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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堯)나라 임금이 許由에게 보낸 特使가, “國相職을 맡아, 宰相들과 백성들을 다스려달라”고 초대하는 요 임금의 부탁하는 소리를, [더러운 소리]로 여기고, 그런 소리를 들은 허유(許由)가 영천(潁川) 냇물에 귀를 씻으니, 소부(巢父)는, 이런 "더러워진 물을 우리 牛公(소)도 마시게 할 수는 없다!” 고 하여, 소를 끌고 上流로 올라갔다. 자진 출마와 공천 갈망의 명인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무대를 바라보는 오늘의 젊은이들이 한번쯤 들어볼만한 일화다.

소부와 허유는 4천 3백여 년 전(B.C. 2,350년 경), 중국 요(堯)나라에 살았다는 道師님(?)들인데, 당시는 古代 중국 역사의 五帝 시절이다. 요(堯) 나라 땅, 기산(箕山) 계곡 영천(潁川) 개울가에 은거하던 소부가, 자기가 기르는 소에게 물을 마시게 하려고, 냇물 가에 끌고 가서 보니, 부근에 살고 있는 허유가 조금 떨어진 바로 上流에 와서, 물로 귀를 씻고 있었다. 그 이유인즉, 요(堯) 나라 임금이 사람을 보내어, 國相職을 맡아달라는 아주 더러운 소리를 들어서, 귀가 더러워졌기에 영천 물에 귀를 씻는다고 하므로, 허유도, 그런 더러운 소리를 듣고, 더러워진 그 귀를 씻은, 이 더러운 물을, 자기 집 牛公(소)한테 마시라고 할 수가 없어서, 소부는 소를 끌고, 허유가 귀를 씻는 데서 좀 더 上流로 올라가서, 소에게 냇물을 마시게 하였다.

권세있는 높은 벼슬자리를 맡으라는 말을, [더러운 소리]로 여기는 허유가 그런 소리로 자신의 귀까지 더러워졌다고 하여, 물로 귀를 씻었으며, 소부역시 그 귀 씻은 물을 자기 牛公(소)한테도 마시게 하지 않았다는 심정을, 현실도피와 유아독존의 사고방식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부분은 없는지, 있다면 무엇일까?!

시 요 나라 임금은, 탐관오리 재상들이 너무나 무서운 감투 病에 걸리고, 돈 毒에 오염되고, 또 영웅심과 공명심으로 끓고 타서, 만나면 서로가 잘난 체하며, 물고 뜯고, 모이면 서로가 힘자랑하며, 찌르고 할퀴면서 뇌물을 받아먹느라 泥田鬪狗하므로, 그 모습이 너무나 더럽고 흉측하여, 이런 재상들을 데리고 國相職을 하다가는 近墨者黑이 불가피하므로, 그런 더러운 소리가 묻었을 귀를 씻었고, 더렵혀진 귀를 씻은 냇물도 더럽혀졌다 하여, 차마 자기가 기르는 소한테도 마시게 하지 않았다는데! 오늘날 우리 사회는 감투병과 돈 독(毒), 영웅심과 공명심에 불타는 人氣主義(populim)의 熱風이 일부 知性人들에게까지 그칠 줄 모르고 퍼지고 있다.

지금은 國相의 지위를 맡아 달라는 초대장도 받지 못한 사람들이, 그런 벼슬자리는 반드시 자신이 맡아야만 한다고, 앞장서서 난리를 피우며, 때로는 자신들이 추천하고 뽑아서, 올라가게 한 나무에서 강제로 끌어내리기 위하여, 한번 떨어지는 꼴을 보자고 나무를 흔들어대기도 한다(勸上搖木). 심지어 作黨과 다툼과 흥정도 예사로 삼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런데 우리겨레는 아주 먼 옛날부터, “형님 먼저, 아우 먼저”하며, 양보하고, 이 사람이 그런 중책을 어찌 감당하겠느냐고 우선 사양하며, 불초 소생은 지도 편달을 바랄 따름입니다.” 하는 謙讓之德이 상식이었다. 사실 동양의 창세기라고 하는, 동양 최초의 서적, 山海經에까지 기록되어 내려오는, 우리 한민족의 평범한 德目조차 이제는 사라지고 있다.

