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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4일 강정

2014.11.15 00:22

자발적 가난 조회 수:153

하느님 창조의 완성은 평화입니다.

 

그대가 평화입니다.

 

한라산에 눈이 왔습니다.

이제 추운 4번째 추운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1114일 연중 32주간 금요일

 

주례 강론 양창조

 

찬미예수님! 안녕하세요?

네 저 정문쪽은 또 고착을 당했습니다.

우리 신부님들 수녀님들 그리고 많은 평화를 원하는 분들이

원하는 대로 하루 속히 평화가 깃들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오늘은 연중 제 32주간 금요일이며 우리들은 강정의 평화를 위해

이 자리에 모여 주님의 은총을 청하는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제가 강론에 앞서 여러분들에게 글을 하나 읽어 드리고자 합니다.

 

건물(建物)은 높아졌지만

인격(人格)은 더 작아졌고,

고속도로(高速道路)는 넓어졌지만

시야(視野)는 더 좁아졌다.

 

소비(消費)는 많아졌지만

기쁨은 더 줄어들었고,

집은 커졌지만

가족(家族)은 더 적어졌다.

 

생활(生活)은 편리(便利)해졌지만

시간(時間)은 더 부족(不足)하고,

가진 것은 몇 배가 되었지만

소중(所重)한 가치(價値)는 더 줄어들었다.

 

학력(學力)은 높아졌지만

상식(相識)은 더 부족(不足)하고,

지식(知識)은 많아졌지만

판단력(判斷力)은 더 모자란다.

 

전문가(專門家)들은 늘어났지만

문제(問題)는 더 많아졌고,

()은 많아졌지만

건강(健康)은 더 나빠졌다.

 

돈을 버는 법()은 배웠지만

나누는 법()은 잊어 버렸고,

평균수명(平均壽命)은 늘어났지만

시간(時間) 속에 삶의 의미(意味)를 넣는 법()은 상실(喪失)했다.

 

달에 갔다 왔지만

길을 건너가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졌고,

우주(宇宙)를 향해 나아가지만

우리 안의 세계(世界)는 잃어버렸다.

 

공기(空氣) 정화기(淨化器)는 갖고 있지만

영혼(靈魂)은 더 오염(汚染)되었고,

원자(原子)는 쪼갤 수 있지만

편견(偏見)을 부수지는 못한다.

 

자유(自由)는 더 늘었지만

열정(熱情)은 더 줄어들었고,

세계평화(世界平和 )를 많이 이야기하지만

마음의 평화(平和)는 더 줄어들었다.

 

많이 들어 보셨죠. 2013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송년사에서 했던 글입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이 글을 들으시면서 어떤 마음이셨습니까?

잘은 모르겠지만 모두들 이러한 우리들 세상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갖지 않으셨을까? 합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글을 보면서 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들이 서 있는 이곳 강정의 모습을

보면서도 그러하실 것입니다.

아니 더욱더 안타까운 마음이 크실 것입니다.

제가 첫 사제가 되어 강정에 처음 미사를 봉헌하러 왔을 때를

떠올려 봅니다. 제가 첫 미사에 강론을 하면서 거짓, 나쁜 짓, 미친 짓,

못된 짓, 어리석은 짓 등의 단어를 사용하며 강정의 아픔을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도층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강정에서 보이는

횡포에 대해서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게 3년 전 일인데 아직도 이곳 강정에서는 그 안타까운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혀 변화가 없습니다.

심지어 지도층들의 횡포의 질어 더욱더 나빠지고 포악스러워 졌습니다.

제가 오늘 강론에 앞서 읽어드린 글처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이곳 강정에는 거듭된 건물은 들어서고 있지만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지도층의 인격은 점 점 더 작아지는 힘들고 어려운 주민들을 바라보는 시야는

좁아졌음을 주민들의 편 보다는 자신들의 기쁨만을 채우고 있음을

강정을 사랑하는 강정을 보전하고 보호하려는 주민들의 가치를 무참히

짓밟으며 자신들의 가치만을 올리는 것에 미쳐 있음을

주민과 함께 주민들이 살기 좋은 고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초등학생도

알고 있는 상식을 벗어난 상식 이하의 모습을 보이고 있음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더 좋은 강정이 될 것이라는 사탕발림 거짓말로

사람들을 현 혹하고 파괴를 일삼고 있기에 더욱더 큰 문제점이 생겨나고

있음을 강정주민들의 아픔을 치유해 주어야 하는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그들의 아픔을 배가 되게끔 하며 그들의 건강을 해치고 있음을

없는 와중에도 이웃 주민들과 나누고 베푸는 소박한 삶을 이어갔던

이 곳 강정을 파괴와 분열의 삶으로 바꿔버리고 있음을

아무것도 모르지만 강정의 평화를 지켜내기 위해 자신들의 태어나고

살고 앞으로도 살아갈 이곳에 평화가 아닌 자신들의 이익 창출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 밖에 생각하지 못하고 있음을 자신의 목숨은 중히 여기면서

주민들의 목숨은 하찮게 여기며 온갖 억압으로 주민들을 억압하고 있음을

이러한 잘못된 짓들을 하고 있는 지도층들을 바라보며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저의 목숨을 보전하려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마지막 날데 데려갈 사람은 누구 입니까?

바로 강정의 평화를 위해 자신의 목숨도 내어 놓는 평화를 갈구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반대로 버려질 사람은 누구 입니까?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이곳 강정 주민들의 애절한 마음을

힘과 권력으로 무시하고 짓밟고 있는 그들이 바로 버려질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요한 2서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가 그분의 계명에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계명은 그대들이 처음부터 들은 대로 사랑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라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분명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사랑하는 것 사랑을 나누고 베푸는 것입니다.

속이는 자들까지도 원수들까지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

이곳 강정 주민들을 무시하고 짓밟고 있는 그들까지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버려질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끌어 들이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소명이기 때문입니다.

집안에 자녀가 나쁜 짓을 하면 부모는 어떻게든 그 자녀가 다시는

나쁜 짓을 하지 않도록 교육시킵니다.

이처럼 지금 이곳 강정에서 자신들이 하는 짓들이 얼마나 나쁜 짓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교육시키는 것 그것 또한 우리들의 몫입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이 미사를 통해 하루라도 빨리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들이 얼마나 나쁜 짓인지를 깨닫고 그 짓을 멈춰야 함을 알아차리도록

주님께 간절히 청하도록 합시다.

잠시 묵상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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