
화답송
시편 106(105),1ㄴㄷ-2.3-4ㄱ.4ㄴ-5(◎ 1ㄴ)
복음 환호송
마태 11,28 참조
복음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9,9-13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103(102),1
요한 17,20-21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하루를 살아가며 수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그러나 그들을 전부 알지는 못합니다. 현대인들은 많은 경우에 자신이 가진 간단한 정보로 타인을 받아들이고 판단합니다. 그가 어디 출신이며 어떤 일을 하는지, 나이는 어떻게 되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느 학교에 전공은 무엇인지 등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또한 그 사람이 어디에서 살고 생활 환경이 어떠한지,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는지에 따라 미리 그를 판단합니다. 누군가를 깊이 알아 가며 인격적인 만남을 바라기보다는, 자신의 이익과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만남을 이어갑니다.
오늘 복음의 바리사이들도 그러한 시선으로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고 만납니다. 바리사이들은 세리인 마태오를, 민족을 배신하고 돈만을 쫓아 살아가는 파렴치한으로 판단합니다. 그와 함께하는 사람들 또한 죄인이며 배신자로 결론 내립니다. 그러한 선입관에 사로잡힌 바리사이들은 세리와 죄인과 함께하시는 예수님조차도 그들과 같은 부류로 판단해 버립니다. 그들의 선입관에는 자신은 깨끗하고 의인이라는 자만심이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님도, 마태오도, 그리고 다른 세리와 죄인도 진정으로 만나지 못합니다. 그 선입관과 자신의 욕심 때문에 그들에게 다가가지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지도, 그리고 그들을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서슴없이 마태오에게 다가가시어 그와 함께하십니다. 색안경 너머로 보이는 모습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그들을 바라보십니다. 그리고 그들 각자의 가난함에 함께 자리하십니다. 슬픔과 두려움, 고민과 갈등에 휩싸인, 그리고 병들어 있는 그들의 아픔에 다가가십니다. 그것이 그분의 자비이며,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어떻게 만나고 있습니까? 그가 가지고 있는 무엇인가로 그를 쉽게 판단하고 그가 나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를 따져 가며 그와 함께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의 만남으로 그들에게 다가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최종훈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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