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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창조 사업의 완성은 평화입니다.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강정의 생명평화 미사를 함께 봉헌 해주신 여행객 여러분 감사합니다.

의정부 교구에서 강정 공소에서 미사를 따로 봉헌해 주셨습니다.

제주도에 여행을 오거나 연수 및 피정을 오시면서

따로 시간을 내어서 강정의 생명 평화 미사를

함께 봉헌해 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강정에서는 매일 오전 11시 생명 평화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527일 부활 제 6주간 화요일

 

주례 강론 서영섭

 

죽음을 이기고 어김없이 예수는 부활하였습니다.

예수의 40일간의 고통스런 광야를 체험하듯

지옥이 따로 없을 만큼 우리 모두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세월호 참사로

어느 누구라 할 것 없이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으며

지금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대처 능력을 보고서 무능한 정부라고 이야기합니다.

불의하게 탄생한 이 정부가 과연 무능한 걸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의 생명과 그 존엄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건 무능하고는 별개입니다.

사람의 생명을 살려야겠다고 생각하면 무엇을 못 하겠습니까?

이는 무능한 게 아니라 잔인한 겁니다.

무능하다고 쉽게 면피를 주지 않았으면 합니다.

얼마 전 검찰은 해경이 침몰된 배에 진입했으면

세월호 희생자들을 모두 구조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해경은 국가권력의 한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사람의 목숨을 살리지 못한 건 해경만의 문제가 결코 아닙니다.

국가권력을 대표하는 지금의 정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월호 희생자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

그리고 정리해고로 비정규직 차별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들,

이렇듯 소중한 생명을 지켜내지도

살려내지도 못하고 있는 정말 광폭한 정부입니다.

그 광폭한 정부 배경에 또 다른 권력을 주목합니다.

단순한 자본이 아닌 권력을 쥔 새로운 건설자본독재를 말입니다.

도로와 공장건설과 도시개발이라는 순환개발을 통해 비대해진

이 건설자본독재들은 끊임없이 개발대상을 찾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연과 환경은 파괴되고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산이 깎여지고 강은 파헤쳐지고 들판이 메워졌습니다.

물이 오염되고 공기는 탁해졌습니다.

안보상의 이유를 들고 있는 강정의 해군기지 면밀히 살펴보면 이는

안보가 아니라 철저히 건설자본독재의 개발논리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개발논리는 더 이상 배고픔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건설자본 독재들과 그에 결탁한 불의한 권력들이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강정의 해군지는 인간의 과도한 탐욕과

건설자본 독재의 수탈적 이익을 위해

아름다운 구럼비를 파괴하고 죽이는 사업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렇듯 건설자본독재의 가치는 그저 자신들만 살면 되는 것이고

이외에는 살든지 죽든지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아름다운 구럼비를 파괴하고 해군기지 건설에 앞장서고 있는

삼성을 우리는 잘 압니다. 바로 삼성은 건설자본독재의 상징입니다.

삼성은 자연만 파괴하고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노동자들도 죽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독재 자본에 맞서 지난 해 삼성의 무노조 경영원칙을

거부하며 당당하게 민주노조를 결성한 삼성전자서비스센터 노동자들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비열한 보복을 자행합니다.

그 결과 배고파서 못살겠다.”

전태일 열사처럼 그러지는 못해도 저는 선택했어요. 부디 도움이 되길 바란다.”

몸 푼 지 일 년도 안 된 아내와 돌도 채 되지 않은 딸아이를 남겨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정규직 노동자 최종범 열사를 가슴에 묻은 지

6개월 만에 또 다시 동료를 잃었습니다.

지난 517노조가 승리하는 날 화장해달라는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삼성전자서비스센터노조 양산분회장 염호석 열사

그의 나이 서른다섯입니다.

그 이전에 삼성은 514일 영화 "또 하나의 약속"에서 드러난

백혈병 노동자들에 대한 산업재해를 인정하고 사과했습니다.

놀랐습니다. 너무나도 뜻밖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 또한 무자비한 기만이었습니다.

사과하는 동안 삼성전자서비스센터 노조지회를 탄압하였습니다.

노조를 와해시키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과거 잊지 못 할 군부독재시절에 포악성을 다시금 기억하게 합니다.

노조가 승리하는 날 화장해달라는간절함이

유서에 적혀 있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경찰들은 고인이 모셔진 병원 영안실 벽을 뚫고

염호석 분회장의 시신을 탈취하였습니다.

군사독재시절에나 있었던 일이 버젓이 지금도 자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분회장의 시신을 지키고자 온몸으로 막았던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 세 명이 구속되었습니다.

미사를 봉헌하면서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미사는 기억과 재현입니다.

기억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고통만을 기억하고

재현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의 기억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그 부활의 기쁨을 누리는 재현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억과 재현은 왜 이리도 잔인한지 모르겠습니다.

1980년 오월의 광주가 군사독재에 의해 고통을 받은 것처럼

2014년 오월은 자본의 독재에서 노동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슬픈 기억과 재현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싶습니다.

강정과 밀양의 주민들 그리고 이 땅에 모든 노동자들의 삶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 12,24)

예수의 삶을 따르며 이 땅에 참된 정의와 평화의 열매를 맺기 위한

밀알의 삶이었음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삶이 헛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삶이 헛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부활의 삶입니다.

부활은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먼 이야기가 아니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도 아닙니다.

부활은 거짓이 아니라 진리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진리가 아닌 거짓을 말합니다.

부활은 불의가 아니라 정의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의가 아닌 불의를 좇습니다.

부활은 차별이 아니라 평등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평등이 아닌 차별을 둡니다.

부활은 반목과 대립이 아니라 평화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평화가 아닌 거침없이

반목하며 날카롭게 대립합니다.

부활은 상처가 아니라 위로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위로가 아닌 상처를 줍니다.

부활은 소외가 아니라 배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배려가 아닌 곧잘 소외 시켜버립니다.

부활은 외면이 아니라 공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공감이 아닌 쉽사리 외면하고 맙니다.

더 이상 부활과 모순된 삶이 아닌 부활하신 예수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요즘 같이 암울한 시기에 정말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가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왜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불의한 상황을 침묵으로만 보고 계시는지 말입니다.

사실 이러한 질문보다는 정의와 평화가 가득한 세상이 될 수 있도록

우리가 답을 해야 되는 삶이 되어야겠습니다.

이 땅에 참된 정의와 평화를 위해서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인들이 살아야 할 삶입니다.

그리고 이 삶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복음의 기쁨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정의와 평화를 위한 삶을 충실히 살아갈 때

이 불의한 세상은 정의로움에 심판을 받을 것이며

그리고 전쟁위기를 고취하며 해군기지를 만들고 있는

이곳 강정에는 평화가 깃들 것입니다.

평화의 성령이시여 이곳 강정에 당신의 숨결이 가득하여

우리가 이 땅에 참된 정의와 평화를 위해서

고통과 박해를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정의와 평화의 삶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주시고 당신의 정의와 평화로

강정의 주민들과 평화지킴이들 그리고

저희 모두를 지켜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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