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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교구 이모저모

[말씀] 교구장님 성체의 해 폐막미사 강론

(요한 6. 51-58)

친애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별고 없으십니까? 나는 지금 13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고 와서 시차 때문에 정신이 몽롱한 상태입니다.

 지난 10월 1일부터 로마 교황청에서 열리는 세계 주교 대의원회의에 참석하고 막 돌아왔습니다. 회의는 아직 사흘 남았는데 이 미사 때문에 교황님께 용서를 청하고 먼저 도망을 나왔습니다.

 이번 회의는 4년에 한 번 정도 열리는 세계 각국의 주교 대표들의 모임인데 한국 주교님들을 대신해서 내가 다녀왔습니다. 이번 회의의 주제는 성체성사였고, 모두 250명 정도의 주교들이 참가하여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점심시간을 빼고는 모두 착한 학생이 되어 열심히 강연도 듣고, 토론도 하고, 기도도 했습니다. 궁둥이에서 진물이 나려고 했으나 이 회의를 소집한 교황님이 매일 열심히 참석하여 꼼짝도 안 하시고 앉으셔서 우리 발언을 듣고 계시니 딴 데로 샐 수도 없고 애를 먹었습니다.

 이번 회의에서 가장 많은 주교들이 두드러지게 발표한 내용은 우리가 물려받은 성체성사란 우리 인간의 언어로 도저히 그 깊이와 아름다움을 다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보물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마음속에서 자신에게는 어떤 보물이 있는지 한 번 헤아려 보십시오. 나의 재산 목록 1호는 무엇인가? 결혼할 때 받은 패물? 결혼 패물은 소중하고 귀한 것이긴 하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우면 아까워도 금은방에 가서 팔아버릴 수 있습니다. 나중에 돈 벌어 다시 사면됩니다. 어떤 사람은 내 재산 1호는 평생을 일해서 장만한 집 한 채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불이 나면 아무리 훌륭한 집이라도 홀라당 타버리고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가격은 제일 많이 나갈지 모르지만 그러나  다시 노력하여 아끼고 모으면 또 장만할 수 있는 물건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누가 수천억 원, 아니 몇 백조 원을 준다 해도 도저히 바꿀 수 없고, 바꾸지 않을 정도로 소중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부모, 자식, 배우자, 내 사랑하는 가족일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인간에게 제일 소중한 것은 자기 생명입니다. 그런데 이 생명을 주고받고 생명을 나누는 관계가 바로 가족입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생명을 주었고 자식은 부모에게서 생명을 나누어 받았고, 부부는 서로 한 몸이 되어 새로운 생명을 세상에 낳았습니다. 내게 있어서 가족은 내 생명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 즉 자기 존재의 가장 깊은 부분이 직접 연결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소중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에게 생명을 주신 분일 뿐 아니라, 나를 세상에 낳아주신 내 부모님에게도 생명을 주셨고 또 나를 사랑하는 배우자에게도, 내 자식에게도 생명을 주신 분입니다. 또 내가 세상에 태어날 때 생명을 한 번만 주신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살면서 수도 없이 하느님께 죄를 지어 하느님과 멀어지고 생명과 멀어져갈 때, 나대신 죄의 용서를 받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시며 나를 위해 돌아가시고 부활하시어 새로운 생명을 다시 나에게 주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조금도 아낌없이 당신의 생명을 송두리째 다 내어 주십니다. 나에게 두 번씩 생명을 주신 분입니다. 그것도 어디 딴 데 있는 것을 갖다 주신 것이 아니고 당신의 생명을 내어주시고 당신의 생명을 떼어 주신 것입니다.

 나는 로마에 도착하는 즉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 묘소를 참배하러 베드로 대성당 지하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하루 종일 신자들이 몇 줄로 서서 계속 묘소를 찾고 있었습니다. 하도 조문객이 많아 안전요원이 묘 앞에 지키고 서서 2초만 지나면 머물지 말고 앞으로 걸어가도록 주의를 주어야 할 정도로 계속 사람들이 밀리고 있었습니다. 또 새 교황님 뵙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교황님과는 비교도 안 되는 더 큰 분이 성체성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교황님 알현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수 백 명, 아니면 수 천 명씩 단체로 알현하고 알현 시간 전에 한 시간 전쯤 미리 가서 안전점검 받고 기다려야 하고 알현 시간이 되어도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멀찌감치 떨어져서 뵈어야 합니다. 그래도 아무도 불평 안 합니다. 그런데 교황님은 비교도 안 되는 크신 분이 우리 바로 곁에 오시고 그것도 그냥 오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 당신 사랑을 차고 넘치게 주시기 위하여 당신 몸을 송두리째 내어 주시고 당신 피를 마시게 해 주시며 당신 사랑을 고백하시려고 우리 안에 머물러 주십니다.

 이렇게 기가 막힌 일이 성체성사에서 이루어지는데 도대체 우리 교우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하고 시노드에 참석한 주교들은 수심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유럽의 어떤 주교들은 자기 교구 신자의 1%가 신앙생활하고 있을 뿐이라고 슬픈 얼굴로 보고하였습니다. 거기에 비해서 한국 교회는 영세한 사람의 대체로 35% 정도 미사에 나가고 있으니 비교적 열심한 편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러나 또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보면, 나오는 사람의 두 배나 되는 사람들이 안 나오고 있습니다. 세상을 구하시고 우리에게 두 번씩이나 생명의 은총을 나누어주시는 분이 오셨는데 여길 놔두고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나도 주님 대전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친애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오늘의 극심한 경쟁 사회에서 밀리고 치여서 아무 데서도 위로를 받을 수 없을 때, 성체 안에 계신 주님께 다가오십시오. 여러분은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그분은 사회에서 가장 뒤쳐진 사람들, 가장자리로 밀려난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생활에 쪼들리고 내일이, 다음 주가, 다음 달이 불안할 정도로 가진 것이 없어 힘들어하는 사람들, 갑자기 들여 닥친 재앙으로 하늘이 무너진 것 같고 미래의 전망이 조금도 안 보여 절망하고 있는 사람들, 예수님께 나아가십시오. 예수님은 우리를 기다리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릇 무거운 짐 지고 고생하는 사람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나는 영혼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는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내 짐은 가볍고 내 멍에는 편하다.’ (마태. 11. 28-30)

여러분이 동료에게, 친지에게서 배신당하고 누구에게서도 보상받지 못해 아파하고 미움에 시달리고 있습니까? 그러면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주님께서는 당신이 먼저 가장 가까웠던 이들에게서 배신당하셨기에 우리의 쓰라린 가슴을 누구보다도 잘 공감하실 수 있기에 우리의 고발을 들어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가정에서 가족들 사이에 대화가 부족하고 이해가 부족하여 아무한테도 하소연 할 곳이 없습니까? 이런 이들의 하소연과 호소와 넋두리를 들으시려고 주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외롭고 진정한 가슴 속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아무도 없고 인정에 목마르고 사랑에 굶주리고 있습니까?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당신을 내어주시기 위해서 그 목적 하나 때문에 세상에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에게 당신을 통째로 내어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며 나는 그를 마지막 날에 부활시킬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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