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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

2014.04.04 01:10

자발적 가난 조회 수:217

하느님 창조사업의 완성은 평화입니다.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구로의 프란치스코 복지관에서 강정의

생명평화 미사를 함께 해 주셨다고 합니다.

지킴이들과 주민들이 감사의 말을 전해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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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강론은 43 66주기를 맞이하여 제주교구 주교좌

중앙성당에서 43추모미사를 봉헌 하였습니다.

강우일 주교님의 강론을 보내드립니다.

 

43일 사순 제 4주간 목요일

 

천주교 제주교구 주교좌 중앙성당 73043추모미사

 

주례 강론 강우일

 

오늘 201443일은 제주사람들에게

아니 한국인 전체에게 대단히 의미 있는 날입니다.

아시다 시피 43이 일어난 후 66년 만에

국가가 지정하는 기념일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43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시각이 있고 평가가 다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43이 좌익 무장대가 제주도의 12개 지서를

습격한 하루의 사건을 끝나지 않고 6년이 넘는 세월을 두고

남녀노소 3만여 명의 생명을 도륙하고 그 유가족들 모두를 억압하고

수십 년을 두고 고통 속에 살게 한 비극으로 확산된 것은

국가가 주도한 일 이었습니다.

43이 시작된 것은 미군정 시절이었지만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군대가 본격적으로 투입되어서 대대적인 초토화 작전이 전개되고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된 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으로 수립된

이후에 벌어진 일입니다.

자국 정부가 자국민을 상대로 군대를 동원하여

입에 담기조차 끔찍한 폭력을 행사한 것은

법적으로도 용서 받을 수 없는 행위이고 아무리 비상시라고 해도

용납할 수 없는 반인륜적인 범죄였습니다.

오늘 43이 국가 추념일로 지정되고 지금까지 민간인 주도로 이루어지던

43추도식이 정부의 공식행사로 이루어 진 것은

바로 이 43이 국가의 책임으로 벌어진 사건이요 비극이었음을

만 천하에 인정하고 43 모든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그 한을 풀어보자는 공적인 선언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늘까지 66년이 걸렸다는 것은 그 희생자들에겐

너무나 죄송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 발자국

우리의 역사는 앞으로 전진하는 것 같아서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오늘 오전에 저는 43 평화공원에서 거행된 정부주관 추념식 추도식에

참여 하면서 개인적으로 제가 한 가지 느낀 점이 있습니다.

위령제가 이루어지는 제단 맨 앞에는 제단이 있으면 그 앞줄에

정관계 고위층 인사들이 다들 검은 정장으로 앉아계셨고

또 우리 제주 지자체 장을 비롯해서 제주도 지역사회 원로들이

임석하셨습니다.

유가족 대표의 인사가 있은 다음에 지자체 대표와 총리의 추념사

그리고 헌화 또 분향 이런 절차가 이어졌습니다.

이런 절차가 이어지는 동안 저도 그 앞자리에 앉아 있긴 했습니다만

그 절차가 이루어지는 동안 일반 시민들 평범한 옷차림으로 오신 어르신들은

이런 절차에도 끼지 못하고 제단 뒤쪽에 위패를 모신 위령 봉안소 아니면

저쪽 묘역 가묘이겠지만 묘역 주변을 참배 하고는

마치 어슬렁거리는 구경꾼처럼 공식 추념식에 임하는 고위층들의

행사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분들 대부분 틀림없이 무엇을 구경하러 온 분들은 아닐 것입니다.

그 친지들 중 누군가가 43때 희생되셨기 때문에

그 자리에 오셨을 것입니다.

그 먼 곳까지 구경하러 올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정부 요인과 높은 분들이 추념식을 거행하고 있고

정작 유가족이나 시민들은 주변 가장자리로 밀려서 멀찍이 서서

이렇게 보고 있는 모습을 접하면서 저는 마음이 대단히 편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앞자리에 앉아있는 저 자신도 대단히 송구스런

마음을 금 할 길이 없었습니다.

