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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일 강정

2015.01.21 08:35

자발적 가난 조회 수:116

하느님 창조의 완성은 평화입니다.

 

그대가 평화입니다.

 

120일 연중 2주간 화요일

 

지난 17일 사제서품을 받으신 세분의 새 사제가

오늘 강정에서 첫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미사 후 세분의 새 사제 강복과 묵주의 기도가 함께 진행되는데

경찰은 새 사제의 강복을 받고 있는 그 순간에도

공사차량 출입을 위하여 고착하고 끌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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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8시 해군이 용역들과 공권력을 동원하여

강정 해군 관사 앞 천막과 차량을 철거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해군이 용역을 동원하는데 들어간 경비 11천만 원을

배상하라고 합니다. 또 한 번 피바람이 예고되고 있습니다.

용역을 채용하는 경비가 11천만 원이면 얼마나 많은 용역들이

몰려올까요? 거기에 경찰은 또 얼마나 많이 올까요?

우리는 한사람이 얼마나 많은 용역과 공권력에 맞서야 하는지?

주님 자비를 자비를 베푸소서!

 

강정으로 모여 주십시오. 기도하고 함께 하여 주십시오.

 

주례 문창건

강론 문창건 부재환 김영일

 

문창건

찬미예수님!

오늘 여러 가지로 많은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생각 중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드디어 우리의 시대가 도래 했구나! ㅎㅎㅎ

이런 생각이 좀 떠올랐습니다.

제가 강정에 이렇게 온지 몇 년이 되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오면서 저희가 서품 받는 그때까지 강정의문제가 어떻게 될까?

사실 그때는 뭔가 금방 해결될 것 같은 그런 순간도 있었어요.

뭔가 이런 것들이 잘 마무리 되고 정말 평화롭게 모든 것이

이루어 질 것이라는 인간적인 희망 기대 하는 게 굉장히 부풀어

올랐을 때도 있었고 또 시간이 지나면서

! 정말 상황이 이렇게 가버리나? 하면서 뭔가 절망스럽고

뭔가 희망이 없는 듯 느껴지는 그런 어둠의 시간들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어떻게 보면 우리 인간이 희망 한다는 것 우리 인간들이 욕심내는 것들이

인간적인 면에서 봤을 때는 굉장히 절망스러울 만큼 굉장히 천천히 올 때가 있죠.

하느님께는 그러한 우리의 인내의 시간과 어둠의 시간을 통해서

우리를 단련시키고 있지만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우리를 힘들게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어떻게 희망이 우리를 찾아오지 않을 수 있을까? 라는

어떤 절망감에서 우리 스스로 뿐만 아니라 우리 옆에 있는 많은 이들을

더 우리 스스로가 아프게 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평화!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평화!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이 땅의 사랑과 정의라는 것은

인간들이 생각 할 때 단순히 정치 지도자가 바뀌고 제도가 바뀌고

사람들의 분위가 바뀌고 그게 아니라 정말 우리 모두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땅에 대한 기은 묵상과 더불어 하느님 뜻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 그리고 기도 그 안에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어 가신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강정, 강정뿐만 아니라 전국에 있는 많은

힘들어 하고 있는 여러 곳이 있죠! 노동자들도 있고 밀양의 송전탑

싸우고 계시는 할머니들도 있고 여러 가지 사회문제로 인해서

여러 가지 다른 사장으로 인해서 힘들어 하시는 분들이

정말 어떠한 면에서는 왜 그래야만 하는가 하는 인간적인 마음아픔이 분명 있지만

정말 그 안에서 어떻게 하느님께서 이끌어 가실 것인가?

그리고 결국에 우리가 추구 하고자 하는 그 평화라는 것은

절대 인간의 힘으로 권력이나 어떤 정치적인 힘으로 일궈낼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처절하게 깨달았을 때 그런 것에 대한 처절한 실망이 있지 않고서는

우리가 원하는 평화 생명과 사랑이라는 것은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을

저는 이 강정을 바라보면서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에 함께 하고 있는 평화 활동가들뿐만 아니라

여기 공사장에 인하시는 노동자 여러분 국가의 명령을 받고 와있는

경찰들 이 모든 분들이 우리가 하느님께로 나가야될 하느님 백성인 것이죠.

우리 안에 인간적인 욕심 미움 다툼 이런 것들 안에서 우리가 나눠지고

갈라지고 뭔가 서로를 깎아 내리고 이런 것들이 하느님나라 우리가 얻으려는

영원한 생명 영원한 평화 하느님이 주시는 평화로 나아가는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강정에 올 때 경찰들의 무자비한 폭력도 폭력이지만 평화 활동가들의

다른 이들을 향한 딱딱함 강함 그것 또한 우리가 부서져야 할

우리자신의 나약함이 아닐까 저는 반성해 보고자합니다.

