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11월 11일 강정

2014.11.12 08:55

자발적 가난 조회 수:131

하느님 창조사업의 완성은 평화입니다.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대가 평화입니다.

 

강정마을에 큰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해군은 관사를 짓기 위한 공청회가 주민들에 의해 2차례나 무산 되었지만

주민들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하고 군 관사를 강행하였습니다.

군 관사 입구에서 공사차량에 대한 출입을 금지하는 것으로

군 관사 저지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군 관사 입구에 마을버스로 막고 삼촌들이 나와서 교대로 지키고 있습니다.

평화센터 4거리에서 24시간 철야로 지키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을과 범대위 에서는 기자회견을 하고 군 관사 저지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미국에서 가톨릭 워커스 평화 활동가들이 강정을 방문 중입니다.

 

1111일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

 

주례 강론 박동호

 

오늘 예수님께서는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하십니다.

 

물론 우리는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주님의 제자이기 때문에 좋은 일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축복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그 하느님의 축복을 여러 가지로 해석할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행복이 그것일 것입니다.

행복에는 참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기쁨과 희망을 같은 마음의 것들도 있을 것이며

건강과 재물같은 것들도 있을 것입니다.

성공도 있을 것이고 권력도 있을 것이며 명에도 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만사형통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시는 것처럼 사람과 사회는 언제나 만사형통하지 많은 않습니다.

만사형통하기보다는 만사불통한 것처럼 보일 때가 참 많습니다.

그렇다면 만사형통하다면 하느님의 축복이 있는 것이고

만사불통하다면 하느님의 저주가 있는 것인가?

물론 그렇게 생각하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는 주님의 제자들이라고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만사형통과 만사불통의 상황은 사람의 입장에서 본 것

복음의 표현대로 의 입장에서만 본 것입니다.

사실 인간적으로만 볼 때 종의 입장에서만 볼 때

하루 종일 들에서 일하다 들어왔으면 편안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밭을 갈았고 양을 쳤으며 자기 할 일을 다 한 것이고

그렇게 자기 일을 다 했으며 마땅히 자기 몫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 할 수 있습니다.

할 일을 다 한 것 같은데 자기 몫을 받기는커녕 해야 할 일이 계속 남아있다면

참 고달프고 힘들다고 느낄 것입니다.

적어도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한걸음 더 나아갈 것

우리에게 요구 하십니다.

인간의 입장, 종의 입장에서만 보지 말고

하느님의 입장 주인의 입장에서 볼 것까지 말입니다.

주인은 종에게 밭을 갈고 양을 친 것에 그치지 않고

돌아와 시중을 둘 것 까지 요구합니다.

종으로서야 밭을 갈고 양을 친 것으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주인에게는 일하고 돌아와 시중드는 것까지 해야

해야 할 일을 다 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주님의 참된 제자들에게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우선 경신례를 생각할 것입니다.

성당이라는 공간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기도생활을 하면

하느님께 해야 할 일을 다 한 것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 교회 안팎에서는 그것만이 해야 할 일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도 너무 많습니다.

이들은 성당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세상의 일이니까

주님의 제자들이 신경 쓰지 말고 그런 일들은 세상의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 주장에 그렇게 하면 만사형통할 것이라는 달콤한 유혹을 덧붙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믿고 있거나 그렇게 주장 한다면 아주 심각한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다른 종교는 몰라도 그리스도교 자체를 부정해야 한다는 문제가 그것입니다.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분부하신대로 다하지 않겠다는

주인으로부터 분부를 받은 대로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않겠다,

그 대신 내 식대로 하고 싶은 일만 골라 하겠다는 뜻이지 때문입니다.

성경전체를 두고 주님의 참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은 두 가지 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다른 하나입니다.

사실 이 둘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영혼과 같다면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은 그 영혼이 머물고 있는 과 같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영혼 따로 몸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을 사랑한다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이웃을 사랑하면서 하느님을 사알하지 않는다는 것은 유체이탈과 같습니다.

온전한 사람이 아닌 셈입니다.

그러니까 주인이신 그리스도로부터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한다는 것은

성당에서 주일경신례를 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되어 쓰러져 있는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는 일까지 했을 때

비로소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이웃은 있게 마련입니다.

주님의 참된 제자에게 이웃은 다릅니다.

마음에 들고 뜻이 맞고 수준이 같은 사람만 이웃이 아닙니다.

배고프고 목마르고 헐벗고 떠돌아다니고

병들어 누워있거나 감옥에 갇힌 이 뿐만 아니라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되어 길거리에 내버려진 이까지 이웃이기 때문입니다.

성공한 사람들 눈에는 만사형통이 아니라

오히려 귀찮은 일, 불편한 일, 어리석은 일, 쓸데없는 일로

만사불통으로 보일 것입니다.

프런치스코 교항은 형식적 경신례라는 높은 울타리에 갇혀

만사형통을 꾀하는 교회생활을 번영의 신앙생활이라 부르면서

교회가 안일 그렇다면 악마가 가라지를 뿌린 것이라고 했습니다.

대신 강도를 만나 모든 것을 빼앗기고 초주검이 되어 버려진

무수한 이웃을 찾아 나사고

빛을 비추고 복을 빌어주고 활력을 불어 넣고 일으켜 세우고

치유하고 해방시키는 일을 하는 것

그렇게 해야 할 일을 하는 것그리스도 십자가의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오늘날 번영의 신앙생활을 만끽하는 사람은 한 마리 양이고

그 한 마리의 번영을 위해 아흔 아홉 마리의 주님의 양의 울타리 밖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이 사회에서 주님의 참된 제자 교회 그리스도인에게

자기 포도주와 기름을 써가면서 자기 나귀를 내주면서

여관비뿐만 아니라 두 데나리온의 경비를 대주면서

치유하고 동행하고 일으켜 세워 주어야 할 이웃은 누구이겠습니까?

주님의 참된 제자가 따라야 할

그리스도 십자가의 영광의 길은 무엇이겠습니까?

제주 강정은 강도를 만나 귀한 것을 빼앗기고 두들겨 맞아 초주검이 된 이웃입니다.

자주독립 국가에 있어 가장 귀한 것이 자주권입니다.

옛날 교과서에서는 이를 민족 자결주의라고 했습니다.

100여 년 전 오부 대신(농공 교육 외교 국방 내무)이 체결한 을사늑약은

외교권과 국방권을 일본에 넘기는 것이었습니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형국입니다.

나라만 다를 뿐입니다.

강정은 대한민국 내 숭미주의 자와 부일세력 그리고 무관심한 대중이

부일세력과 제국주의가 외교 국방을 미국에 넘긴 현장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된 사람

제주 강정은 주님의 참된 제자들의 이웃입니다.

제주 강정은 그리스도 십자가의 영광의 길입니다.


11111.jpg


11112.jpg


11113.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