뭔가 본말이 전도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저 혼자서 이런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제대로 한다면 위령탑 제단 바로 앞에 제일 윗자리에

43으로 상처입고 고통받아온 생존자들이 계시다면

그 분들을 맨 위에 회중을 향해서 앉게 하고

그 아랫단에 유가족들과 자손들이 회중을 향해서 앉고

그리고 그 밑에 2~3단 아래 낮은 곳에 거적이나 멍석을 깔고

거기에 총리나 도지사나 유가족들을 향해서 머리를 땅에 대고

큰 절을 올리며 용서를 청하는 그런 예절을 했다면

얼마나 심금을 울리는 추모의 현장이 되었을까?

저 혼자서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진실한 43 추모식이 되려면 아직 멀었구나!

하는 생각을 저 혼자서 했습니다.

43을 국가 기념일을 지정함으로서 하나의 매듭이 풀어지기

시작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43의 한이 하루아침에 풀어 질 수는 없고

43으로 인해 인생이 절단 난 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상처가

금방 사라질 수도 없고 43희생자들의 무참하고 억울한 희생의 대가가

하루아침에 쉽게 열매 맺어 질수도 없습니다.

이제부터 더욱 우리 제주도민들 그리고 우리 제주 가톨릭 신자들은

43을 추모하더라도 그냥 막연히 돌아가신 분들

참 불쌍하게 돌아가셨구나!’ 몇 초 동안 묵념하는 형식적인 추모가 아니라

43이 뭔지 올바로 알고 추모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43에 무슨 일이 일어났고 왜 그런 일이 일어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어떻게 어떤 고통을 겪으며 죽어갔고

그런 상황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악해 질 수 있는 지를

감추지 말고 희생자들의 증언을 되 살려서

이 제주 지역 사회의 기억을 살려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도대체 이러한 비극을 어떻게 무슨 작정으로

이런 비극을 하느님은 허용하신 것인지 또 이런 비극을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배우기를 원하시는지

또 그 43의 비극을 오늘의 우리 현실과 어떻게 연결시키기를 원하시는지

우리는 계속 고민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고 나서 비로소 우리는 고인들의 영전에서 영원한 안식을 청할

그런 자격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아직도 제주도민들 중에서도 43에 대해서 단편적인 지식밖에

갖고 있지 않고 정확한 기억이 없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또 새롭게 자라나는 후손들은

43에 대해서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역사와 단절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더구나 제주도 바깥에 국민들은 거의 백지상태

무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43에 대해서 아무런 기억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우리 제주도민들은 그래서 43을 증언하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증언이라는 말씀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쓰셨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권력자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진리를 증언 하였지만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을 통하여 증언 한다고 하셨습니다.

세례자 요한도 증언하는 사람이었고 예수님도 증언하는 사람으로

오셨다고 밝히고 계십니다. 오늘 그 복음에서 예수님의 증언은

구체적으로는 38년씩 병마에 시달리면서 힘들게 살아왔고

메사다의 움직이는 연못에 물이 움직일 때 그 뛰어 들어가려 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계속해서 밀리고 밀리기만 하는

그 보잘 것 없는 환자의 고통에 예수님이 그를 눈여겨보시고

연민을 가지고 다가가시고 그를 그 고통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라면

안식일 규범을 어기고 유다인들의 미움과 증오를 한 몸에 받게 되더라도

그것으로 사라이신 아버지 하느님께 대한 증언을 당신의 몸으로

보여주신 그런 증언을 하시겠다는 것이 증언자로서 예수님의 의도 이였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우리 제주도민들에게 이 복음을 통해서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43을 증언하는 증인으로 나서라고

초대 하시는 것이 아닌가?

이를 위해서 우리는 먼저 43을 올바로 알고

하느님께서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43의 무엇을 증언하길

원하시는지 공부하고 고민하고 우리 안에서 먼저 43을 충분히 숙성시킨 다음에

하느님께서 주신 소임을 다해나가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