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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8일 강정

2014.03.19 06:11

자발적 가난 조회 수:256

하느님 창조 사업의 완성은 평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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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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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일 사순 제 2주간 화요일

 

주례 강론 윤정현

 

찬미 예수님!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지키려고 여기에 오신

신부님 수녀님 그리고 많은 신자여러분들 활동가 여러분들

하느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이라믄 박수라도 한번 쳐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지 예! (짝짝짝)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만 기억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보호해주기 위해서 여기온신 경찰 공무원들도

이 자리에 기억 하도록 하겠습니다.

경찰관 아저씨들 수고가 많으십니다. 좋습니다.

이런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오늘은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선포하신 첫 사도적 권고 복음의 기쁨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 지를 함께 들어 보았으면 합니다.

저는 생긴거는 이래 생기도 어 교리신학 박사입니다.

몇 년 전에 로마에 있을 때 일 년에 한번 한국 신부들은 모여서

나누기도 하고 조 모임도 하고 그랍니다.

한 백오십 명 신부들이 있는데 그 일 년에 한번 모이면

50명에서 70명이 옵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예수회 어떤 수사님이 강정 때문에

구속되었다고 로마에서 시국미사를 했을 때

그때 신부들이 80명 이상 모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참여한 수녀님들까지 아우르면 100명이 넘었습니다.

이제 강정은 제주도 혹은 한국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 신부님들 수녀님들 수많은 신부님 수녀님들이 함께

연대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문신부님 아시겠지예~ 좋습니다.

제가 이 복음의 기쁨을 읽으면서 상당히 충격 받은 단어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24항에 나오는 출발하는 교회라는 용어입니다.

교회의 역사상 출발하는 교회라는 단어는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기 적혀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 중에

교황님의 말씀들이 많이 적혀 있는 것은

누구보다도 교황님께서 우리의 처지 우리의 입장을

잘 알고 계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양들의 냄새를 풍기도 양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알아 듣습니다라는

교황님의 말씀을 직접 실천하는 지금도 옮겨지고 계시는

신부님 수녀님 여러분들은 복된 사람입니다.

양들의 냄새를 풍기는 목자가 되십시오! 라고

교황님께서는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냄새를 풍기는 것뿐만 아니라

기쁨을 전하는 이는 그 기쁨으로 흘러 넘쳐야 한다고 합니다.

교황님께서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는 기쁨으로 가득하고 언제나 기뻐 할 줄 압니다.

잦은 승리를 거둘 때 마다 복음화의 활동으로 한 걸음씩 앞으로

내 딛을 때 마다 기뻐하고 경축합니다! 라고 교황님께서는

우리에게 권고하십니다.

이렇게 들려지는 가운데에서도 기뻐 할 줄 아는 얼굴을 우리는

지녀야 합니다. 이렇게 천막 밑에서 미사를 봉헌 하면서도

우리는 기뻐하는 얼굴을 가져야 합니다.

장례식의 참여한 사람들의 얼굴을 지녀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 옮겨지는 그 순간에도

우리 복음화의 대상인 전경 경찰들에게도

복음의 기쁨을 미소로 화답해 주십시오.(짝짝짝)

그래서 이 출발하는 교회 지 위에서부터 저 밑에까지 이어지는

세계에서 가장 긴 교회입니다.

이 출발하는 교회를 교황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격려하십니다.

자기 안위만을 신경 쓰며 패쇄적이며 건강하지 못한 교회보다는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받고 더렵혀진 교회를 저는 더 좋아 합니다.

길의 중심이 되려고 노심초사 하다가 집착과 절차의 거미줄에

사로잡히고 마는 교회를 원하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우리의 양심을 괴롭히는

뭔가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 수많은 형제자매들이

예수그리스도와 맺는 친교에서 위로와 빛을 받지 못하고

힘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길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복음의 기쁨을 선포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어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지금 복음의 기쁨을 선포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렇게 복음의 기쁨을 선포하는 우리는 이 강정에서

하느님의 평화를 선포합니다.

교황님께서는 복음의 기쁨 219항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평화는 단순히 힘의 불안한 균형으로 전쟁만 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질서 더욱 완전한 정의를 인간 사이에

갖추기 위해 하루 하루 노력함으로서만 얻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어제 신부님 수녀님들 그리고 평신도들 활동가들과 함께

비를 맞으면서 제 삶에서 얼마나 평화를 실천하고 살았는지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평화보다는 더 손쉬운 방법 제가 가진 힘으로

신자 백성들을 누른 적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보다는

제가 하고자 하는 방법으로만 이끌고 나간 경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제 비를 맞으면서 저의 과거를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 있는 저는 온몸으로 평화가 무엇이지

평화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고 있습니다.

정말 참된 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서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위로를 주시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위하여 이라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이럴 때 박수한번 치는 겁니다.~ (짝짝짝)

감사합니다. (짝짝짝)

이제 우리는 결론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이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은 일방적으로

우리의 주장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평화가 우리 모두의 일이 되게 하기 위해서

교황님께서는 대화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239항의 말씀이십니다.

이제 대화를 만남의 한 형태로 중시하는 문화에서는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관심에서 멀어지지 않고 기억은 하지만

실천하지 않는 가운데 합의와 동의를 찾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어제 뉴스에 새누리당 원 모 의원께서 제주도 도지사를 출마하시겠다

하면서 이 강정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대책위원회는 그것은 아름다운 정치적 미사여구에 지나지

않는 다고 반박을 했지요.

그것이 옳다는 것이 오늘 아침에 드러났는데 원 모 전의원은

강정문제에 대해서 수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 현재 공사가 일어나고 있는데 이것을 무효화 할 수는 없다.

대신에 상처와 아픔을 다스리는 그런 사람이 되겠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금 여기서 아프고 죽어가고 있는데 아픈 뒤에

상황이 끝나고 난 뒤에 만나서 이야기 하잔요?

아니지요. 지금 입원해 있는 사람에게 와서 어디가 아픈지

무엇이 아픈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논의해야 하지 않습니까?

합의해야 되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미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시작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못한다 라고 하는게 어떻게 합의가 될 수 있습니까?

사제들이 선동꾼입니까?

합의를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땅에 어떻게 하면 하느님의 평화가 더 많이 이루어질지

염려하는 사람들이고 걱정하는 사람들입니다.

진정한 합의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강론을 마치면서 우리 모두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지지자와 협력자들이 숨어 있는 가운데서

우리 모두를지지 할 것입니다.

길 위의 교회 혹은 출발하는 교회를 참여 하는 것은

교황 프란치스코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는 교황님보다 더 빨리 더 많은 것을

이 출발하는 교회에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 안에 성령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인간적인 활동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를

다그치기 때문입니다.

261항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영으로 충만한 복음화는 성령께서 이끄시는 복음화입니다.

성령께서는 복음화 하는 교회의 영혼이시기 때문이십니다.

어떤 영적인 동기와 대안을 제시 하기 전에

저는 성령께 다시 한 번 간청합니다.

성령께서 오시어 교회가 자신에게서 벗어나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하여 담대히 나아가도록

교회를 새롭게 해 주시고 일깨우시고 재촉하시기를 빕니다.

이 시간 성령께서 함께 기도 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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