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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4일 강정

2014.03.05 00:41

자발적 가난 조회 수:408

하느님 창조 사업의 완성은 평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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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34일 연중 8주간 화요일

주례 강론 문창우

 

찬미예수님!

제주도에 아름다운 곳이 참 많은데

용기 있게 이곳을 찾아와 주신 신자 여러분들께

가장 고통 받고 소외받는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신앙인으로 이곳에 오신 것에 대해서 감사드리고

좋은 여정이 되길 바랍니다.

시작하면서 제가 농담하나 하면서 시작 할까 하는데요.

제 본명이 비오입니다. 그래서 어제까지 날씨가 아주 좋았어요.

그런데 오늘 오는데 비가 오는 거예요.

제가 비오니까 비온다. 오늘 제가 미사를 주례하지 않습니까?

여기 격문에 보면 비오니! 간절히비오니!

그래서 온비가 오는 간절한 마음으로 생명평화 미사가

잘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강론을 시작하면서 다 아시는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많은 분들이 힘겹다.

또 정말 한숨지을 정도로 어렵다 이런 말들을 많이 합니다.

이것은 단지 경제적인 관계에서만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 안에서도 많이 이야기를 합니다.

가깝게는 제가 오늘 제주시에서 오면서 뉴스에서

어제 개학날이었는데 어떤 여중생이 괴한으로부터 묻지마식의

타격을 받아서 병원에 있게 되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라는 사회안에서 이야기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구요.

또 아시는 것처럼 지난주 신문에 보면 세모녀가 번개탄을 해가지고

세상을 뜨게 되는 이야기 그 월세를 마련하기 위해서

그 각박한 그런 과정 안에서 사회주변 안에서 그 사람들을

보장 할 수 없는 사회 죽음으로 내모는 사회

그리고 뭔가 우리가 사람답게 살아가기에는

장애물을 안고 있는 그런 사회속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죠.

사람들의 거친말들 폭력 그런 사람들의 이면 안에도 보면

세상을 향해서 절망하고 세상에 대해서 너무나 냉소적인 모습속에서

정말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은 끝이다! 절망스럽다!

이런 사회안에서 그런 동작 그런 행동들이 두드러지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오늘 저희들이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 하느님께서는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러한 세상 안에서 결코 절망하지 마라!

그런 희망의 메시지를 독서와 복음을 통해서 계속해서 우리의 성경은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어제 오늘 저희들이 베드로 1서를 계속 읽고 있고요.

어제 들었던 북음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부자청년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면서 쉬운길 우리가 바라는 길

그런 편한 길 그런것들을 우리가 찾기도 하지만

우리 인생을 살면서 만나게 되는 많은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가파른 계곡이 나올때도있고

때로는 거친돌길도 나오고 또 멀게만 느껴지는 계단이 나오기도 합니다.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면서 그런 여정을 걸어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포기했을 때는 또 우리가 얻을 없는 것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제 부자청년이야기에서 부자청년은 한마디로

오늘날 같으면 모범생입니다.

자기가 살아오면서 부족함이 없이 살아온 사람입니다.

계명도 잘 지키고 부모님도 잘 따르고 평소에 걱정 없이 살았어요.

그러나 예수님이 볼 때 그 모범생에게도 장애물이 있다는 것을

지적해 주십니다.

그래서 그러한 과정 안에서 길을 떠나는 것을 봅니다.

저도 지내면서 사람들이 물어봅니다.

신부님 신부님도 걱정 없으세요?”라고 물어보죠.

근데 신부님도 걱정이 없겠어요.

저희들이 근심 걱정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개인적 뿐만아니라 공동체적으로 또 우리 사회를 보면서

또 이곳에 오면서 와서 미사를 하는 것만이 아니라

저도 많은 걸 느끼고 가게 됩니다.

이 강정에 와서 교우분들과 미사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 정말 내가 내 삶에 대한 반성만이 아니라

끊임없이 내가 사제로서 제대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이 사회에 사제들이 우리 하느님께 봉헌한 사람들이

세상을 향해서 봉헌된 삶을 철저하게 살아내고 있는가?

진정 저의 삶을 볼 때도 많은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하느님을 뵈었고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야 하기 때문에

저에게는 더 큰 장애물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 단순히 부자청년 이야기를 전하지만

세례 받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도 이런 부자청년이 되었습니다.

