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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1일 강정

2014.05.31 23:48

자발적 가난 조회 수:201

하느님의 창조사업의 완성은 평화입니다.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해군기지 펜스에 free 강정 펜스를 걷어내자 구럼비를 탈환하자!

구호를 적습니다. 우리가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그런데 해군과 삼성은 그 꼴을 못봅니다.

즉시 지워 버립니다.

그들도 알고 있나 봅니다. 자신들이 파괴가 얼마나 큰 잘못인지를

그래서 우리의 구호를 단 하시간도 그냥 놔 둘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정당 투표에서 녹색당을 찍어 달라며 한 사람이 피켓을 들고 앉아 있습니다.

경찰은 차량 통행에 방해가 된다고 합니다.

인도에 의자를 걸쳐서 앉아있는데도 말입니다.

선거운동을 방해합니다.

강정에서 경찰은 더 이상 국민을 위한 경찰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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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일 토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

주례 강론 이 베드로

 

오늘 복음에 두 여인이 등장합니다.

한 여인인 마리아입니다. 마리아는 약혼을 한 상태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문화에서 결혼 적령기는 14세였습니다.

그렇다면 마리아는 14세 정도 되는 보잘 것 없는 어린 여자 아이였습니다.

그에 비해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또 한명의 여인은 나이가 많은 엘리사벳입니다.

그 엘리사벳에겐 아이가 없었습니다.

아이를 못 낳는 여자였고 더욱이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도 없는 여자였습니다.

그런 그녀였기에 그녀는 사람들에게 많은 치욕을 받았다고

루카복음사가는 125절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두 여인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보잘 것 없고 힘없고 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나약한 여인들이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두 여인에게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힘없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통해 세상의 구원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엘리사벳은 예수님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고, 예수님 앞에 자신은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 없다고 말한, 그리고 여자에게 태어난 이들 가운데

더 큰 인물이 없다고 말씀 하신 요한을 낳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은 여인이었습니다.

보잘 것 없는 두 여인에게서 구원의 약속은 시작된 것입니다.

구원의 약속은 비단 오늘 등장하는 두 여인에게만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복음에 보면 구원의 시작을 알리는 성령의 바람은 대부분 가난하고,

보잘 것 없고 스스로 죄인이라고 느끼는 사람,

사람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들에게 일어났습니다.

오늘 복음에 마리아가 찬미의 노래를 불렀던 구절을 통해

보다 더 확실한 구원이 시작되는 큰일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비천한 이들을 굽어보시어 그들에게 큰일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 복음은 이 사회가 행복하려면,

영원한 행복에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답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누려야 하는 권리인 인권을

스스로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인권을 스스로 지켜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재물이 있어서, 권력이 있어서 스스로 지키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나 이 사회의 몇 몇은 아니 이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대 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스스로 지키지 못 할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누려야 하는 인권을 스스로

지켜내는데 방법조차 모르거나, 항상 힘에 붙이시는 분들이 계신 분들이 계십니다.

그들을 국가는 이 사회의 인권보호 대상자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그 어떤 이들보다도 우선적으로 그들의 인권을 보호해 줘야 하는 대상들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누려야 하는 인권을

누릴 수 있도록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도와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돈이나 권력으로 무장된 사람들이 아닌 보통사람들은 자신이나 가족을

돌보는 것에도 힘이 벅차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힘을 모아 그들을 돌보아 달라고

국가에게 대통령에게 국회의원에게 시장에게 도의원에게 교육감들에게

국가경찰공무원들에게 힘을 몰아주었습니다.

이것이민주주의 국가입니다. 그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힘들은,

자신의 것이 아니며 국민의 것이며 그 국민들이 자신들의 힘을

그들에게 몰아 준 것입니다. 이것이 국민들이 선택한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체제인 민주주의입니다.

이 민주주의는 인간이 지금까지 발견한 것 중에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누려야 하는 권리인 인권을 누릴 수 있도록

때로는 스스로 지키지 못하시는 분들에게도 도움의 손길이 닿아

그들이 스스로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장 좋은 체제인 것입니다.

