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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둘째주 강정소식

2015.10.14 17:34

자발적 가난 조회 수: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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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둘째주 강정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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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주의 기도를 함께 봉헌하는 정난주성당 교우들 

현장미사에 참여한 조경철 마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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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미사에 함께한 전주교구 용머리성당 교우들

 표선, 성산포성당 교우들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강정현장팀에서 수요일은 중앙성당, 목요일은 정난주 성당, 금요일은 전주교구 용머리성당과 표선성당, 성산포성당에서 함께 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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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 이 땅의 평화를 청합시다

 

108일 우직한 신부 (정난주성당)

 

오늘 제가 강정마을 미사에 와서 유독 눈에 들어 온 구절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옆에 보시면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복음의 기쁨에 말씀 하신 것 중에 자기 안위만을 신경 쓰며 폐쇄적이며 당당하지 못한 교회 보다는 거리로 나와 상처받고 더렵혀진 교회를 저는 더 좋아 합니다.” 이렇게 말씀 하신 내용이 제 가슴 안에 퍼집니다.

 

 

우리가 우리 성당 안에만 주님이 계시고 우리 성당 뜰에서만 성모님께서 보호해 주시고 우리가 우리끼리만 활동하고 기도하고, 우리 공동체의 성장과 안위만을 위해서 기도 하는 것도 분명 중요하지만. 우리 기도가 항상 이곳을 향하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안위만 생각하는 신앙이 아니라 버림받은 예수님, 더럽혀진 예수님. 착한 사마리아인이 다친 사람을 도운 것처럼 우리도 그들을 보살피고 함께 아픔을 공감하고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 독서는 말라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악인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기준이 뭐 입니까? 제 생각에 단어 하나가 기준이 되는 것 같아요. 독서 말씀에 경외라는 단어,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의인이고, 하느님 두려운 줄 모르는 사람은 악인이라고 하는 것 같아요. 악인은 나쁜 일을 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성경에서는 의인과 악인을 나누는 기준이 하느님을 경외할 줄 아는 사람과 하느님께서 원하는 바가 아니라 제 멋대로 하는 사람은 악인으로 구분 하는 것 같습니다.

 

 

악인과 의인의 결말이 말라키 예언서에 나옵니다. 악인들은 하느님 두려운 줄 몰라서 거만한 자들이 행복하다고 부르짖습니다. 교만한 사람이죠. 하느님 자리를 차지하고 자기 이름을 드높이 올리려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보다 내가 더 높아지려고 하는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 남의 등 쳐먹고 부유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쳐야 내가 부유해 지는 것이 경제 논리이기는 합니다만 그들이 번성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리고 하느님을 시험하고도 화를 입지 않는 다고 자신 있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하느님 두려운 줄 모르고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을 부정했기 때문에 인간 욕심으로 피조물을 파괴하고도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구럼비는 하느님께서 창조 하신 것이죠. 붉은발 말똥게, 연산호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잘 가꾸라고 창조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11절에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 했을 때 다스리라는 것은 잘 가꾸라는 것이지 너희들 마음대로 파괴하라는 것은 아니죠. 우리 인간적인 생각에서 우리가 편의상 좋은 것을 만들고 짓는 것은 하느님의 생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들만 창조하셨나요? 인간들보다 먼저 창조하신 생명체는 동식물인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들보다 먼저 태어난 선배님들인 거예요. 그런데 막둥이가 우리 욕심대로 칼을 휘두르면서 멋대로 재단하고 우리 편의대로 짓고 만드는 것이 아닌가... 어쩌면 하느님 두려운 줄 모르고 이 해군기지를 만드는 자들이 악인들이지 않는가. 이 점은 우리 스스로도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 두려운 줄 모르고 내 편의대로 살아가는 나의 모습도 반쪽은 악인의 모습을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의인에 대해선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주님의 비망록에 쓰인다. 그러니까 주님의 장부에 들어가는 겁니다. 장부는 뭡니까? 결산하고 나서 순 이익으로 남는 사람들만 보존되는 그런 상황이죠. 우리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경제 논리에 있어서 하느님의 뜻을 행할 때 우리는 하느님의 결산 장부에 잘 적혀서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 하느님 나라로 갔을 때 어디로 갈지 구분된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주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들에게 의로움의 태양이 치유를 싣고 떠오르리라.’ 아주 시적인 표현이죠. 의로움을 행할 때 주님께서 직접 당신의 손으로 치유해 주신다는 것으로 다가옵니다. 주님을 경외하고 주님의 말씀을 잘 따르는 사람들은 세상의 박해에 놓일 경우가 많습니다. 어쩌면 세상 사람들은 너희들은 참 어리석다 왜 고지식하게 그 길을 걷느냐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모릅니다. 주님께서 직접 우리를 위로 한다는 사실을, 껴안아 준다는 사실을... 그렇게 주님께서 직접 의인을 보살핀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밤중에 손님이 와서 먹을 것이 없어서 이웃 친구를 찾아서 밤중에 손님이 찾아왔는데, 먹을 것이 없어 빵 세 개만 줄 수 없겠니? 합니다. 어떻게 하면 빵을 내어 줍니까? 졸라대고 귀찮게 하면 귀찮아서 하지 않나요? 하느님 마음도 그렇습니다. 하느님 모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마음과 하느님 마음이 비슷합니다. 하느님께 계속 귀찮게 하면 풍성하게 주시는 겁니다. 우리가 여기서 미사를 하는 것은 이 땅에 진정한 평화가 잘 전파되고 구현되는 길이죠. 무기가 평화를 주지 않습니다. 거짓 평화는 줄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죠.

 

 

우리가 이곳에 당신의 평화를 깃들게 하려면 하느님을 자꾸 귀찮게 하는 거죠. “주님 이땅에 평화가 깃들기를 간절히 청합니다하고 기도하면 하느님께 청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다

악인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주 알거든요,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녀들에게 성령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성령 하느님께서 이 땅에 당신께서 원하신 것을 할 것이며 진정한 평화를 이루게 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하느님 두려운 줄 모르고 살아가지 않기를 하느님 경외하면서 살아 갈 때 하느님께서 지켜 주신 다는 것을 ...하느님께 이 땅의 평화를 계속해서 청해야 할 것을 다짐하면서 이 미사 봉헌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