영원한 삶을 주시는 하느님을 알았다는 사실

참된 해복이 무엇인지 정말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어렵고 힘들고 절망스럽다 하더라도

정말 그분께대한 희망으로우리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구나

우리의 사회를 지탱하는 불쏘시게 가 되어야 한다

우리사회에 정의와 평화가 위협받고 흔들리는 곳이 있다면

우리의 사제들이 우리 신앙인들이 그곳에

서 있어야 된다. 생각을 합니다.

오늘 저는 강론을 시작하면서

몇 일전에 한편에서는 가슴이 시리기도 하고 복잡하기도 한

일련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하면서 강론을 시작 할까 합니다.

우리나라에 고위 성직자라고 하시응 분이

바타칸에 있는 로세르바토레 로마노라고 하는 신문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떤 말씀을 하였냐면 정의와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많은 신부님들이 계시는데 그 신부님들이 요즘 시국미사를 하고있죠.

선거를 통해 박근혜 정부가 탄생 했지만

이것은 국정원의 어떤 선거전략이냐 여러 사람들의 댓글

여러 내용들을 볼 때 이것은 부당하다.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

그래서 뭔가 앞으로 이런일이 결코 이 땅에서 일어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되다면서 많은 곳에서 시국미사를 하고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정말 국민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지않으면

대통령을 물러나야 하지 않느냐! 라는 말을 하고 있는거죠.

그런 주장을 하고있는 것에 대해서 합리적이지 않다고 하는

비난하는 것을 듣게 되니까 김인국신부님이 답변을 하셨어요.

세계를 파악하고 세상을 둘러보는 관점이 너무 다르고

한국사회에 대한 평가가 너무 달라서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다.

인터뷰 내용만 보면 아무리 생각이 다르더라도

그렇게 까지 말하기 굉장히 어렵다.

어떤 상황에서 인터뷰가 이루어 졌는지 모르겠다.

생각이 다른 성직자라도 정말 교회의 성직자 사제라고

하는 이의 말이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이 성직자의 인터뷰의 왜곡이었다면 성직자는 국가기관에 의한

대선개입이라는 팩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지난 대선이 매우 공정했고 이에 승복하지 않는 것은

민주주의를 깨뜨리는 파워플레이라고 생각하고있다.

정말로 국정원의 부정부패를 정말 모르고 있는지 정말 묻고싶다.

어쨌거나 그 고위 성직자의 생각은 대다수의 사제나 수도자들

또 평신도들의 생각과는 상당히 동 떨어진 것은 분명하다.

그런 인터뷰를 한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또 기자가 계속해서 그 성직자에게 질문을 합니다.

국가기관의 불법대선개입을 모를 수 있겠는가?

그분이 그러자 김인국 신부님이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 무엇이냐에 따라

모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있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만

본다면 이런 대선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겠는가?

또 고위 성직자가 어떤 창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지 너무나

궁금하다. 그 고위성직자가 신부님들의 행동에 대해 합리적이지 않다

고 판단한 이유를 현재 민주주의 제도에서는 대통령이 지지를 잃어버리면

5년뒤에 정권을 바꿀기회가 있다.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김인국 신부님이 선출된 권력뿐만 아니라 선출되지않은 자본권력과

국정원 검찰 기득권 권력이 새로운 독재라는 사실을 고위 성직자는

생각하지 않고있는 모양이다.

용산부터 쌍용자동차 강정 밀양에까지 이어지는 이 무시무시한

폭력 배후에는 자본독재가 도시리고 있습니다.

지금 사제단은 부패한 정치권력뿐 아니라 타락한 자본권력에 대해서

저항하고 있다. 5년에 한번씩 치러지는 투표로 민주주의가 그냥

자동적으로 진전되고 해결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은

순전히 낙관주의에 불과하다.

또 기자가 물어봅니다. 현 시국에 대해서 사제단은 1987년까지만 해도

매우 중요한 민주화 투쟁을 이끌었지만 오늘날은 정치환경이 바뀌었다.

지금 맞서 싸울 독재정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고위성직자가 말했습니다.

김인국 신부님은 19876월 항쟁덕분에 절차민주주의가 이루어 졌다고 하지만

군사독재가 물러간 자리를 자본독재권력이 차지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왜 보지 못하는지 안타깝다.

사실 정치독재에 대한 저항보다 자본독재에 대한 저항이 훨씬 힘들다.