민주주의란 국민이 주인이 되어 국민을 위해 정치가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민주주의 원칙에 따른 정치 즉,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

바로 민주정치입니다. 국민의 정치란 나라의 주인이 왕도 아니고 대통령도 아닌

바로 국민이란 뜻입니다. 국민에 의한 정치는 국민들이 참여해 나라를

다스린다는 뜻이고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말은

나랏일이 국민의 행복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요즘 국민들이 바라는 나라는 어떠한 나라이겠습니까? 네 맞습니다.

잘사는 나라가 아닌 살고 싶은 나라입니다.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강대국의 나라가 아닌 살고 싶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 사회의 목소리가 큰 몇몇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강대국의 나라가 살고 싶은 나라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과연 그럴까요? 지금 한국에서 터지고 있는 사고들을 볼 때

국민들은 여기가 후진국인가? 이것이 나라인가? 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래서 더욱더 경제 강국 군사 강대국을 만들어야 한다?

군대를 헌법으로 폐지한 코스타리카가 행보지수 1위를 차지하는 것은

시사한 바가 큽니다.

국가 GDP15위인 한국과 79위인 코스타리카

1인당 GDP 33위인 한국과 69위인 코스타리카

경제적으로 본다면 한국이 훨씬 더 살고 싶은 나라이고

더 행복한 나라이어야 하지만 지금 한국은 …….

경제적인 부의 크기와 행복의 크기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행복한나라 살고 싶은 나라는 어떠한 나라이겠습니까?

요즘 사람들은 대한민국에 살기 싫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내 자식을 이런 나라에서 키우기 싫다는 것입니다.

사람 냄새나는 자식으로 키우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누구를 이겨야 하고 누구를 짓밟아야 내가 잘 살 수 있는 나라가 아닌

더불어 사는 나라에 살고 싶고 그런 곳에서 내 아이를 키우고 싶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내 자식이 언제 어디서 내 마음에 묻어야 하는

죽음을 맞이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잊지 말자고 합니다.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기억하자고 합니다.

무엇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무엇보다도 사람이 먼저인 것을 잊지말고

잊어서도 안 되고 기억하지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못하는 것을 우리가 여유가 없어서 힘에 붙이는 것을

그래서 우리의 자그마한 힘들에게, 국가에게, 대통령에게, 국회의원들에게,

시장에게, 교육감에게, 국가 경찰공무원들에게 몰아주었습니다.

무엇을 위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 달라고 말입니다.

국민이 모아준 힘들을, 권력을 공권력을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 써달라고

말입니다. 그들의 배를 채우라고 그들의 안위를 위해 싸달라고

그들의 신분 상승을 위해 국민들 한 명 한 명이 모아준 것입니다.

그런데 그 힘들을 잘 못쓰고 있다면 다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내세우면 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사회적으로 나약하고 힘없는 이들을 위해

국민들이 모아준 힘들을 써달라고 하면 됩니다.

국민들도 각자의 삶을 책임지고 살아야 하기에 살아가야 하기에

미처 돌보지 못하는 이들에게 써달라고 하면 됩니다.

매 순간 인간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누려야 하는 권리인 인권을

누릴 수 있도록 그리고 어느 한 순간의 위험으로부터 유린된 인권을

지켜 줄 수 있도록 써달라고 하면 됩니다.

왜냐하면 행복의 시작은 더불어 사는 곳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자가 아니라 같이 더불어 잘 살자가 될 때

우리사회는 살고 싶은 나라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이 이런 생각에 더 확신을 주는 것 같습니다.

나약하고 보잘 것 없고 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두 여인에게

구원이 영원한 행복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사회에서 나약하고 보잘것없고 사람들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리고 그러한 우리의 생각과 같은

사람들을 우리의 일꾼으로 내세운다면 지금보다는 더 살고싶은

나라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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