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고난받는 민족들에게 위로를, 반민중적인 패권주의에 경종 울리길”

문창우 주교 4.3 추념미사 강론, “세계 평화질서를 향한 반성의 잣대” 역할 강조

mj1.png
문창우 주교가 3일 중문성당에서 제주4.3 추념미사를 집전, 강론을 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제주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제주4.3 제77주기 추념 미사가 3일 저녁 중문성당에서 봉헌됐다.

제주교구장인 문창우 주교는 이날 추념미사 강론을 통해 4.3이 우리 민족의 범위를 넘어 세계의 새로운 평화 질서를 향한 반성의 잣대가 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나섰다.

시간이 흐르면서 역사의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4.3 당시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미국의 세계 분할 지배전략이 부각돼 4.3이 세계의 모순과 이에 저항하는 세력의 분출이라는 시각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문 주교는 “이런 측면에서 볼 때 4.3은 우리 민족의 의미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서 “이 땅의 평화를 갈망하면서 온갖 종류의 억압을 거부하는 고난받는 모든 민족들에게 진정한 힘과 위로가, 반면 반민중적인 패권주의에는 경종을 울려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진실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성급하게 강행되는 인위적인 화해로 오히려 상처가 깊어졌던 일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이 부분에 대해 문 주교는 “무엇보다 ‘공동체의 진심어린 화해’라는 열린 자세를 망각한 진실 규명은 서로에게 일차적 책임을 전가하는 집단이기주의 경쟁의 장이 돼버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수만 명의 선량한 사람들이 희생된 후 금기와 침묵이 이어졌음에도 4.3의 진실을 찾기 위한 도민들의 노력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면서도 “아직도 정치‧경제적 이념논쟁이나 체제이론 등 색깔과 종북에 대한 흑백논리에 더 큰 관심을 보이면서 모든 다른 가치보다 우선해야 하는 인간의 생명 가치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아 그들이 우리 사회의 창조적 발전과 진정한 화해에 걸림돌이 되면서 4.3의 올바른 해결을 가로막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 대목에서 그는 “4.3 당시 자행된 3만여 명에 달하는 양민 학살은 해방정국의 미군정 통치나 남북한의 이념적 갈등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엄청난 비인간적 만행이며, 인간의 양심과 국제법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수치스러운 범죄”라고 직격했다.

당시 민중항쟁의 근본 원인과 본질을 기득권자들의 왜곡된 논리로 ‘공산폭도들의 봉기’로 규정해 양민을 학살한 결과를 작전상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정당화했던 논리가 역사적 진실을 왜곡해 왔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그는 “동시에 4.3의 전개 과정에서 좌파 세력의 개입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토벌 대상이 됐던 무장대의 핵심 구성원이 공산주의 이념의 신봉자였음을 부정하는 것도 진실을 왜곡하는 일”이라고 짚기도 했다.

이어 그는 “4.3사건의 본질은 결코 이념투쟁이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답게 살면서 사회 곳곳에 정의와 공평을 세우고 조국의 분단을 막아보려 했던, 순수한 애국심으로 좌우 이념을 넘어선 이들의 주장이었고 자기방어적 행동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mj2.png
제77주기 제주4.3 추념 미사가 3일 저녁 중문성당에서 봉헌됐다. /사진=미디어제주

이날 4.3추념미사가 봉헌된 중문성당은 지난 2018년 4.3 70주기를 맞아 전임 교구장인 강우일 주교가 ‘4.3 기념성당’으로 선포한 곳이어서 의미를 더했다.

당시 문 주교는 “중문성당이 세워진 자리는 일제 강점기 때 신사 사당이 있던 곳이었고, 4.3의 비극적인 소용돌이에 휘말려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와 총살당한 사람들이 쏟은 무고한 피를 받아낸 곳”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한편 이날 미사를 마치면서 한 신자가 이종형 시인의 ‘봄바다’를 낭송해 미사에 참여한 신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기도 했다.