돈이 사람들의 양심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고위성직자가 지금 한국민주주의에 무슨 문제가 있냐고 반문하는 것은

벌써 그분은 이미 자본의 노예가 되다시피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면서 신부님은 계속해서 그 고위성직자가 아무런 생각없이

던져버렸던 자기가 생각하는 가치 방법론이 과연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 이 땅에 예수님이 가르침 복음의 가르침과 부합하는 것인가?

그래서 그 고위성직자는 정의와 평화를 갈망하는 그 신부님들의 활동이

나중에는 변두리로 물러날지 모르겠다 이런 판단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김인국신부님은 예수님도 당시에 그렇게 하셨다.

변두리로 물러나는 것을 두려워했으면

사제단은 아예 탄생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세상의 중심이 되려는 그런 욕심이나 집착이 없다.

대중의 지지를 못 받아도 괜찮다.

우리는 인기영합주의와 거리가 멀다.

바로 이것이 오늘 교회가 살고자 하는

십자가요 부활의 신비다. 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저희가 제1독서하고 복음을 읽었는데요.

오늘 독서와 복음을 읽으면서 다시금 우리 신앙인으로서

가야할 길 가야할 여정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틀전에 신학교에서 직 수여식이라고

교회제단에 봉사하기 위해서 복음을 낭도하거나

신부님들의 제단에서 하는 것을 도와주는

시종직들을 신학생들이 받는 예식이 있습니다.

시종을 받거나 독서직을 받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정말 저희도 그 친구들에게 축하해주면서

신학생으로서 사제로서 어떠한 길을 걸어가야 되는가?

다짐했던 기억이 있는데요.

저는 오늘 제가 존경하는 어떤 신부님이 당신의 수녀원에 보낸

수녀님의 허원식 착복식날 당부하셨던 글을 나눠드렸습니다.

어쩌면 여기있는 저희들도 세레를 받았기 때문에

세례를 통해서 우리가 영적으로 새로태어났기 때문에

우리모두도 이 수녀님들에 해당되는 표현인거 같지만

우리에게도 해당되는게 아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시작합니다.

수도생활을 시작 하겠다는 거 수도자의 옷을 입는 다는 것은

신분 상승에 표시가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세상의 옷을 벗고 수도복으로 갈아입는다는 것은

세상을 벗고 그리스도라는 예복을 갈아입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를 입는 다는 것은 뭔가 획득하겠다는

뭔가 상승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 아니라

기꺼이 이 세상에서 손해 보겠다는 의지의 표명입니다.

착복하겠다는 것은 가장 아랫자리로 내려가겠다는 것입니다.

서원하겠다는 것은 내 의지대로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제 내 의지를 온전히 하느님께 묶어 두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도자들이 물 좋은 자리 찾기 시작하면 그 수도생활은

이미 볼장다본 생활입니다.

수도자가 떠나더라는 데도 안 떠나겠다고 버티기 작전으로 나오면

그것처럼 불행한 일은 다시 또 없습니다.

수도자가 고상하게 꾸며진 넓은 사무실에 애착을 느끼고

아담한 독방에 갇히기 시작하면 그것으로 끝장입니다.

주님의 옷으로 갈아입는 여러분 늘 버리십시오.

용기를 내어 떠나십시오.

고상하고 살맛나는 곳 때깔 나는 곳이 아닌

저 시끄럽고 악취풍기는 세상의 한가운데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십시오. 거기에서 주님께서 함께 계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가야 할 길을 말해주고 계십니다.

세상의 것으로는 얻을 수 없는 길이라고 하십니다.

때로는 시련이 있고 좌절 아픔과 고통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끝까지 참고 따르면 많은 열매를 얻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독서에서도 베드로 사도는 자신이 그동안 배워왔던

믿음의 길 축복의 길 십자가의 길을 공동체에게 외치고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받을 은총에 여러분의 모든 희망을 거십시오.

전에 무지하던 때의 욕망에 따라 살지 말고,

여러분을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모든 행실에서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얼마 없으면 64일 지방선거 열기가 점점 드높아 질것입니다.

이제 공직에 오르려 하는 사람들 많은 사회를 위해서 봉사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날 것입니다.

저는 제발 그 분들이 오늘 복음에 예수님께서 이야기하시는

그런 십자가의 여정 하느님 뜻 안에 살아가려는 생각

가장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이번에는

그런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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