감투에 묻어있고, 짙게 배어있는, 그 [더러움]이 소박하고, 순수하고, 진솔하고 의로운 사람들의 이름과 얼굴에 뿌리는 오물세례가 되기도 하지만(含血吩人 先汚其口)! 하기야, [뜻]을 지닌 소리를 [말]이라고 하는데, 최근 언어폭력은, 그 [더러움]보다, 나날이 더욱 잔인해지고, 극심해지는 느낌이다. 眞實否定과 허위조작, 저주와 악담과 욕설, 험담과 저속한 폭언, 등은, 듣는 귀만을 더럽히지 않고, 귀 속으로 더 파고 들어가서 사람들의 마음을 더럽히며, 기억시키고, 지능까지도 더럽힌다. 특히, 어른들의 언어폭력은 어린이들의 깨끗하고 순수한 귀와 마음과 지능을 더럽히고, 거기에 묻어 있다가, 입으로까지 나오게 한다. 한마디로, 지도층 인사들이 멱살을 잡는 창피스러운 완력만이 폭력이 아니라, 폭언도 언어폭력이다. 학력이나 경력은 있는지 모르나, 교양과 수양이 함량 미달이 아닌가?!

열심이단 천주교신자였던 요한 張勉 내각 총리는, “남에게 못된 말이나 욕되는 말을 하는 적이 없었고, 아주 몹시 화가 나면, 기껏해야, “그거 참 고약하군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고, 당시 국방장관 하던 현석호 회장이 훗날 천주교회 某種의 모임에서 회상하며 밝힌 적이 있었다. 장면 총리의 매너를 좀 본받아야 할 정치인들이 적지 않게 보인다.

오늘날 한국의 일부 지성인들, 특히, 종교계의 일부 우리 교직자들을 포함하여, 정치인들, 더욱이, 일부 국회의원들과 정당인들, 언론인들과 교육가들, 또한 일부 법조인들까지도 모두가 다같이 본분으로 삼고, 걱정해 드려야 할 대상은 우리 백성들인데, 오히려 반대로, 백성들이 우리 지성인 지도자들을 걱정하고 있으니, ! 오늘의 우리 사회 일부 지성인들은 이 험악하고, 흉측하고 끔찍하고, 실로 놀랍게도 함량 미달의 [더러운 言行]에서 먼저 淨化되기 위하여, 한강 물가에라도 나와서 귀와 눈을 씻고, 보다 맑고, 밝고, 바른, 理性과 良心을 되찾아, 지키고, 아끼며, 가꾸어 나가는 모습이, 무궁화처럼 계속 피고 지며(朝開暮死) 이어지는 江山을 꾸밀 수는 없을까?!

참으로, 元亨利貞은 天道之常이오, 仁義禮智는 人性之綱이라는 말을, 지금은 고물상에 가서나 찾아볼 수 있는, 옛 先人들의 잠꼬대처럼 되고 있지 않은지! 思想家不在時代라기보다도, 사상가를 외면하고 멸시하며, 감투와 황금에 한 눈을 팔면서, 영웅심과 공명심의 노예가 되어, 존경과 영광과 추앙과 인끼상승에 환장한 사람들처럼, 더 나아가 오락과 유흥과 사치와 향락에 溺死 직전으로 더욱 깊히 빠져들어, 이제는 한강물에 귀를 씻는 허유와 소부를 흉보며 무시하는 것이 예사가 되었다!

Msgr. Byon

(본 내용은 천진암 성지 홈페이지 "이번주 풍경소리" 에서 퍼온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