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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 발견된 조선 신학생의 기도… 사제직 향한 열망 고스란히

조선 첫 로마 유학 신학생의 자필 기도문, 100년 만에 세상 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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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청립 우르바노대학교 서약서에 담긴 전아오 신학생의 자필 기도문.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가 일제 강점기 로마에 유학한 조선 신학생 전아오의 자필 기도문을 교황청립 우르바노대학교에서 찾았다는 소식을 14일 본지에 알려왔다.
 

이 대사가 교황청의 협조를 얻어 우르바노대학교 자료실에서 찾은 이 기도문에는 “전능하시고 인자하신 천주께서는 이 불쌍한 죄인 전아오스딩 조선서 처음으로 와서 공부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사 꾸준히 공부를 잘하여 외교 이방 조선을 로마와 같게 하여 주시고 영원한 당신 영광에 들어가게 하소서. 아멘”이라는 소망이 담겨 있다. 또 “추후에 이 글을 보는 자는 이 죄인을 생각하여 성모경 한 번 염하여 주심을 희망”이라고 적혀있다.
 

교황청 인류복음화성(당시 포교성성)이 운영하는 우르바노대학교의 모든 신입생은 “주님의 뜻에 따라 충실히 학업에 입하겠다”는 서약서를 작성했는데 이 기도문은 전아오 신학생이 서약서 작성 두 달 뒤 개인적으로 덧붙인 것이다.
 

이 대사와 함께 서약서에서 이 기도문을 발견한 우르바노대학교 신학원장 비첸초 비바 몬시뇰은 “전교생이 의무적으로 쓰는 자필 서약서 외에 본인이 모국어로 별도 기도문을 쓴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며 놀라워했다.
 

이 대사가 기도문을 찾기 전 대구대교구와 제주교구, 한국교회사연구소와 영남교회사연구소 등에서는 조선인 첫 로마 유학 신학생들에 관한 연구가 꾸준히 있어 왔다. 이들에 관한 기록은 「드망즈 주교 일기」 「경합잡지」 「교회와 역사」에 소개됐으며, 「천주교 대구대교구 100년사 1911-2011」 「성유스티노신학교 1914-1945」 등에도 일부 소개됐다. 또 최근 우르바노대학교에서 간행하는 잡지 「알마 마테르」(Alma Mater)에 전아오 신학생에 관한 자료를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 발표된 한국교회사연구소 송란희 역사문화부장의 「첫 로마 유학 신학생 연구-대구대목구 송경정과 전아오의 사료를 중심으로-」 논문을 정리해 잊힌 조선인 로마 첫 유학 신학생들을 소개한다. 송란희 역사문화부장은 논문에서 신학생들의 여권 신청 서류와 건강진단서, 1923년 제5회 「알마 마테르」표지와 내용 등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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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망즈 주교는 1920년 1월 26일 두 신학생과 함께 로마로 가서 베네딕토 15세 교황을 알현한 후 기념 촬영을 했다. 

    주교 오른쪽이 전아오이고, 왼쪽이 송경정이다. 한국교회사연구소 제공




한국 교회 첫 로마 유학생

대구대목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의 송경정(안토니오, 1900~1923)ㆍ전아오(아우구스티노, 1894~1922) 두 신학생이 1919년 11월 로마 유학길에 올랐다. 이들은 한국 교회 로마 첫 유학생이자 1914년 설립한 성 유스티노 신학교의 첫 입학생들이었다. 대구대목구 최덕홍 주교와 이기수 몬시뇰, 석종관ㆍ김필곤 신부 등이 입학 동기다.
 

송경정은 경북 달성군 비산동 출신으로 1900년 4월 24일 태어났다. 그는 대구 해성학교 3학년을 수학하고 성 유스티노 신학교 중학과에 입학해 1919년 졸업했다. 전아오는 제주도 출신 첫 신학생으로 1894년 4월 24일 제주면 이도리에서 태어났다. 공교롭게도 둘은 생일이 같다. 그의 부친과 외조부, 외숙부는 제주교난 희생자였다. 전을생이라고도 불리는 그는 제주 공립보통학교 4학년을 수학하고 1914년 성 유스티노 신학교 중학과에 입학해 송경정과 같은 해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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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아오의 외국여권하부원.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된 자료이다. 한국교회사연구소 제공


로마 유학 배경



두 신학생이 로마로 유학한 배경은 대구대목구장 드망즈 주교의 일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919년 교황청 포교성성 장관 반 로숨 추기경은 지역 교회의 발전을 위해 현지인 성직자를 양성할 목적으로 지역에서 잘 양성된 신학생 몇 명을 로마로 파견할 것을 한국 교회에 정식으로 요청했다.
 

