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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23 11:49

구약성서 연재 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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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소명>

“하느님이 인간을 부르실 때”

구약 성서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을 꼽으라면 역시 모세이다. 그는 옛 파스카의 주역이었고, 옛 계약을 이룬 자이다. 바로 그에게서 야훼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신앙으로 자리 잡게 되었던 것이다.

모세는 본래 파라오의 궁전에서 왕자처럼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이집트 사람이 자기 동포를 때리는 것을 보고 그 이집트 사람을 때려 죽여 모래 속에 파묻는다. 그리고 이 일로 인해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가게 된다. 그곳에서 미디안 사제인 이드로를 만나 그의 사위가 되어 장인의 양떼를 치는 목자가 되었다가 그곳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자유와 해방의 영도자로 칭송받는 모세라는 자가 이렇게 폭력적이고 난폭할 수가 있는가? 이처럼 불명예스럽고 부끄러운 모세의 치부를 왜 성서는 있는 그대로 소개하고 있는 것인가?

이는 이 거칠고 광포한 젊은이 모세의 모습에서 오히려 하느님의 소명이 암시되는 그 씨앗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소명은 완성된 형태로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가다듬고 연마하여 완성해 가야 하는 재료로 주어진다. 조각가가 맨 돌덩이를 깍고 다듬어 위대한 예술작품을 만들 듯, 각 사람은 자신의 소명을 다듬고 정련시켜 완성해 가야 하는 것이다. 모세가 이집트 사람을 때려 죽인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 행동 자체는 매우 위험하고 난폭한 것이지만, 그렇게 한 동기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직감이라고 할 수 있다.

밀밭 속의 가라지 비유(마태 13 24-30)가 있다. 밑밭에 가라지가 심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하느님으로부터 불리움을 받는 모든 이들에게는 밀밭이라는 긍정적인 요소들도 있지만 가라지도 함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가라지는 그 비유에서도 암시되듯이 하느님의 섭리에 의해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모세에게 있어서도 하느님의 섭리는 그러하였다. 그가 하느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는 장면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그는 불타는 가시덤불을 바라보게 된다. 그런데 그 불이 가시덤불을 태우지 못하는 것을 보고 기이하게 생각하여 다가간다.

여기서 불타는 가시덤불은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의 과거를 보여주는 것이다. 즉 가시덤불처럼 다듬어지지 않고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지만 불타는 모습과 같았던 자신의 열정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모세는 자신의 과거를 통해 하느님의 현존을 발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불이 가시덤불을 태우지 못하는 것은 모세가 지난날 열정은 있었지만 자신의 부족한 부분에 대한 열등심으로 인해 그 열정으로 자신을 불사르지 못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열정은 있었지만 다듬어지지 않은 모세에게 하느님이 부르신다. 그 부르심의 명령은 바로 이것이었다. “신을 벗어라!”(출애 3, 5). 신은 무엇인가? 발을 보호하고 감추는 것이다. 그렇다면 발은 무엇인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더러운 부분이다. 하느님은 모세에게 가장 감추고 싶은 치부와 더러움을 드러내기를 원하신다. 거룩한 당신 앞에 다가가기 위해서 해야할 첫 번째의 작업이 신을 벗는 것이다.

이후 하느님은 그에게 해방의 사명을 주신다. 그러나 모세는 하느님 앞에서 변명을 남기며 그 사명으로부터 회피하려고 한다. 이에 대해 하느님은 세 가지를 주시면서 그 사명을 받도록 하셨다. 첫 번째는 당신의 이름이다(출애3, 14). 즉 이 사명의 주체는 모세 자신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지팡이에 대한 체험이다(4, 3). 여기서 지팡이는 지도자의 권위를 상징한다. 그러니 지팡이를 땅에 던졌을 때 뱀이 되었다는 기적은 곧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자신의 권위를 내팽겨 쳤을 때 그 권위는 뱀처럼 해로운 독으로 작용함을 체험게 한 것이다. 세 번째는 아론이다(출애 4, 14). 이는 곧 하느님의 소명은 오직 자기 혼자 해서는 안되는 것이며 항상 이웃과 연대해 나가야 함을 상징하고 있다.

모세가 부르심을 받는 출애 3, 1-4, 17을 눈여겨서 보라. 우리의 부르심을 말씀 속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