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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3일 강정

2014.09.24 03:19

자발적 가난 조회 수:133

하느님 창조사업의 완성은 평화입니다.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2011년 한진 중공업 노동자들 부당해고에 항의하며

김진숙님이 85호 그레인에서 고공 농성을 하고 있었습니다.

100일 다 되어 갈 때쯤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하면서

희망버스에 탑승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신문에 광고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시작한 일이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그때 버스에 탑승한 많은 사람들이 하는 말 죄책감이었습니다.

정말 죄를 저지른 사람은 따로 있는데 너무나 어이없게 해고된

노동자들을 위하여 그리고 이러한 일이 일어나도록 방조했다는 죄책감

침묵했다는 죄책감이 많은 사람들을 희망버스의 승객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희망버스 탑승객을 좌파 빨갱이 색칠하기에 급급했고

심지어는 재판장에 서게 만들었습니다.

주거침입 및 교통방해 집회 및 시위법 위반........

그러나 희망버스 승객들은 정의를 위한 행동이었다며

떳떳하게 법정에 서고 있습니다.

어찌 한진 희망버스 뿐이겠습니까? 밀양 강정 쌍용자동차 동희오토 등등

우리 사회 여러 아픈이들과 함께 양심의 소리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비가 오지만 우리는 강정에서 매일 11시 미사를 봉헌 합니다.

 

 

923일 화요일 피에트 첼리나 성 비오 사제 기념일

 

주례 현우석

강론 올리바 수녀님

 

제가 80년대 초에 대학 생활을 했습니다.

그때 광주 민주화 항쟁이 일어났고 저 역시 민주화 투쟁을 친구들로부터

제의를 받았습니다. 저는 2년 동안 동아리 활동을 함께 하면서 나중에는

제가 거기서 발을 뗐습니다. 그 이유는 그 당시 안기부나 삼청대 이런

이야기들을 들었고 또 제가 해야 되는 공부 이런 저런 이유로 제가 거기서

발을 뗀 뒤로는 저의 이기심 때문에 이런 여러 이유로 발을 뺐습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 수녀원에 들어갔습니다.

수녀원에 들어가서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불의한 일들에도

저는 수도자로서 저는 수도생활에만 전념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그런 것들에 눈 감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선교지에서 올해 초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귀국한 다음에 얼마 되지 않아서 세월호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참사가 일어났죠. 그런데 그 사고 이후에 정부가 대처하는 방식들

그리고 그 사고 자체도 너무나 충격적이었지만 지금까지 이어오는

상황들 안에서 저는 제 여태까지 살아온 삶 전체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어떠한 불의나 어떠한 정치적인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살아온

제 자신이 참으로 그 아이들의 희생 앞에서 부끄럽고 참으로 죄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저처럼 불의에 침묵하는 그런 잘못이 이런 사태를 불러왔다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도 정치적인 이런 시위를 해본 적이 없는 제가

이제는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선교지에서 청소년들을 위한 일을 하였습니다.

그 아이들이 한 번도 저항하지 못하고 자신을 방어하지 못 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는 그 사실이 지금도 원통해서

자다가도 벌떡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아이들이 저에게 손을 내밀고 손을 잡아달라고 합니다.

제 등을 밉니다. 가만히 있지 말라고 그럽니다.

수녀님이 말하지 않으면 잊혀질 걸라고 그래서 함께 해 달라고

저에게 제 양심 안에서 아우성을 칩니다.

어떤 사람도 좌파도 우파도 전혀 없습니다.

저는 아이들의 이 억울한 죽음 앞에서 정말 저는

제 자신을 새롭게 보기 시작했고 아이들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이 자리에 죄인으로 와서 앉아있습니다.

저는 정의를 위한 투사로서 앉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아이들의 소리에 제가 침묵 할 수가 없어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저는 그 아이들 앞에서

너무나 부끄러울 것 같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여기계신 경찰들 여기계신 신부님 수녀님 신자분들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납니다.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정말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이

살아야 한다고 아이들이 배 안에서 외치기 때문에 저는 가만히 편안하게

있을 수가 없어서 이 자리에 나온 것입니다.

여태까지 비겁하고 무관심하고 이기적인 저 자신을 참회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일했고 또 수도생활 했고 범법을 저지른 것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려고

여기에 왔습니다. 저의 죄목은 살인 방조죄입니다.

그 아이들이 그렇게 처절하게 죽어갈 때 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저는 그 죄에서 벗어 날 수가 없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고

정말 마음 아프고 죄스럽습니다.

엎드려서 그 아이들 앞에 참회를 하고 싶고 속죄하고 싶어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앞으로 저는 저기 경찰께서 말씀 하십니다.

이일을 업무방해죄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나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업무방해죄보다도 더 두려워해야 될 법은

하느님의 법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생명과 인간을 존엄하게 여기시는

하느님의 법을 지키는 것이 제가 살아야 될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언젠가는 죽습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부끄럽지 않게 숨을 쉬고

부끄럽지 않게 사랑하도록 합시다.

우리를 죽이는 우리를 짓밟는 권력도 자본도 우리는 두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생명이시고 또 우리를 아무리 죽음에 내몰아도

결코 우리가 꿈꾸는 평화와 희망을 짓밟거나 죽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함께 기도하고 우리의 생명과 평화를 위한 길에 손을 잡고 나아갑시다.

두려워하지 말고 부끄럼 없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함께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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