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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3일 강정

2014.05.13 17:31

자발적 가난 조회 수:201

하느님 창조사업의 완성은 평화입니다.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벌금노역.

생명평화 순례단의 권단장님께서 80이 눈앞인데

오늘로 18일째 노역을 살고계십니다.

누군가는 벌금을 내고 누군가는 노역을 살고

누군가는 구속이 되고 재판은 계속 진행중입니다.

정의를 꿈꾸는 자. 벌금을 내거나 노역을 살거나

구속이 되어 감옥을 삽니다.

  IMG_5267.JPG

 

513일 부활 제 4주간 화요일

 

주례 강론 박 루도비꼬

 

안녕 하세요?

 

지난 3월에 회의 때 오고 2달 만에 이곳을 오게 된 것 같습니다.

어제 와서 관사로 보이는 건물이 이렇게 높아지는 모습이 좀 더 마음을

우울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부활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부활 4주간째 접어들었는데 지난 성주간에 있었던

세월호 참사로 인해서 아마도 올해 부활처럼

굉장히 마음 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슬픔이 많은 부활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설명하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렵고

받아들이기는 더더욱 어려운 일들이 21C 라고 하는

2014년도에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들 인 것 같습니다.

요즘 정보의 기술의 발달로 인해서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

너무나 많은 정보들이 세상을 떠돌고 다닙니다.

그 가운데서는 우리를 정말 살리고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그러한 정보도 있겠지만 적지 않게 아니면 너무나 많은 부분

우리를 살리기 보다는 우리를 힘들게 하는 정보들이 더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어떤 사람들은 민주주의 가치 표현의 자유를 들어서

사실이 확인되지도 않고 때로는 사실을 애기하지 않는

방식으로 정보를 마구 마구 뿌릴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거짓 정보들은 때로는 아주 작게는 한 사람을

굉장히 힘들게 하고 그 사람의 모든 생활을 파괴합니다.

그것이 한 사람에게 머무르지 않고 그 가족

그리고 알고 있는 여러 사람들에게 퍼져 나가고

또 결국은 국민 전체를 힘들게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한 거짓 정보는 다른 것보다도 사실을 사실대로

이야기 하지 않고 왜곡하면서 뿌려 지기 때문에

그래서 왜곡 시키는 방식으로 작동을 합니다.

결국 이 사실이 제대로 이 정보가 전달되지 않으면

서로 믿을 수 없는 불신의 벽이 팽배 해지게 되는 것이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의 모습 인 것 같습니다.

참 세월호를 보면서 처음에는 모든 학생들이 구조 되었다는

그 정보가 가족들을 너무나 안도하게 했는데

불과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그 안도를

커다란 비탄으로 만들게 했고 또 몇 백 명의 많은 수의

구조대와 헬기가 구조를 하고 있다고 정부는 얘기하지만

실상 실종자 가족들이 직접 가서 보았을 때 아무런 작업도

하지 않고 있는 것들을 목격을 합니다.

이곳 강정도 아주 좋은 미사여구로 민관군복합의 아름다운 미항

아름다운 항구를 만든다고 그렇게 거짓 정보를 계속 뿌립니다.

그러나 이러한 거짓 정보들은 서로를 믿지 못하게 하고

또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은 서로를 불신하게 만들어서

이 사회를 계속 쪼개고 쪼개는 거 같습니다.

이 불신은 결국은 함께 대화하려는 마음이 없는 가운데서

나온다는 생각이 듭니다. 즉 대화하려고 하지 않는 다는 것은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얘기입니다.

너는 내가 말하는 대로 내가 하는 대로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면서

그 사람이 판단 할 수 있는 아주 고유한 권한조차도 빼앗고

그 사람의 자유조차도 빼앗으려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들이 점 점 점 발달했다라고

때로는 대한민국이 세계 경제적으로 어떠한 부분은 몇위 몇위

해서 일류대학 이류대학 하는 그렇게 선전하는 게

오늘날에도 벌어지고 있고 그것이 얼마나 거짓되고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세월호 참사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슬픕니다.

헌데 이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우리의 역사를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1950625일 우리에게는 너무나 쓰라린 전쟁이 시작됩니다.

전쟁이 시작되고 한 나라의 대통령은 혼자 피신을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피신을 먼저 막았던 것은 누군가 하면

미국 주한 대사가 와서 최대한 버틸 때 까지 버티라고 당부를 합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내가 잡히면 더 안 좋으니까 피신하는 게 도 좋다고

판단을 하고 그 다음날 새벽에 결정을 하고

대통령과 단지 한 두 명의 수행원만 동행하고 홀로 서울을 빠져 나갑니다.

