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시작 : | 2020-01-07 (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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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화요일 또는
[백] 페냐포르트의 성 라이문도 사제
입당송
시편 118(117),26.27 참조
본기도
말씀의 초대
제1독서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4,7-10
화답송
시편 72(71),1-2.3-4ㄱㄴ.7-8(◎ 11 참조)
복음 환호송
루카 4,18
복음
<빵을 많게 하신 기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예언자로 나타나셨다.>
6,34-44
예물 기도
감사송
<주님 공현 감사송 : 인류의 빛이신 그리스도>
영성체송
에페 2,4; 로마 8,3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가엾은 마음”과 연관된 그리스어 동사는 ‘스플랑크니조마이’입니다. 이것은 내장이 끊기는 아픔을 가리키는데, 우리말로 ‘애가 녹는다.’ 정도로 번역이 되겠지요. 예수님의 마음은 불쌍한 이를 측은히 바라보시는 안타까움이 아니라, 그 불쌍한 이와 같은 처지, 한마음이 되어 함께 아파하는 마음입니다.
그럼, 누가 불쌍한 사람일까요? 한마음으로 함께 살아가는 데 익숙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굳이 빗대어 보자면, 오늘 복음의 제자들이 아닐까 합니다. 먹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이 가장 낫겠지만, 그럴 형편이 아니라면 어떻게든 ‘함께’ 먹을 것을 찾아 나서는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이백 데나리온”이라는 돈의 가치에 얽매여 ‘함께’의 길을 잃어버린 제자들, 그들이 바로 목자 없이 헤매는 양들이 아닐까 묵상해 봅니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은 실은 아주 적습니다. 필요한 것의 양이 절대화되는 이유는 삶의 자리가 불안하기 때문이지요. 불안함을 덜어 내는 것은, 앞다투어 쫓아가는 돈도, 명예도, 권력도 아닌, 서로 다른 삶의 처지에 함께하려는 마음이고, 그 마음이 모여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제도와 법이 생기는 것입니다.
빵의 기적은 예수님께서 베푸신 무한한 사랑이나 자비로만 읽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나눔이 예수님의 기적으로 승화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의 초대가 빵의 기적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제 것이라도, 함께 나눌 것인가, 혼자 누릴 것인가,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을까요?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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