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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일 강정

2014.07.03 08:13

자발적 가난 조회 수:207

하느님 창조사업의 완성은 평화입니다.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비가 내리는 날 공사는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이번 주 제주교구 사제 피정이 있습니다.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제주교구 각 본당에서 강정을 방문하는데

사제 피정관계로 없습니다, 그래도 올레길을 걸으시거나 관광을 하시는 분들이

강정 미사에 함께 해 주셨습니다.

제주를 관광하시거나 방문 하시는 분들이 계시면 매일 11

미사를 봉헌합니다. 함께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72일 연중13주간 수요일

주례 강론 조신홍

 

모두에게 평화를 빕니다.

오늘 비가 많이 오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강정마을 방문해주셨으며 항상 영육간에 건강 잘 챙기시길 빕니다.

우리는 강정마을에 평화를 간절히 원합니다.

하지만 그 평화를 지금 경찰, 대림, 삼성으로 인해 평화가 아닌 폭력과 권력으로 무참히 짓밟고 있습니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평화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진압 잘 하고 상부 명령에 칼같이 복종하고 건물 빨리 잘 지으면 무엇 하겠습니까?

결국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신의 양심이 아플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평화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마태오 59절에 보면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평화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인가에 대하여 단정적으로 규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산상설교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의미심장한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그 말씀 자체로서 평화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는 분명한 것 같지 않습니다.

다만 산상설교 전체의 내용으로 보아,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이 받아야 되는 고

통과 수난이 크다고 하는 사실은 그 말씀 속에 암묵적으로 담겨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기 때문에 마침내 행복할 것이지만,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말할 수 없는 고통과 핍박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실상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것이 현실 속에서도 행복한 것이라면,

예수님께서는 구태여 하게 이러한 말씀을 산상설교 속에서 강조하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말씀 속에는 평화는 쉬운 것이 아니라 어려운 것이며,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것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평화는 쉽게 오는 것이 아니며,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것이 고난의 길입니다.

그러나 평화는 강정마을 이 땅에서 이룩되어야 하고,

화를 향한 많은 분들의 노력은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사목헌장 78항에 보면 비교적 자세하게 평화에 언급하고 있습니다.

평화는 전쟁없는 상태만도 아니요, 적대세력 간의 균형유지만도 아니며,

전제적 지배의 결과도 아니다. 정확하게 말해서 평화는 정의의 실현인 것이다.

인간사회의 창설자이신 하느님께서 인간사회에 부여하신 질서,

또 항상 보다 완전한 정의를 갈망하는 인간들이 실현해야 할 그 질서의 현실화가 바로 평화인 것이다.”라고

명시 되어있습니다(사목헌장 78).

즉 평화는 천상에서의 평화가 아니고 지상에서의 평화이므로 그

것은 살아있는 인간사회의 질서를 뜻하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인간사회의 질서는 하느님이 부여하신 질서이기 때문에

정의의 지배하에 생동적이고 창조적인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로 지금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이 힘의 지배로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공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묘지의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며,

강요된 침묵의 총화나 규격화된 안정은 이미 평화일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거짓된 평화이며, 해군기지 공사로 인해 갈등과 분열과 적대가 잉태되어 자라고 있는

불안한 상태인 것입니다. 해군기지 공사는 정의가 없는 평화이며

더 큰 불화와 분열과 파탄이 예기되는 위장된 평화일 뿐입니다.

평화는 사랑의 결실로서만 이룩될 수 있는 값진 것입니다.

평화는 이웃에게 대한 사랑의 결과이며,

하느님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그리스도의 평화의 모상이며 결실입니다.

결국 정의를 기초하지 않고 사랑에 입각하지 않는 해군기지 공사는 거짓된 평화입니다.

평화의 본래의 모습이 바로 이런 것이기에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강정 마을주민들과 활동가분들이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평화를 위하여 애쓴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과 지금 여기에서도 일상적으로 만나고 있습니다.

허구의 평화를 고발하고 진실을 들어 빛 속에 밝히는 정의의 사람들이 바로 여기에 계시는 분들입니다.

거짓된 평화의 저울 대신 진정한 평화의 실현을 위하여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평화가 아닌 칼을 주러 세상에 오셨다고 했을 때의

그 칼은 위장된 평화의 껍질을 벗기시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 성전 뜰에서 정의에 반하는 장사치들을 내리치신 것도

모두가 거짓된 평화에 대한 사랑과 정의의 채찍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우리는 우리 주변에 있는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우리 시대의 평화에 대하여 실망하지 않을 수 있음을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러나 과연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과,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들’(마태 5,10)에 대하여

우리는 무엇인가. 그들에게 있어 우리는 착한 사마리아인인가. 아니면 자기들의 할 일이 있고

바쁘다는 이유로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인가라는 생각을 해보야 하겠습니다.

평화를 위해서는 모든 분들이 마음을 모아 확고한 의지와 형제애의 성실한 실천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일찍이 예수님께서 평화의 임금으로서 당신 십자가를 통하여

모든 사람을 하느님과 화해시키고, 한 백성, 한 몸 안에서 모든 사람들의 일치를 재건하시고,

당신 육신 안에서 미움을 죽이시고 부활로 현양되시어,

사랑의 성령을 모든 분들의 마음속에 부어주신 뜻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분들은 평화 건설의 책무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라는 말씀으로

그 책무를 오늘도 일깨워 주시는 것이다.

하루 빨리 강정마을에 평화가 찾아오길 빌며 끝으로 평화의 기도를 읽고 마치겠습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 하고 이해 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며 주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영생을 얻기 때문이니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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