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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9일 강정

2014.03.30 08:58

자발적 가난 조회 수:243

하느님 창조 사업의 완성은 평화입니다.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벚꽃이 만개 하고 비가 내리는 강정입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강정을 방문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평화의 인간 띠 잇기를 합니다.

경찰도 많이 왔습니다.

길을 막습니다.

인간 폴리스 라인를 치고는 사람들을 통제 합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를 이야기 합니다.

평화.jpg  

 

329일 사순 제 3주간 토요일

주례 강론 김성환

 

예수님 시대에 바리사이들은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일 년에 한번 단식을 했는데

바리사이들은 일주일에 두 번 단식을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곡식과 포도주와 올리브기름을 생산했을 때만

십일조를 바쳤는데 바리사이들은 각화와 본향과 온갖 푸성귀를

생산 할 때조차도 십일조를 바쳤습니다.

다시 말하면 바리사이들은 모든 수입에 십분의 일을 바쳤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 바리사이는

하느님 앞에서 굉장히 떳떳했고 그러면서 자기 자랑을

마음껏 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 시대 세리들은 로마 제국을 위해서

세금을 걷어 들여 가지고 부정 축재를 하고

또 이방인인 로마인들과 자주 접촉했기 때문에

유대인들로 부터는 죄인 취급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엄청나게 죄책감을 느끼고

깊은 회개를 합니다.

아마도 이 죄인은 돌아가서 자기가 부정 축재한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세리로서의 직장을

그만 두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모든 세리가 다 이렇게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회개하는 세리는 아니었었습니다.

또 모든 바리사이들이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교만한 바리사이는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 장면에 우리가 놓이게 된다면

우리는 이 두 사람을 보고 어떻게 생각 하겠습니까?

아마 우리들은 예수님과 달리 생각 할 수가 있습니다.

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가 의롭게 되어서 집으로 돌아갔다는

주님의 말씀과는 정 반대로 우리는 바리사이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직업과 그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만 보고

다시 말하면 겉만 보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필리핀에서 신학교 공관복음 강의를 들을 때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천주교 역사에서 최초의 성인은

교황께서 성인으로 추대하지 않았다고 그러면 그 성인은 누구냐?

바로 예수님께서 추대한 십자가의 오른쪽에 매달려 있었던

그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소위 우리가 말하는 예수님의

오른쪽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던 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 십자가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은

이 우도도 예수님의 왼쪽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던 좌도처럼

지옥에 갔을 것 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우도가 예수님께 회개하는 말을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인간들이 보는 눈과 예수님께서 보는 눈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돈이 많으냐?

없느냐? 지휘가 높으냐? 낮으냐?

또 강남에 사느냐? 강북에 사느냐? 또 좋은 학교에 나왔느냐?

그렇지 않은 학교에 나왔느냐? 하는 이런 많은 카테고리를 두고

겉만 보고 사람을 판단합니다.

사무엘 상권에서 하느님께서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에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나는 이미 그를 배척하였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나는 마음을 본다.

오늘 첫 독서에서 독서는 주님을 알자.

주님을 알도록 힘쓰자. 하는 말이 나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겉만 보고 판단하지 않는 분입니다.

또 오늘 독서에서는 자 주님께 돌아가자 하고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겉만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것도

이 사순 시기를 지내는 한 방법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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