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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6일 강정

2014.05.16 19:03

자발적 가난 조회 수:285

하느님 창조 사업의 완성은 평화입니다.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516일 부활 제 4주간 금요일

 

주례 강론 임시몬

 

찬미 예수님!

 

어제 성모의 밤 행사에 참석하신 분들은

주교님 강론을 잘 들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세월호는 단순히 배 하나의 이름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온갖 모순이 다 담겨 있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세월호에는 밀양이 담겨있고 강정이 담겨있습니다.

쌍용차가 담겨 있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그 힘없는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억압받는 사람들이 함께 차가운 바다 속에 잠겨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월호를 보면서 함께 눈물을 흘리면서

또한 함께 분노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이런 게 무슨 나라냐?

분노를 하는데 있어서는 분명히 올 바라야 될 것입니다.

분노가 우리 행동에 근본적인 동기가 되도록

분노에 우리가 져서도 안 되지만

무엇에 대해서 분노해야 할 것인가?

참으로 분노해야 할 것에 분노하는 분별력을 우리는

키워야 할 것입니다.

복음적인 가치관에 입각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모범을 통해서

우리는 배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작은 것에 쉽게 화를 냅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이런 재미있는 얘기를 했습니다.

사람을 잡아먹는 호랑이보다도 징그러운 구렁이보다도

내 피를 빨아먹는 모기 조그마한 모기

내 피를 빨아 먹으면 얼마나 많이 빨아먹겠느냐?

그런데 그 모기에 더 분노를 한다는 거죠.

사소한 불평을 자아내게 만드는 일들 많죠.

여기 보니 공사하면서 도로에 먼지가 나지 않도록

조치를 해야 하는 것은 기본입니다만

이런 기본도 지키지 않고 여기 왔을 때 트럭이 지나가면서

먼지가 날리니 짜증을 내죠.

그것이 진짜 짜증을 내고 화를 낼 일인가?

정말 화를 내야 될 일이 무엇인가?

거대한 권력에 공권력에 재벌들의 횡포에 거기에 눈감으면서

조그마한 일에 화를 냄으로서 우리가 스스로 민주사회의 시민이

되기를 포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이건희가 죽기 전에 회개 하려고 하는가?

백혈병 사태에 대해서 삼성에서 해결책을 내 놓겠다고

해결을 하겠노라고 하는 보도를 봤습니다.

삼성을 건드리면 삼성이 망하면 우리나라가 망할 것인데

삼성에 대해서 비난 하는 것조차도 두려워했던 사람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용감함 사람들이 있었죠.

그들의 부당한 처사에 대해서 그들의 무책임에 대해서

계속 항의를 했습니다. 계속해서 투쟁하고 길거리에서

목소리를 외치고 영화를 만들어 보급하고 결국 그런 것들이

삼성을 움직이게 만든 것이죠.

그들이 스스로 회개 하지 않습니다.

그런 조그마한 힘들이 보태어 졌기 때문에

이런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강정에 대해서 힘이 많이 빠지기도 했죠.

얼마 전에는 문재인이나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면 달라지지 않을까?

그런 기대도 가졌습니다.

요즈음 또 도지사가 새로 바뀌면 달라질까? 하는 희망도 가집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다 똑같은 놈들이다 하고 욕만 하고 돌아서게 되는데

그러면서 우리가 하는 이 미사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강정의 미사는 진보의 아이콘이라고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소외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연대의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미사는 그 중에 가장 핵심입니다.

미사를 한다고 해서 우리가 강정에 몇 명 모였다고 해서

무슨 도움이 되겠나? 결과론 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미사 중에 공사차량을 운행하지 않기로 경찰과 합의를 본적도 있습니다만 은

어느 사이에 그러한 합의도 물거품이 되어 버렸고

지금 이 시간 우리가 보는 가운데에서도

공사차량들이 들락날락 하고 있습니다.

자 미사 하는 동안 하루에 한 시간 동안

공사차량의 진입을 막는 다고해서 그게 무슨 큰 효과가 있겠냐?

라고 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강정미사는 보수파 사람들에게 있어서

손톱의 가시 같은 존재입니다.

자기네들 생명의 위협을 끼칠 정도는 아니죠.

우리가 그렇게 힘이 없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귀찮은 존재입니다. 이것만 없으면 좋겠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결과에 성공여부에 그렇게 관심을 갖고

거기에 따라서 판단을 하고 행동을 하고 이렇게 해서 이것이

우리의 투자에 비해서 효과가 없다. 그러니 하지 말자.

그런 경제논리에 따라서 행동을 하게 된다면

좋아 할 사람 누구겠어요?

그리고 그 결과 강정은 그들의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강정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이루자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우리가 해야 할 바를 할 뿐입니다.

이번 세월호 사건 우리 모두에게 제일 안타까운 단어는

그대로 있어라! 가만히 있어라.”라는 말 일 것입니다.

가만히 있어라.” 이것이 결국 모두를 죽게 만드는

가만히 있어라.’ 정부는 우리가 다 알아서 할 테니 너희들 가만히 있어라!

라고 얘기합니다.

국방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가만히 있어라.

민주주의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국민의 행복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희들은 가만히 있어라!

그들의 말을 듣고 가만히 있으니까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세월호를 통해서 뼈저리게 배운 것입니다.

가만히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

침이라도 뱉어라.

욕설이라도 퍼 부어라.

한번이라도 방문을 해라.

손이라도 잡아줘라.

따뜻하게 인사라도 해라.

댓글이라도 남겨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얼마나 큰 결과를 가져 올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가만히 있으면 죽습니다.

누가 죽어요? 내가 죽는 것입니다.

성전을 정화 하신 예수님

채찍을 만들어서 소와 양을 후려치고 탁자를 엎고

상인들을 내 쫒으신 예수님의 얼굴을 똑바로 보십시오.

예수님의 정의의 분노 예수님의 그 부조리에 대한 분노

수탈에 대한 분노 억압에 대한 분노

그 밑바닥에는 어렵고 소외받고 가난한 사람들

그들에 대한 사랑이 있었던 것이죠.

사랑이 예수님을 채찍을 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제대로 분노하지 않고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는 것은

사랑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이유 밖에는

다른 이야기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부족함 우리의 무책임 우리의 무관심

우리의 두려움 우리의 비겁함 이 모든 것에 대해서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면서 오늘 이 미사를 통해서

그 나마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우리의 의무를

다 할 수 있게 해 주시기를 청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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