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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7일 강정

2014.04.09 06:41

자발적 가난 조회 수:259

하느님 창조사업의 완성은 평화입니다.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201247일 성 금요일이었습니다.

문정현 신부님께서 해양경찰 때문에 7m 아래로 추락하신 날입니다.

그리고 2014년 오늘 공사차량 출입을 위해서

기도하고 미사를 봉헌하는 성직자와 수도자를 20여분 이상

아무런 경고 방송 없이 절차를 무시하고 감금했습니다.

그래서 왜 그러냐고 항의를 했더니 연행하였다고 합니다,

미사중 강정천 강정교 옆에 항상 대기중인 2대의 호송 차량

문정현 신부님 김성환 신부님 수녀님 한분과 평신도 한분

수녀님과 평신도는 훈방 조치되었지만

두 신부님께서는 제주 동부 경찰서에 유치 중이라고 합니다.

194731일 제주시 어느 초등학교 앞에서 신탁통지 반대!

분단 반대를 외치던 시위 군중을 구경하던 사람들이

경찰의 발포로 인해 6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그 발포 명령자와 재발 방지를 약속하라는

너무나 상식적인 요구를 하다 7년에 가까운 전쟁보다 끔찍한

제주 43 사건이 발생하였고 정부의 공식 기록으로

그 당시 인구 3만여명이 죽었습니다.

국가 공권력에 의해서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이들이

90%에 다다릅니다.

경찰에 항의를 하면 이제 곧 80을 바라보시는 어르신도

연행하여 유치장에 가둡니다.

 

 

 

47일 사순 5주간 월요일

주례 강론 김성환

 

약혼과 결혼을 한 남녀사이에서 한쪽에서 일탕행위가 일어났을 때

이것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는 민족과 국가마다 비슷한 것도 있지만

많이 다른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모세의 법에 따르면 약혼 또는 결혼할 남녀 사이에서

한쪽에서 일탈행위를 한 것을 간음죄라고 했는데

이 간음죄를 저지른 두 남녀는 돌아 맞아가지고 죽어야 하는

그런 벌칙이 있었습니다.

현대사회의 눈으로 보면 상당히 무서운 법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간음한 여인은 우리가 약혼 상태였는지

또 결혼 상태였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간음 현장에서서 잡혀옵니다.

그러다 보니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상태에서 끌려와서

수치심으로 가득 찼을 것이고 또 이제 죽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두려움도 밀려왔을 것입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과 사람들 사이에서 자기 죄에 대해서

아파하고 반성하는 말은 하지 않지만

자기 죄에 대해서 뉘우치고 다시는 그런 간음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큰 결심은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 짓지 마라하고 그 여인을 용서하십니다.

동서고금을 통해서 다른 종교에 비해서 성범죄에 대해서

유난히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사회가 아직도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사회도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동네에서 한 여인이 간음 한 것이 드러나면 그 여인이 깊이 반성하고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말을 해도 동네 사람들은 그 사람을

깊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동네에서 완전히 고립되어 살아가거나

아니며 그 연인과 그 가족은 동네를 떠나야만 합니다.

정신과 의사 그레이스 케트만이 쓴

말 때문에 받은 모든 상처를 치유하라라는 책에 이런 사례가 있습니다.

교회생활을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던 한 형제가

그만 범해서는 안 될 간음죄를 범했습니다.

그 대상은 직장의 부하 여직원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아내는 알게 되었고 그는 필사적으로 아내에게

용서를 구했지만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교회생활을 열심인 아내는 교회원로들에게 남편을 고발했습니다.

그는 아내의 용서를 받고 싶었고 또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었음으로 교회의 원로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순순히 따르겠다고 맹세까지 했습니다.

그러자 교회원로들은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당신은 마땅히 단죄 받아야 할 죄인입니다.

다음 주일 예배 때 전체 신자들 앞에서 당신의 죄를 고백하십시오.

그 형제는 수치심으로 괴로웠지만 다른 한편으로

죄를 고백하고 나면 얼음장처럼 차갑기만 한 아내도

자신을 용서하고 받아 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면 죄책감을 떨쳐 버리고 마음에 평안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습니다.

마침내 그날이 왔습니다. 그는 공동체 앞에서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청했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의 표정은 한 결 같이 굳어있었고 경멸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예배가 끝났는데도 눅 한사람 다가와서

악수를 청하며 위로해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가 기대했던 용서와 마음의 평화는 헛된 꿈이었습니다.

심지어 아내조차도 그를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그는 뜬 눈으로 밤을 새우며 괴로워했습니다.

순간의 불륜행위는 결코 용서받지 못했고

희망과 기쁨과 사랑 안에서 다시 살고자 했던 간절한 바람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새벽녘에 서랍에서 권총을 꺼내들고 교회를 갔습니다.

전날 모든 교인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했던 바로 그 자리에서

머리에 권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날이 밝아 사람들이 그를 발견했을 때 그는 이미 숨져 있었습니다.

이상이 그 책의 내용입니다.

간음한 남편이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청했는데도 부인은 용서를 하지

못했고 교인들도 용서를 못 했습니다.

간음죄 보다 세상에 돌아보면 더 많은 흉악한 죄가 얼마나

많습니까? 사회구조적인 죄입니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대선 불법 부정선거로 당선된 대통령

엄청난 죄를 지었고 지금도 짓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천주교 일부 신자들 수도자들 성직자들 빼고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이런 죄에 대해서 묵인하면서 성범죄자 들에게는 용서를 청했는데도

그만큼 관대하지 못한 현상이 우리 사회 우리 교회 곳곳에 아직도

있는 거 같습니다. 뭔가 균형을 잃은 태도입니다.

우리 사회가 오늘 복음의 율법학자나 바리사이처럼

무자비한 사람들의 사회가 되지 말고

용서를 청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처럼 쉽게 용서하고

자비를 베푸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우리 함께 기도하고

그런 사회가 하루 빨리 올 수 있도록 청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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