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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태영성의 삶을 사는 소공동체"
                                     
하느님 영
한처음에 아무것도 생기기 전에 하느님의 영이 계셨습니다.(창세기 1,1-2) 하늘과 땅과 거기 딸린 모든 존재가 다 하느님 영의 기운으로 빚어졌습니다. 하늘의 새들과 바다의 물고기들, 땅의 온갖 생물들과 하느님 닮은 사람들, 모두 하느님 영이 발하시는 말씀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 안에는 하느님의 숨과 기가 새겨져 있습니다. 살아 숨 쉬는 생물들만이 아니라, 돌멩이와 쇳덩이들 안에도 다 하느님의 영이 그려놓으신 설계도가 있고, 하느님 사랑의 입김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세상에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존재들은 서로 무관하게 그냥 우연히 거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이 아직 그 전체를 알고 이해할 수 없는 긴밀한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모두 한 분이신 영이 그리신 설계도로 빚어지고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영겁의 세월을 두고 창조하신 만물을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아득한 태초로부터 수많은 피조물들이 우리보다 먼저 하느님 영의 힘을 받아 탄생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피조물들과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그들의 일부이며 그들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닮은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에게 당신의 지혜와 사랑을 나누어 받아 당신의 아름다운 작품들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피조물들의 주인이 아니라 잠시 관리를 맡은 마름에 지나지 않습니다. 마름의 역할은 주인의 뜻을 제대로 알고, 주인이 아끼고 소중히 여기시는 존재들을 잘 지키고 보살피고 꽃피우는 일입니다. 인간의 역할은 세상을 빚으신 하느님 영의 계획과 의도를 알아듣고 그분 마음에 드시는 방법으로 겸손하게 섬기고 받드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
그런데 하느님께서 지구에 선사하신 재화들이 인간의 오만과 탐욕으로 회복불능의 치명적인 손상을 입고 생태계 전체가 신음하고 있습니다. 자연과 생명이 훼손되고 환경이 파괴되면 제일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스스로를 방어할 힘이 없는 나약한 피조물과 가난한 이들입니다. 땅이 독한 화학약품으로 죽어가니 수많은 생명의 종들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이제 바다까지 인간이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가 섬을 이루고, 이로 배를 채운 물고기들이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와 사막화로 인한 강물부족, 생태 악화와 초지 소멸, 농경지 퇴화는 지구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의 생존을 위협하여 환경난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지금 지구와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이 공명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인간이 하느님 피조물의 생물 다양성을 파괴하고 기후 변화를 일으켜 지구의 본디 모습에 손상을 입히고, 자연 삼림과 습지를 파괴하며, 지구의 물, 흙, 공기, 생명을 오염시키는 것은 모두 죄가 됩니다.” “자연 세계에 저지른 죄는 우리 자신과 하느님을 거슬러 저지른 죄이기 때문입니다.” (‘찬미받으소서’ 8) 

생태 영성
생태를 살리는 일은 지금 지구상의 가장 긴급하고 엄중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생태(ecology)’는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의 ‘집’(oikos)에 관한 이야기(logos)입니다. 생태 영성이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우리 자신이 하늘의 별들, 바람과 공기, 불과 물, 세상 모든 피조물과 함께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오누이이고, 한 가족을 이루고 있음을 깨닫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생태 영성을 공유하는 이들은 ‘토양의 사막화를 마치 우리 몸이 병든 것처럼 느끼고, 동식물의 멸종을 우리 몸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고통스럽게 느낍니다.’(‘찬미받으소서’ 89) 생태 영성을 살아가는 이들은 하늘과 땅, 산과 바다를 빚어주신 하느님을 찬미하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 공동의 집 가족 구성원들을 살리기 위해 투신하는 사람입니다. 생태 영성을 받아들이는 이들은 세상 시작부터 하느님 영이 계획하시고, 영겁의 세월을 두고 가꾸시고 펼쳐 오신 창조의 신비를 능동적으로 알아듣고 하느님 영의 섭리에 협력하고 동참하는 사람들입니다. 생태 영성은 ‘기술만이 아니라 인간의 변화에서 해결책을 찾도록 요구합니다.  .....  소비 대신 희생을, 탐욕 대신 관용을, 낭비 대신 나눔의 정신을 “단순한 포기가 아니라 주는 법을 배우는 것을 의미하는” 금욕주의로 실천할 것을 요청’(‘찬미받으소서’ 9)합니다.  

작년에 이미 우리는 탐욕적인 개발논리와 무책임한 발전 이데올로기로 한계 상황에 도달한 제주도의 생태계를 우려하며 하느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보물섬을 살리고 지구를 살리는 대열에 앞장서자고 호소하였습니다. 많은 본당과 소공동체들이 쓰레기를 줄이고 바닷가를 청소하고 환경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노력에 적극 참여해 주셨음에 함께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우리는 위기에 처한 생태계를 살려내기 위해 더욱 힘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2018. 12. 2.     
                                              대림 1주일에     
                                              제주 교구 감목     
                                                    강 우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