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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5일 강정

2014.04.25 16:15

자발적 가난 조회 수:211

하느님 창조 사업의 완성은 평화입니다.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지금부터 강정마을은 온통 감귤 꽃향기로 가득합니다.

그 향기가 우리들에게 황홀함을 선물합니다.

자연이 베푸는 이 황홀함에 해군과 삼성의 파괴는 계속됩니다.

미사 강론을 녹음을 들으면서 작업을 하다보면

지속적으로 들리는 망치소리 딱 딱 딱 딱 딱

구럼비가 파괴되는 소리입니다.

예수님께서 못 박히는 소리입니다.

우리는 부활하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평화를 말하고 노래합니다.

평화를 위한 우리의 기도는 여러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일본에서 스님 한분이 오셔서 해군기지를 향해서 북을 칩니다.

평화의 소리가 사람들에게 울려 퍼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공권력인 경찰은 비웃으며 강제 이동하고 감금합니다.

그리고 경찰 공무원이라는 사람들이 신분증도 없이

공무 수행이라는 이름으로 체증합니다.

  평화.jpg

 

파괴.jpg


 

425일 부활 팔일 축제 내 금요일

 

주례 강론 홍 윤학

 

찬미예수님!

오늘 우리는 강정 생명평화 기원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사무실에 갔다가 대한민국의 천주교를 수호하는

천주교인 모임 일명 대수천이라는 집단에 편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편지에서 과연 강정 길바닥에서 바치는 미사가 정당 합니까?

라는 질문을 봤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어떠한 미사를 좋아 하실 지는 우리들이

더욱 잘 알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냥 안주하고 형식적이고 따뜻하게만 보내는 미사 보다는

진정으로 낮은 이들과 함께 하셨던 그분의 삶을 보면서

이 자리에서 드리는 미사가 예수님께서 바치셨던

하느님께 드렸던 그러한 영광과 경배를 더 올리는 그러한

미사가 아닌가?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되 살아 나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모습을 보게 됩니다.

베드로가 나는 고기 잡으러 간다.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제자들은 고기를 잡으러 가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불렀을 때 베드로는 배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돌아가시자 절망에 빠진 나머지

자신의 일상생활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마침 사순시기를 보내고 다시금 기쁜 마음으로 부활을 맞이해서

생활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과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모습과 당신의 행동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십니다.

사순시기에 수난하고 고통 받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다면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우리는 또 한 번

바뀌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사순시기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그 모습이 과연 우리가 사순시기를 보냈던

부활을 체험 하는 우리들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하는 모습인지?

반성을 해보게 됩니다. 지금 이곳을 돌아보면 많은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서 관심도 줄어들고 적당히 세상일에 맞추어 가면서

생활하고 있음을 바라보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런 우리들의 삶을 끊임없이 질타하시죠.

그리고 우리들의 삶의 방향을 다시 한 번 제시해 주십니다.

바로 이 부활이라는 이 시점이

예수그리스도의 영광의 마지막이 아니라 그분의 영광의 시작임을

예수님께서는 끊임없이 이야기 하시죠.

바로 지금 이곳 강정에서도 이 시간 매 순간 생명의 외침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누가 어떠한 말을 해도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광은 바로 이곳 강정에서 다시 한 번 실현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평화라는 이름으로 실현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들의 증인이 바로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바라보고

당신의 일의 증인이 바로 우리들이라고 이야기 하시죠.

예수님 부활의 영광 그 영광을 증언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우리들이라면 우리 역시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진정으로 바라보고 다시금 세상에

세상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 사업

즉 어제 복음에서 이야기한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를

선포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또한

달라져야 합니다. 지치고 힘들어서 포기하는 그리고 위선의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본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을 체험했던 제자들의 시선으로

다시하번 바뀌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달라진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야 할 일을 찾고 그 해야 할 일들을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다 해야만 하겠죠.

사실 우리들의 현실이 일상생활 안에서 그냥 흘러간다!

그냥 매일이 똑같다! 라고 하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

헛된 삶을 헛된 시간을 보내는 분들도 참 많죠.

하지만 예수님께서 보여 주셨던 수난의 시간과 부활의 영광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닙니다.

우리들을 위해서 우리들을 사랑하시기에 우리들을 구원하시기에

심지어는 인간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신 스스로

목숨을 내 놓으신 소중한 시간입니다.

부활이라는 시간이 우리들에게 변화를 가져오지 못 한다면

그것은 시작이 아니라 마치 우리들의 일상처럼

그저 그렇게 지나가고 공허하게만 흘러가는 시간입니다.

부활이라는 시간에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일치 시키지 못한다면

그냥 막연하게 겉모습 혹은 사람들이 말하는 그대로

아 그냥 성당에 나가는 사람으로만 그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당에 나가는 사람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 안에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전하는 사람입니다.

헌데 한번 보십시오. 과연 어디에서 그리스도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습니까? 세상을 파괴하는 예수그리스도를 박해했던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질렀던 바리사이들 위선자들의

목소리 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그 소리가 들리고 있습니다.

무책임 하다. 누가? 세상이? 정부가? 아닙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무책임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시간이 되니까 강정을 위해서 미사를 하고

시간이 되니까 기도를 하고 미사 전에 기도해야 하니까

미사 후에 마침기도 해야 되니까 세상의 평화를 위한 기도

바치고 정해진 때에만 생각하는 거. 어쩌면 형식적으로

흘러간다 생각되지 않습니까?

하지만 세상의 평화는 형식적으로 흘러가는 때에 있는 것이 아리나

매 순간 하느님을 체험하고 그 분의 생명과 평화를

기억하는 자리에서 함께 합니다.

더 이상 과거의 사건이라고 예수님께서 부활 하셨다.

사순 우리들을 위해서 수난 하셨다.

승천 하셨다. 성령을 보내셨다. 라는 과거의

교회 문헌에서 나오는 가르침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매 순간이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할 승천

그 영광을 위해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

당신의 모습이 온전히 드러날 수 있도록

우리들의 모습 또한 새로운 모습으로 새로운 시선으로

변화 되어야만 하겠습니다.

잠시 오늘 말씀 묵상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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