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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5일 강정

2014.12.26 04:29

자발적 가난 조회 수:130

하느님 창조의 완성은 평화입니다.

 

그대가 평화입니다.

 

1225일 예수 성탄 대축일 낮 미사

 

주례 강론 강우일

 

찬미예수님!

오늘 예수님 성탄 대 축일을 맞이하여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으로

평화의 군왕이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드리고 그분의 그 평화가 여러분들

각자의 마음속에 또 가정에 깃들기를 간절히 기원 하겠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구세주의 탄생을 예고하면서 이렇게 말 하였습니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 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그분의 나라 그분의 왕국은 끝이 없을 것이다 하고 천사는 말을 맺습니다.

그분의 나라 그분의 왕국이란 무엇을 가리키는 말일까요?

그냥 다윗 왕국을 가리키는 말일까요?

마리아의 시대는 이미 다윗 왕조가 멸망한지 500년이 훨씬 지난

그런 때 였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이미 임금이 사라진지 560여년이 지났고

이스라엘은 이민족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는 식민지가 되어서 다윗왕손은

이미 어디에 틀어 박혀 있는지 그 자취도 흔적도 찾아보기 힘든 그런 때 였습니다.

그런 시대에 마리아에게 천사가 난데없이 나타나서 조상 다윗의 왕위를

왕좌를 주시어 야곱집안을 영원히 다스리고 그분의 나라가 끝이 없을 것이라는

말씀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 말씀일까요?

일찍이 다윗 이후에 이스라엘에 많은 임금이 나타나서 나라를 다스렸지만

제대로 임금 노릇을 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에집트를 탈출한 후에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오늘날도 보기 힘든 형제적인

공동체를 이루면서 자유롭게 살았습니다.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그런 임금도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오로지 에집트에서 민족을 이끌어 내신 하느님 야훼 한분뿐 이시라는

그러한 확신이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에게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임금을 세우더라도 하느님 백성을 다스리는 이스라엘의 임금은 여느 나라의 임금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야 된다는 그런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모세는 신명기의 말씀을 통해서

이런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으로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하고

그곳에 자리 잡은 다음 우리도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민족들처럼 임금을 세워야

하는 생각이 들거든 반드시 주 너희 하느님께서 선택 하시는 사람을 임금으로

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 임금은 군마를 늘리거나 그것을 늘리려고 백성을

에집트로 돌려보내서는 안 된다. 임금은 또 아내를 늘려 마음이 빗나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고 은이나 금을 너무 많이 늘려서도 안 된다.

임금은 왕위에 오르면 레위인 사제들 앞에서 이 율법에 사본을 책에 기록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 곁에 두고 평생토록 날마다 읽으면서 주 하느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고 이 율법에 모든 말씀과 규정을 명심하여 실천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 그는

자기 동족을 업신여기지 않고 계명에서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그와 자손들이 이스라엘에서 오랫동안 왕위에 앉을 것이다.”

이 모세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으로 이스라엘의 모든 왕들은

이 말씀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습니다.

다윗도 솔로몬도 갈수록 더 많은 군마를 늘리고 싶었고

아내도 더 많이 늘려가면서 자기 욕심을 채운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느님 말씀을 새기고 날마다 읽고 배우고 실천하는 임금은 참으로

이스라엘 역사상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권력과 부를 한번 차지한 사람들은 그 걸 더 많이 더 오래 독점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탐욕을 부렸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온 세상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지난 1219일 헌법 재판관 8명이 통합 진보당 해산이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정당해산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인 해악을 끼칠

구체적인 위험성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되어 있습니다.

민주적인 기본 질서에 실질적인 해악을 끼칠 구체적인 위험성이 있어야 된다.

그런데 헌법 재판관들도 통진당 강령에서 그런 위험을 실제로 찾아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강령에 진정한 목적이나 숨은 목적을 추론해보면

추정해보면 그런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면서 해산 선고를 내렸습니다.

그들의 당 강령이 북한의 것과 유사함으로 북한을 동조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러한 헌법 재판소의 판결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민주주의 이 나라에서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고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유신시대로 회기 시키고 퇴보시키는 편향된 판결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요즘 여러 가지 사건 등으로 여론의 비판을 받고 흔들리는 정권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이 나라 최고 법조인들이 소위 지록위마(指鹿爲馬)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독재자들의 어떤 폭정을 가능하도록 자리를 까는 역할은

항상 법조인들이 앞서서 했습니다.

나치제국에서 유대인들을 일반시민으로부터 격리시키고

게토라는 울타리 안에 가두어 버리고 국민의 자격을 시민의 자격을 박탈하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집단 수용소에 감금하고 집단처형까지 할 수 있었던

그 배경에는 독일의 최고 재판소 재판관들이 히틀러가 내 놓은 비상조치법에

동의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이승만 정권 때부터도 끊임없이 그런 일들이 이루어져 왔고

항상 정권의 잘못된 정책이나 행동을 법전문가들이 그 합법성을 부여 해주고

정당성을 보장해 주었습니다.

유신 시대에고 긴급조치법으로 수많은 사람을 억압하고 고문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것도 법조인들이었습니다.

그 때 중죄인으로 단죄된 많은 이들이 오늘날에 비로소 무죄 판결을 받고 있으니

이런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을 보면 아무리 속임수를 쓰고 장엄한 표현을

동원하고 해도 거짓은 언젠가는 반드시 드러나고 밝혀진다는 것을

우리는 오늘 현실 속에서 배우고 깨닫고 있습니다.

다만 21세기에 들어와서 이런 과거의 일이 과거의 잘못이

다시 또 재현되고 있다는 것이 너무 부끄럽고 가슴아플 따름입니다.

어제 낮에 시편 낮기도를 바치면서 제 마음에 너무나 와 닿은 구절

오늘날 이 시점에서 많은 이들이 함께 외우고 싶은 기도 구절이 있어서

여러분에게 읽어 드리겠습니다.

시편 94편의 말씀입니다.

 

주님 응보의 하느님이여

나타나 보이소서 응보의 하느님이여.

세상의 심판자여 일어나소서

거만한 자에게 제 값을 치러 주소서.

주여 악인들이 언제까지나

언제까지 악인들이 흥청대리이까.

버릇없이 함부로 지껄이리이까

죄를 지으면서 뽐내리이까.

주님 그들은 당신 백성을 짓밟으며

당신의 기업을 괴롭히나이다.

법의 허울로 사람을 괴롭히는 불의한 법정이

어찌 당신과 벗할 리 있으리이까.

사람들이 의인의 목숨을 빼앗으려 하고

애매한 죄를 씌워 피를 흘리려 들지라도,

주께서는 분명 나의 보루 되시고

하느님은 이 몸 숨길 바위가 되시리라.

아울러 그들의 죄를 갚으시리이다

그 죄와 더불어 그들을 없애시리이다

우리 주 하느님께서 그들을 없애시리이다.

 

오늘 우리도 부당한 권력에 짓눌리면서 고통 받는 모든 이들과 함께

강정에서 벌써 몇 년째 힘들게 외롭게 고통스럽게 견디고 있는 이들과

함께 그들을 대신해서 이 시편의 기도를 올리면서 이 어두움이 너무나 아직 강하게

힘을 발휘하는 이 세상에 찾아와 주시는 우리 주님께 호소하고

이 시편 저자의 기도를 한 마음으로 우리도 탄원하고 외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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