그리고 기차를 타고 내려가고 내려가다가 대구까지 내려갑니다.

수행원이 각하 너무 많이 내려오셨습니다.”라고 하자

다시 대전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이 승만은 결국은 큰 잘못을 저지릅니다.

대전에서 라디오 방송을 하기위한 녹음을 시작합니다.

서울은 안전하니 혼돈하지 말고 혼란스러워 하지 말고

자리를 지켜달라는 내용의 녹음을 하고

그것이 서울로 올라가서 라디오로 퍼져 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그날 밤에 국회에서는

국회의원들은 최대한 서울을 지키자고 논의를 하고

결정을 하지만 대통령을 이미 서울을 빠져나가서 혼자

도망간 상태였습니다.

그리고는 안전하니 서울에 머물러 있으라고 한 이 말을 듣고

시민들은 그 말을 믿고 남아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또 그 다음에 한강 철교를 폭파를 시켜 버립니다.

어쩌면 세월호 참사와 너무나 흡사한 모습입니다.

위에서는 안전하다! 가만히 있어라고 하는데

국민들은 너무나 순진하고 착하게 그 윗사람의 말을 듣고 기다립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가져온 것은 죽음이었습니다.

이 역사의 한 페이지에서 더 슬픈 것은

서울에 남아서 어떻게 살아 남아있었던 생존했었던 시민들에게

다시 서울이 수복되고 도망갔었던 사람들이 했었던 짓입니다.

너 서울에 남아 있으면서 빨갱이들에게 협력했지?”라고 하면서

또 도망가지 못하고 남아 있었던 그래서 어떻게든 어렵게 생존해 있던

사람들을 결국은 또 죽여 버리는 일을 감행을 합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세월호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모습으로 반복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비단 전쟁뿐만이 아니라 지난 60년 동안

전쟁과 분단이후로 대한민국에서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일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솔직하고 정직함이 이 사회에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실수할 수 있고 잘 못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절대 잘 못 할 수 없는 존재

그리고 실수 할 수 없는 존재는 없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마음에 양심이 있기 때문에

잘못된 일을 누구보다도 본인이 느끼게 됩니다.

여기에서 사람은 기로에 서게 됩니다.

여기에 덮어 버릴까? 아니면 솔직하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청할까?

그런데 이 사회에서는 솔직하게 얘기해서

서로 용서하고 더 나아가기 위하기를 선택하기 보다는

사건을 은폐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오히려 범죄자로

만드는 길을 선택해 왔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에도 벌어지고 있고 또 어쩌면

이 강정에서 계속 벌어지는 그리고 또 자행되는 일들이라 생각이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말씀합니다. 오늘날 정보는 우리가 듣는 목소리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목소리는 결국은 다음의 내용들을 포함합니다.

이것이 정말 우리를 살리는 생명으로 이끄는 일인지

그리고 이것을 정말 참 평화로 이루어지는 것인지

그리고 이것이 지금은 고통스럽지만 정의롭게 만드는 소리인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소리는 바로 생명과 정의와 평화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명과 정의와 평화의 내용을 담고 있지 않는

많은 정보는 우리를 죽이는 정보이고 또 이 사회를 계속해서 죽음의

문화로 만드는 그런 그릇된 소리가 됩니다.

우리는 이 미사에서 우리가 하느님의 소리를 잘 듣고 있는지를

또 한 번 식별합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도 정의와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도

부족함이 많기 때문에 우리도 반성을 합니다.

또한 앞에 공사장 앞에 있는 우리 경찰 분들도 한번 또

생각을 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어떠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또 내가 하는 지금의

하나 하나의 행동들은 결국 사람을 살리고 이 세상을

정의롭게 하고 그리고 전쟁의 준비가 아닌 평화를 위한

일에 내가 그 소리에 응답하고 있는지?’ 함께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다시금 얘기합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를 알아듣는다.”

우리의 목소리 비록 신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가슴깊은 곳에 있는

양심이 나에게 끊임없이 외칩니다.

생명과 평화와 정의가 아닌 것은 내 가슴을 내 마음을

늘 불편하게 합니다. 그 불편함을 솔직하게 담아듣고

또 새롭게 나아가려고 노력을 할 때 결국은 내가 사는 길이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사는 길이고 우리 모두가 사는 길이라는 것을

우리가 다시 한 번 기억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미사 안에서 우리가 듣게 되는 많은 목소리

많은 정보들이 이 사회를 정말 살리는 쪽으로 움직일 수 있기를

각별히 청하면서 오늘 미사 함께 봉헌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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