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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2주일

조회 수 102 추천 수 0 2018.03.08 09:19:43
일정시작 : 2018-04-08 (일) 

[백] 부활 제2주일 곧, 하느님의 자비 주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대희년인 2000년 부활 제2주일에,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신심이 대단하였던 폴란드 출신의 파우스티나 수녀를 시성하였다. 그 자리에서 교황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특별히 하느님의 자비를 기릴 것을 당부하였다. 이에 따라 교회는 2001년부터 해마다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지내고 있다. 외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느님의 크나큰 자비에 감사드리고자 하는 것이다.

오늘의 전례

 

▦ 오늘은 부활 제2주일이며 하느님의 자비 주일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파스카 주일마다 놀라운 구원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형제들의 모임에서 주님을 알아 뵙고, 주님의 부활을 힘차게 증언할 수 있도록 성령의 은혜를 내려 주시기를 청합시다.

입당송

 1베드 2,2 참조

갓난아이처럼 영적이고 순수한 젖을 갈망하여라. 너희는 그 젖으로 자라나 구원을 얻으리라. 알렐루야.
<또는>

4에즈 2,36-37

너희는 영광과 기쁨을 누려라. 하늘 나라로 너희를 부르신 하느님께 감사드려라. 알렐루야.

본기도

 

영원히 자비로우신 하느님,
해마다 파스카 축제로 저희 믿음을 불타오르게 하시니
더욱 풍성한 은총을 베푸시어
물로 깨끗해지고 성령으로 새로 난 이들이
성자의 피로 얻은 구원의 신비를 더욱 깊이 깨닫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제1독서). 요한 사도는,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긴다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평화를 비시고,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던 토마스에게도 나타나시어 의심을 버리고 믿으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한마음 한뜻>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4,32-35

32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33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
34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소유한 사람은 그것을 팔아서 받은 돈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놓고,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곤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8(117),2-4.13-15ㄱㄴ.22-24(◎ 1)

◎ 주님은 좋으신 분, 찬송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또는
◎ 알렐루야.
○ 이스라엘은 말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아론의 집안은 말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주님을 경외하는 이는 말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 “주님이 오른손을 들어 올리셨다! 주님의 오른손이 위업을 이루셨다!” 나는 죽지 않으리라, 살아남으리라. 주님이 하신 일을 선포하리라. 주님은 나를 벌하고 벌하셨어도 죽음에 넘기지는 않으셨네. ◎
○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주님이 이루신 일, 우리 눈에는 놀랍기만 하네. 이날은 주님이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

제2독서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깁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5,1-6

사랑하는 여러분, 1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그 자녀도 사랑합니다.
2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실천하면,
그로써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3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계명은 힘겹지 않습니다.
4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6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환호송

요한 20,29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토마스야,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 알렐루야.

복음

<여드레 뒤에 예수님께서 오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9-31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24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28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29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30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31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의 백성(과 세례로 새로 난 자녀들)이 바치는 제사를 받으시어
주님의 이름을 믿고 세례로 새로 난 저희에게
영원한 행복을 주소서.
우리 주 …….

감사송

<부활 감사송 1 : 파스카의 신비>

주님, 언제나 주님을 찬송함이 마땅하오나
특히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위하여 파스카 제물이 되신 이 밤(날, 때)에
더욱 성대하게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신 참된 어린양이시니
당신의 죽음으로 저희 죽음을 없애시고
당신의 부활로 저희 생명을 되찾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요한 20,27 참조

네 손을 넣어 못 자국을 확인해 보아라.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 초대 교회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습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이들은,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되고 큰 능력을 드러내며 큰 은총을 누립니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가 파스카 신비를 거행하고 성체를 받아 모셨으니
이 신비를 마음속에 간직하여 삶으로 드러내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한 토마스가 제자들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을 보면서, 그가 믿음이 약하다고 질책하는 태도는 옳지 못합니다. 우리도 가끔은 토마스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당장 눈앞에 하느님께서 나타나 주시기를, 그분의 강력한 표징을 보여 주시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은 자연 과학이 말하는 증명을 통한 확실한 근거에 뿌리를 둔 것이 아니라, 체험을 통한 삶의 표양으로 확실성을 얻는 신뢰의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토마스의 불신앙에 대한 질책이라기보다 눈으로 부활을 목격하지 못한 사람들이 의혹과 불신이 있음에도 어떻게 그분을 따를 수 있는지 길을 제시해 주시려는 것입니다. 곧, 부활은 먼저 문을 모두 잠가 놓고 두려워 떨며 영혼의 밑바닥을 직시하는 제자들의 마음을 해방시키신 성령을 입을 때 체험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인사하시고,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어 주시며 성령을 보내 주십니다. 부활은 인간이 태초에 하느님께 지음받을 때 “흙으로 빚어 코에 숨을 불어넣어 주신” 장면을 연상시키며, 새로운 생명으로의 탄생을 암시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얻은 새 생명은 진리의 성령을 따르는 삶이고, 초기 교회가 자아의 탐욕과 욕망에서 벗어나 가진 것을 나누고 필요한 만큼만 쓰며, 공동으로 소유하는 삶을 살면서도 기쁨에 가득 찬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는 출발점이었습니다. 
믿음은 성령 안에 사는 것이며, 성령을 입은 사람은 소유로부터 자유로워져 존재 그 자체를 사랑하는 능력을 얻습니다. 내 이웃의 잘못을 용서하고, 이유 없이 이웃의 험담을 하며 흉을 보거나 악과 담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성령 안에 사는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