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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8일 강정

2014.04.09 06:38

자발적 가난 조회 수:233

하느님 창조사업의 완성은 평화입니다.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48일 사순 제 5주간 화요일

 

주례 강론 이동철

 

벌써 사순5주간에 들어섰습니다.

재의 수요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다음 주면 성주간에 들어간다니

사순시기동안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았나? 하고 반성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당신의 아들딸들이 지체하고 있는 동안에도

주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묵묵히 하고 계십니다.

공생활 3년 동안 우리들에게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셨고

그리고 그 중간 중간에 당신이 누구이신지 알려 주셨습니다.

그 알림에는 항상 당신은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도 빠지지 않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도 역시 바리사이들에게 당신의 신분을

말씀 하시고 또한 당신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함께 말씀하십니다.

제자들과 군중들 못지않게 바리사이들도 예수님의 복음과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그 신원에 대해 많이 들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수님을 잡아서 없애버리려고 하니 그 사람이 누구인지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분명히 알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의 행적과 예수님의 말씀을

많이 들었던 사람들 중에 한사람 이었습니다.

그런 바리사이들이 오늘 예수님께 물어봅니다.

"당신이 누구요?" 이에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내가 너희에게 말해 오지 않았느냐?” 라고 되물으십니다.

바리사이들은 분명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많이 들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서도 많이 봐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일까요?

바리사이들은 율법에 정통한 사람이었습니다.

정통하다 못해 율법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보다 엄격하고

규율에 지키며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즉 하느님의 말씀 하느님께서 직접 알려주신 신법에 대해 보다 엄격하고

철저하게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본인 자신들을 일반 이스라엘 백성들과 분리 시켰습니다.

자신들을 더 위에 있는 사람으로 자신들의 신분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자신들의 이름도 바리사이입니다.

바리사이 라는 단어는 분리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는 자신들과

엄격하게 지키지 못하는 일반 이스라엘에게 모범이 되고

자신들을 더욱더 율법에 엄격하고 철저하게 분리시켰습니다.

분리까지는 좋습니다. 율법을 엄격하게 지킴으로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고 자신들을 더욱더 율법에

엄격하고 철저하게 지키도록 만든 다며

그러나 그 분리가 다른 사람을 멸시하고 무시하고 천대하는

방향으로 흐른다면 그리고 율법에 엄격주의가 자신들을

윗사람으로 생각하도록 만든다면 이것은 잘못된

방향으로 분명하게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하느님을 보다 더 찬양하고 찬미하고

보다 더 하느님을 잘 섬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인데

그렇다면 더 낮아지고 하느님의 아들딸들에게 보다 더 봉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즉 율법이라는 법만을 쫓아 살았지 법을 만든 하느님과

법의근본 정신을 내 버린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율법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고

바리사이니 자신들이 그렇게 만들었고

그렇게 많이 들었고 그렇게 많이 보았던 예수님의 말씀을과

행적을 알아보지 못 했던 것입니다.

법이라는 형상만을 중시했지 율법의 본질을 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바리사이에 모습이 지금 저에게도 있음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정작 하느님은 빠져 있는

저 의 삶을 보면 바리사이들과 별 다르지 않는 모습이 있음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피정의집에 있으면서 피정의집 관리나 방문하시는 사람들을

대하는 저의 태도는 간간히 아니 자주 하느님을 빼고 일로서

할 때가 있습니다. 또 여기 이 강정 생명평화를 위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질서의 세계를 위해 인간 사이에

보다 완전한 정의를 갖춘 그러한 질서의 세계를 위해

이 강정에 와서 함께 하려고 하지만 때로는 그러한 본질은 어디가고

싸우는 것에만 목적을 두고 이 강정에 오는 모습을 볼 때

제 자신이 무섭고 두렵고 한없이 폭발물처럼 위험 하다는 생각도

하였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오늘 바리사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는

본질은 어디가고 형상만을 위해서 살고 있는 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고 주님께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이러한 모습을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항상 자신의 행동과 말을 즉 삶을 되돌아보고

본질을 놓치지 않도록 매일 매일 노력을 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계신 저와 신자분들 그리고 평화 지킴이 분들도 그렇지만

지금 현 정부인 박근혜 정부도 여기에서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국민들은 박근혜 정부에게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누려야 하는 인권을 보장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대통령의 본질입니다.

한 국가의 대통령은 그 국가의 국민들이 누구나 기본적으로 누려야하는

권리 인권을 보장해 주고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 정책을 펴고 국민들에게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그 어느 때보다도 그 어느 정권보다도 사회적 약자들이 삶을 비관해서

죽음을 택하고 있습니다.