우리가 함께 하느님 나라로 나아가고 하느님 뜻이 이 땅에 실현된다는

것은 우리자신의 갖고 있는 인간적인 욕심 욕들을 철저하게 부수어 낼 때 많이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생명과 평화를 이루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영일

찬미예수님

신학교 생활 하면서 기도하면서 공부하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이

결국에는 사랑이구나 라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

인간이라는 존재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 되었잖아요.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사랑이신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우리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사랑으로 존재 할 때 참 행복을 느낄 수 있고

참 인간이 되고 그렇게 살아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 많은 분들이 느끼실 거예요.

이런 우리의 주어진 상황과 현실을 보았을 때

이 상황이 하느님의 사랑이 가득한 때 인가? 하면 많이 마음이 아픕니다.

결국에 이 강정 문제도 그렇고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세월호 문제도 그렇고

결국에는 우리가 인간에 대한 사랑 그리고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생명들 전체를

사랑하지 못함에서 모든 문제가 발생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각자 있는 자리에서 사랑 할 때 평화가 시작되고

생명이 존중되고 정의가 실현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기 있는 평화 활동가뿐만 아니라 각자 자기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 사랑을 느끼고 실천 할 수 있도록 특히나 여기 세분의 새 신부님과 부제님

저희가 그런 사랑을 실천하고 선포 할 수 있도록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픈 곳에서 함께 하시는 여러분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부재환

저는 제 작년 여름에 강정 평화 대행진 했을 때 그리고 끝나고 나서

어느 한 수녀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사제를 준비하면서 마음속에 간직했던 서품 성구가 있었는데요.

루카복음 58절에 보면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구절이 있습니다.

제가 신앙생활 하면서 신학교 살면서 가장 저를 뜨겁게

너무나도 사랑했기 때문에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라고 고백을 했었는데

그런 이야기를 수녀님과 주고 받았는데 수녀님께서는 그런 이야길

해 주셨죠. 이제는 우리가 용서 받은 죄인으로서 좀 밝게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에게는 또 새로운 지향이 생간거죠.

그러면 내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을

계속 고민했었습니다. 그때 저는 그 지향이 바로 평화 였습니다.

제가 논문도 평화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있었는데

우리 카톨릭 교회에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런데 우리는 평화를 너무나도 작게 알고 있다.

평화가 우리 카톨릭교회에서 하느님께서 주신 얼마나 큰 선물인지

알게 되었고 이 평화를 전하는 일군이 되어야 갰구나! 라는

지향을 계속 두면서 서품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평화라는 것이 우리는 흔히 그렇게 이야기하잖아요.

평화롭게 지내세요.’ 싸우지 말고 잘 지내라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너무나도 평화를 좁게 생각하는 거죠.

평화롭게 지내라는 것은 평화는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고

다툼 이런 것이 없다는 것이 아니고 너무나 사랑으로 가득차서

다른 다툼과 미움과 증오 이런 것들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평화롭게 지내라! 평화롭게 살아라! 는 것은 서로 사랑하며 지내라는

아주 충만한 하느님의 선물인 것이죠.

여러분들이 강정 문재를 바라보면서 우리가 평화를 지향하고

여러분들이 평화를 위해서 미사에 참여하고 기도하고 활동하지 않습니까?

평화롭지 못하면 평화를 전 할 수가 없고 평화롭게 산다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충만하게 살아가는 것이고 그 사랑은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바로 그 계명의 실천인것입니다.

저는 프란치스코입니다. 신앙을 늦게 가졌습니다.

신자가 아닐 때 어느 성당에서 끝기도로 평화의 기도를 바치는데

그 기도문을 보고 세례를 받으면 프란치스코로 해야지!

그 꿈은 이루어 졌습니다.

그리고 그 지향을 갖고 여러 평화와 간련된 것들을 계속 하게 되더라구요.

제가 결국은 논문도 그렇게 쓰게 되었고 그 과정에 강정을 만났습니다.

제가 서품 성구로 평화가 너희와 함께!’ 로 하게 되었고

그런 지향을 갖고 계속 하다보니 저에게 그런 부르심과 응답이 이루어 졌구요

저에대한 실천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결정적으로 제가 강정 소속 서귀복자 성당 보좌 신부로

첫 부임지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계획은 너무나 오묘 하시고

제가 청한 염원하는 그런 것들을 들어주시더라고요.

여러분들도 이 평화 라는 것 누군가 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들의 역할이 있는 것이고 저도 이제는 사제라는 직을 맡고

더 큰 일을 해야 할 그런 은혜로운 선물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들도 평화를 위해 일하는 일군이 되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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