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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첫째주 강정소식

2015.07.08 10:28

자발적 가난 조회 수: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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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첫째주 강정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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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월요일에는 강정현장팀이, 4시 미사에는 서울예신학교 신부님, 수녀님, 부제님들이 오셔서 미사를 했습니다. 30일에는 강정현장팀에서, 7월1일은 김녕성당, 7월2일은 면형의집, 7월3일은 화북성당에서 함께 해 주셨습니다. 3일부터 5일까지 예수회에서 함께 해 주셨습니다.  서울강서17지구 수녀연합회,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수녀님들도 주간미사에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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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일4시미사에 오신 서울예신학교

서울강서17지구 수녀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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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북성당 교우들과 함께 평화의 인사! 

김녕성당교우들과 미사중인 문정현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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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일의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운동 신문광고 제작 참가자 모집

다가오는 8월 3일이면 강정마을에서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운동을 시작한 지 3,000일이 됩니다. 정부도, 해군도, 국회도, 법원도, 아무도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았던 지난 긴 시간, 언제나 강정의 곁에 있었던 여러분을 기억합니다. 그 이름으로, 강정마을에 다시 한 번 응원을 전하려 합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운동 3,000일.
8/3 신문 전면광고로 강정마을을 응원할 3,000명을 찾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언제나 네 곁에 있을께"

- 참가신청 : http://goo.gl/forms/SiBCOvMMgf
- 참가비 : 1인 1만원 이상
- 참가마감 : 7월 29일(수)
- 입금계좌 : 우리은행 1005-701-852084 (참여연대 제주도대책위)

* 참가하신 분들의 명단을 광고에 모두 싣습니다.
* 참가비 입금 시 가능하다면 입금자명 뒤에 '광고'라고 표기해 주세요.
* 전면광고는 8/3(월) 중앙 일간지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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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이동철 면형의집 신부님

 

 

오늘 예수님께서 당신 앞에 찾아온 중풍병자를 고쳐주시는 기적 이야기가 선포됩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이 병을 앓게 된 이유에 대해 그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죄에 대한 벌로 병을 앓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 중에서도 중풍병자는 혼자서는 일반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고 그래서 다른 사람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까지 준다고 여겨졌습니다. 오늘 등장하는 중풍병자는 중증에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 중풍병자를 평상에 뉘여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는 것에서 그는 혼자서는 어디를 갈 수도 없을 정도로 중풍으로 인해 몸이 많이 굳어 있던 이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를 보고 ‘죄인이며, 사람들에게 피해를 안겨주는 사람이다’라고 생각까지 하였었습니다.

그런 그를 몇몇의 사람들이 예수님께 데리고 옵니다. 평상에 뉘여서 말입니다. 그 몇몇의 사람들은 그 중풍병자를 데리고 가면 예수님께서 고쳐 주실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중풍을 앓아 몸이 굳어 있고, 그래서 거동이 불편하고, 혼자서는 용기를 낼 수도 없었던 그를 다른 몇몇의 사람들이 그의 다리가 되어 주었고, 그의 용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부족한 믿음에 자신들의 부족한 믿음까지 더해 온전한 믿음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들을 본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셨을까요? 흐뭇하셨을 것입니다. 좋아하셨을 것입니다. 그들이 많이 예뻐 보이셨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마음! 그 마음을 예수님께서는 보여주십니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많은 병자를 고쳐주신다는 나자렛 사람 예수님! 그 소식을 듣고도 자신도 병이 낫고 싶어 예수님을 뵈려고 했던 중풍병자! 그러나 혼자서는 움직이지 못해서 포기를 해야 했던 중풍병자! 수도 없이 가졌던 간절한 희망과 수도 없이 찾아 왔던 좌절, 체념을 안고 살아야 했던 중풍병자였을 것입니다. 용기를 수도 없이 내었지만 포기도 수도 없이 했을 것입니다. 낙심하고 체념하며 자신에게는 예수님을 뵐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좌절하였을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얘야 용기를 내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중풍병자를 본 예수님의 첫 말씀이, 수도 없이 찾아왔던 좌절과 포기와 체념을 한 번에 씻겨주신 말씀이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그 중풍병자의 수도 없이 반복했던 좌절과 포기와 체념을 알아 보셨기에 가능하셨던 것입니다. 즉 그 중풍병자가 병으로 아파하고 있을 때 함께 아파하셨던 것이고, 좌절과 포기와 체념을 하며 또 아파할 때 역시 함께 아파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중풍병자를 본 예수님께서는 첫 마디로 ‘얘야 용기를 내어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중풍으로 굳어가고 있는 몸과 수도 없이 포기를 해서 굳어지고 있는 마음에 한 말씀 하십니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당신께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받았다는 것을 말씀하시며 그 병자를 치유해주십니다. 메시아! 그리스도로서 예수님께서는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등장하는 사람들을 묵상하며 성찰해 봅니다.
몸이 자유롭지 못하며 굳은 중풍병자, 예수님께 다가가려고 하지만 수도 없이 좌절만 밀려오는 중풍병자!
지금 이 시대에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며 몸을 굳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 인간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도록 만들며 굳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자본주의입니다. 물론 자본은 인간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자본은 인간 사회에서의 역할에 속합니다. 인간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역할이 아니라 자본이 인간 사회에서 역할, 수단에 속한다는 말씀입니다.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에서 자본은 복지자본주의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즉 자본이 복지를 위해, 사람을 위해 사용된다는 역할,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한국사회 뿐만이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는 복지자본주의가 아닌 금융자본주의 문화로 사회가 인간의 자유를 빼앗아 가고 있습니다. 즉 돈이 돈을 위해 있는 것으로 거기에는 사람의 자리가 없습니다.