세 모녀의 자살은 우리사회에 충격을 안겨 주었고

우리를 반성하게 만들었으며

우리사회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또 최근에 있었던 44일인 지난주 토요일

70대 노모와 장애인 아들의 자살 그리고 그 사이에 자살 사건들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분명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뿌리 칠 수 없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라고 물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통령이라는 형상에 취해 국민들이 대통령으로 뽑은 그 원의

그 본질을 잊은 건 아닌지 깊이 반성하는 시간을 꼭 가지시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그 전에 겸손한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

대통령 대선 국정원 개입사건에 대해서 국민들에게 사죄하고

충분한 책임을 지십시오. 또 북한 미사일 사건과 무인 정찰기 사건

왜 꼭 선거철만 앞두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 지

선거 투표율이 가장 저조한 203040대에 비해

선거투표율이 가장 높은 전쟁을 치른 어르신들의 표를 잡으려고

하는 것인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의문이 안 들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박근혜 정부도 예외는 아니지만 여기계신 국가 경찰공무원님들도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국가경찰 공무원 들은 경찰이라는 본질을 잊고 경찰이라는 이름뿐인

형상만을 쫒아 사시는 건 아닌지 의문스럽습니다.

국가경찰 공문원이 무엇을 하는 사람들입니까?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 공공의 질서를 유지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것이 본질이고 그것이 국가 경찰 공무원들이 해야 하는 일이 아닙니까?

상부의 명령이라고 말하면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은 아랑곳 하지 않고

국민들이 몰아준 공권력으로 스스로 생명과 재산을 지키지 못하는 국민들에게

그것도 지켜 주지는 못 할망정 재산을 빼앗은 이들을 두둔하고

심지어 대기업이 빼앗은 재산들을 빼앗긴 이들로부터 지켜 준다며

국가 경찰 공무원들의 본질을 포기하고

대기업에서 고용한 사설 경비업체처럼 대기업의 재산을 보호해주고

지켜주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듭니다.

이런 의문 좀 안 들게 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어제 김성환 신부님께서 고착을 평소에10분 하다가

왜 며칠 20분을 하냐며 물었을 때 고착을 하고 안하고는

경찰인 우리가 판단 한다고 말씀하셨고 이에 김성환 신부님께서는

그렇다면 일관되게 하시라고 말씀드리니

공사장 정문을 막는 신부님 수녀님들도 일관되지 않고

인원이 많다 적었다 하지 않냐 며 말씀하셨죠.

그리고 며칠 전에 수녀님들이 오셔서 드러눕고 하시지 않았냐며

그래서 우리에게 일관되게 하라는 말씀 하라고 마하셨죠.

김성환 신부님은 이에 대해 항의했지만 듣기 실었는지 업무방해라는

이름으로 연행해 가셨죠? 이게 이유가 됩니까?

해군기지 반대하는 신부님 수녀님 그리고 여기오시는 분들이

일관되지 않기에 자기들도 일관되지 않다는 것이라는 것이 말이 됩니까?

공권력인 국가 경찰 공무원들이 사회적 약자인

그리고 힘없는 이들이 그렇게 했다고 힘 있는 자들이 그대로 똑 같이 한다는

것이 그게 이유가 되는 것입니까?

그렇게 말하고도 부끄럽지 않습니까?

어디에서 이유도 안 되는 것을 이유라고 말씀하시는지

의문스럽기만 합니다. 그게 과연 명분입니까?

국가 경찰 공무원님들이 행동하는 그게 업무하는 명분이 되는 것입니까?

의문스럽기만 합니다.

또 국가 경찰공무원 님들이 말씀 하셨죠.

우리는 업무 수행에 충실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네 맞습니다. 업무에 충실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국가 경찰 공무원은 공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 사람이라면 겁부터 먹을 공권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만큼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강자의 쪽에 계십니다.

그리고 여기 계신 분들은 굳이 말하자면 힘없는 몸 하나로 버티고 있는

약자 쪽에 있습니다.

그런 강자가 자신의 업무에 충실하다며 약자를 짓밟아 버리고

말듣기 싫다고 연행해 가고 인권을 무시하고 인도주의 적인 측면은

완전히 배제 한 채 어디 갔는지

이 강정이 동물의 왕국입니까? 약육강식의 현장입니까?

그리 되려고 국가 경찰공무원이 되셨습니까?

그리고 그것이 국가 경찰공무원의 본질입니까?

경찰이라는 형상에만 그 제목에만 머물지 마시고

왜 경찰이 되셨는지 그리고 국가 경찰공무원의 본질이 무엇인지

되돌아보시길 바랍니다.

처음부터 저의 모습을 통해 그리고 평화 지킴이 분들 박근혜 정부

국가 경찰공무원들의 모습 속에서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바리사이들의 모습을 통해서 본질이 아닌 형상만을 쫓아 산다면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것이다는 말씀을 볼 때 주님의 십자가

위에서 죽으셔야 그분이 주님이셨구나! 라고 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항상 찾아오는 정의 평화 생명을 몰라보고

그것들을 모두 잃었을 때 후회하지 않는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정의 평화 생명이었다고 깨닫지 않나 생각합니다.

인간이 살아가야 하는 본질을 다 잃어비리고 난 후에야

그것을 찾으려고 노력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얄 본질을 놓치지 않고 산다면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말씀 분명 우리에게 적용될 것입니다.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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