다음은 이종형 시인의 ‘봄바다’ 전문.


봄바다

이종형

붉은 동백꽃만 보면 멀미하듯
제주 사람들에겐 4월이면 도지는 병이 있지
시원하게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하고
생손 앓듯 속으로만 감추고 삭혀온 통증이 있어

그날 이후
다시 묵직한 슬픔 하나 심장에 얹혀
먹는 둥 마는 둥
때를 놓친 한술의 밥이 자꾸 체하는 거라
시간이 그리 흘렀어도
깊고 푸르고, 오늘처럼 맑은 물빛 없으니
한걸음에 내달려 보러 오라고 너에게 기별하던 봄바다만 보면
요즘은 별나게 가슴 쿵쿵 뛰고
숨이 턱턱 막혀올 때가 있는 거라
세상에서 가장 큰 무덤인 듯
바라보는 것만으로 죄짓는 기분일 줄이야 누가 알았겠나
저 바다 여는 길을 낼 수만 있다면
어미들은 기꺼이 열 개의 손톱을 공양했을 거라

백년 넘은 산지등대 가는 오르막길
제주항이 내려다보이는 그쯤에 멈춰 서서
아이들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본다네
누가 애써 씨 뿌리지 않았어도
비탈진 언덕 곳곳에 돌아본 봄꽃, 노란 유채꽃

아이들아, 나오너라
저 꿏무더기 서너 줌 따다가 한 솥 가득 꽃밥이나 지어 먹게
도란도란 둘러앉은 저녁 밥상 받아놓고
부웅부웅 안개길 헤쳐 돌아오는
무적(霧笛) 소리나 같이 듣게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글쓴이 조회 수
1347 [소식] 청년 침묵피정 file 2025.04.15 청소년사목위원회 93
» [언론] [미디어제주] 문창우 주교 4.3 추념미사 강론 “고난받는 민족들에게 위로를, 반민중적인 패권주의에 경종 울리길” file 2025.04.04 전산홍보실 152
1345 제8회 제주, 기쁨과 희망 포럼 file 2025.03.31 사회사목위원회 151
1344 [소식] 2025 제주가톨릭대학생연합회 개강미사 file 2025.03.27 청소년사목위원회 177
1343 [소식]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를 위한 청년 프로그램 '젊D:A' file 2025.03.21 청소년사목위원회 219
1342 [소식] 2025 청소년 리더연수 2025.03.18 청소년사목위원회 168
1341 [소식] 64차 선택 주말 file 2025.03.13 청소년사목위원회 232
1340 [소식]2025 광주가톨릭대학교 입학미사 file 2025.03.10 성소위원회 280
1339 [소식] 2025 광주가톨릭대학교 직수여식 file 2025.03.05 성소위원회 345
1338 [소식] 불꽃피정 및 청소년 견진성사 file 2025.02.13 청소년사목위원회 662
1337 [초대장] 김창렬 바오로 주교님 백수白壽 감사 미사 file 2025.02.05 전산홍보실 1099
1336 [소식] 2025 어린이 복사학교 file 2025.01.15 청소년사목위원회 675
1335 [인사 발령] 제주교구 사제인사 file 2025.01.10 사무처 3326
1334 [초대장] 2025 천주교제주교구 부제 서품 미사 file 2025.01.07 전산실 1293
1333 [소식] 2024 성가정 축복 미사 file 2025.01.03 가정사목위원회 570
1332 [소식] 2024 제주교구 가정대회 file 2025.01.03 가정사목위원회 496
1331 [소식] 2024 작은별(졸업반)캠프 file 2024.12.26 청소년사목위원회 573
1330 [소식] '윤석열 탄핵 촉구' 시국미사 file 2024.12.17 정의평화위원회 747
1329 [소식] 제7회 청년성가제 file 2024.12.06 청소년사목위원회 600
1328 [소식] CUM캄보디아 - 세상과 함께하는 사랑의 여정 file 2024.12.04 청소년사목위원회 56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68 Next
/ 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