 

자본이 많은 경제강대국이 되어야 행복해질 수 있고 복지자본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나냐? 라고 물으신다면 그렇다면 행복치수가 가장 높은 나라가 미국입니까? 라고 되묻고 싶습니다. 국민이 행복 할 수 있도록 군사강대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에서도 전 세계의 군사력 30%를 가지고 있는 미국은 정말 행복한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제2차 세계대전 후에 헌법으로 군대를 폐지한 코스타리카가 행복치수 1위를 차지하고 있고 경제강대국 10위권인 한국보다 72위에 오른 코스타리카가 지금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자본과 행복은 비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행복은 내 몸이 억압되지 않고 자유로운 즉, 중풍과 같은 내 삶이 굳는 것이 없을 때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이런 것을 알고 있는 사람조차 가만히 놔두지 않습니다. 자본이 주가 되고 인간이 그 안에서 역할, 수단이 되는 것이라고 인식하는 순간 내 몸은 굳어지고 사회도 굳어지며, 그로 인해 좌절의 연속은 수순이 될 것입니다.


그런 중풍병자가 그 누구도 아닌 멀리서도 아닌 저 자신임을 봅니다.

그리고 몸과 마음이 자유롭지 못하고, 좌절의 연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를 예수님 앞에 데리고 온 그 몇몇 사람들!! 그들을 보며 그러지 못하고 있는 저 자신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몸과 마음이 자유롭지 못하고 좌절의 연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공감하며 아파하셨던 예수님!!

우리 시대에는 찾기 힘든 부분인 것 같습니다.
그 어떤 나라도 같겠지만 한국 국민들도 고된 노동과 빠듯한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달라며 세금을 내고 있습니다. 또 고된 노동과 빠듯한 살림살이, 시간적 여유가 없기에 자신들을 대신해서 어려운 이웃들을 도와 달라며 세금과 힘들을 국가에 몰아주고 있습니다. 그 세금으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움직이고 공무원들은 국민들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무원들은 특히나 국민들을 위해서 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관심은 어디이겠습니까? 바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그들의 최대 관심사, 아니 전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일반 사무원들과 다르게 공무원들에게 주는 특별한 혜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무원들이 만약 국민이 아닌 자신의 안위와 호주머니만 걱정한다면 그것은 공무원이 아닌 사무원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어찌 공무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사무원입니다. 대통령도 그렇고 국회의원도 그렇고 여기 계시는 국가경찰공무원님들도 그렇습니다. 만약 여기 계시는 국가경찰공무원님들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여기 계시는 국가경찰공무원님들은 사설경비업체 직원에 불과할 것입니다. 출세를 위해 돈을 위해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는 하나의 사설경비업체의 직원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국민을 위하는 공무원이라면 오늘 예수님의 마음을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타인의 아픔을 머리로 이해하며 나오는 동정의 시선이 아닌 마음으로 이해하는 공감의 시선입니다.

대통령, 국회의원들, 지자체장들, 여기 계시는 국가경찰공무원님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을 보며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불쌍하다? 라는 생각이 드십니까? 그렇다면 그들의 아픔을, 지금까지 그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머리로 이해하신 것입니다. 불쌍하다는 생각도 안 드신다면 더 큰일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오늘 예수님의 마음을 묵상하며 어떤 생각이 들어야 하는 것일까요? 네 맞습니다. 미안하다입니다. 죄송하다입니다. 마음으로 이해하고 공감하였다면 미안함이 드는게 정상입니다. 이것이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마음, 아픈 사람을 보며 같이 아파할 줄 아는, 슬퍼할 줄 아는 능력입니다.

이것이 지금 한국 사회에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 모든 것 저에게도 부족한 부분입니다.
을 나는 과연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닮으며 따르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정말 내가 그리스도인인가? 라며 질문을 던져봅니다. 그 질문에 어떠한 답도 못하는 제 자신을 봅니다.
죄를 용서하시는 권한을 받으신 예수님! 그리고 그 권한을 사용하시는 예수님! 서로 용서하여라 라고 수도 없이 제자들과 백성들에게 말씀시신 예수님! 그러한 권한을 당신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명으로 부여해주신 예수님!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인 저에게도 누구를 용서하는 능력이 있는 것인데.... 그 생각을 하니 또 부끄럽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