하지만 서울대목구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선 보낼 학생이 없었다. 1914년 신입생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1914년 9월 학기 시작을 앞둔 뮈텔 주교는 프랑스 영사로부터 “프랑스에 총동원령이 선포됐다”는 통보를 받는다. 1914년 7월 28일 제1차 세계대전이 터졌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에 있던 프랑스 선교사 33명 가운데 11명이 징집 대상자였고 그중 9명이 본국으로 돌아갔다.
 

반면, 대구 신학교에는 라틴어 상급반 6학년이 셋 있었다. 그중 송경정, 전아오가 선발된 것이다.


로마 유학


두 신학생은 대구대목구장 드망즈 주교와 함께 1919년 11월 유학길에 올라 1920년 1월 20일 로마에 도착했다. 둘은 드망즈 주교와 함께 포교성성 장관 반 로숨 추기경을 만난 후 교황청립 우르바노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둘은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교황을 공식 알현했다. 우르바노대학교는 ‘전 세계 선교사 양성의 못자리’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제3세계 선교 전문가 양성을 지원하기 위해 교황청이 1627년 8월 설립했다. 학교명은 설립자 우르바노 8세 교황의 이름을 딴 것이다.
 

우르바노대학교 잡지 「알마 마테르」 1923년 제5호는 두 조선인 신학생의 입학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두 명 모두 미소를 짓고 있으면서도 의젓했다. 콜레지오(신학생을 위한 기숙 신학원)에 소중한 신학생 두 명이 새로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신학생 둘 다 확실히 그리스도인들로서의 자질을 갖추어 있었고, 외모상으로 그들의 건장한 체격은 장차 성직을 오랫동안 수행하면서 많은 결실을 볼 수 있는 보증과 같아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공부를 제대로 마치지 못했고, 사제품을 받지도 못했다. 한 명은 로마에서, 한 명은 한국에 돌아와 사망했기 때문이다.


송경정 안토니오
 

송경정은 로마 유학시절 2년째에 결핵에 걸렸다. 우르바노대학교 총장은 반대했으나 포교성성 장관 로숨 추기경의 최종 결정에 따라 그는 귀국길에 올랐다. 그는 병자성사를 받은 후 퇴교해 원산으로 가는 성 베네딕도회 선교사들과 함께 1922년 3월 15일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배를 타 4월 귀국했다. 그는 고향인 날뫼(비산동) 공소에서 20년간 공소 회장으로 활동하던 아버지 송기택(프란치스코, 1866~1926)을 도우며 신앙생활을 했다. 아버지는 아들과 전아오 신학생이 로마에서 떠나기 전 함께 찍은 사진을 공소에 걸어두며 아들의 회복을 빌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바람과 달리 송경정은 1923년 5월 7일 집에서 사망했다.

 

전아오 아우구스티노
 

전아오는 송경정에 비해 로마 유학시절 자료가 많다. 아마도 그가 우르바노대학교 콜레지오에서 선종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모든 책과 노트에 자신의 좌우명인 ‘모든 이에게 모든 것’(omnia omnibus)라는 글을 써 놓았다. 그는 항상 미소 짓고 쾌활하고 생기와 기쁨이 가득해 동료 신학생들이게 인기가 많았다. 동료들은 그를 “베이비 전”(Baby Tiyen)이라고 불렀다.
 

전아오는 특별히 성모 신심이 돈독했다. 그는 마리아의 영광에 관해 즐겨 이야기했고, 로마의 많은 성당과 기관이 성모님께 봉헌된 것을 감탄했다. 그의 목에는 항상 가르멜의 성모 스카풀라와 프란치스코 제3회 스카풀라, 묵주가 함께 걸려 있었다.
 

그는 철학 논문으로 2등 상을 받을 만큼 우수했고, 사제직에 대한 열망도 남달랐다. 동료들은 전아오가 “자기 나라를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회두시키는 것 외에는 다른 목적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전아오는 1922년 5월 11일 밤 협심증으로 침대에서 갑자기 사망했다. 그는 로마 근교 캄포 베라노에 조성된 공동묘지에 안정됐다. 드망즈 주교는 1925년 로마에서 열린 한국 순교 복자 79위 시복식에 참석하기 위해 로마를 방문했을 때 전아오의 무덤을 찾아 기도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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