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시작 : | 2020-01-11 (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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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
입당송
갈라 4,4-5 참조
본기도
말씀의 초대
제1독서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
5,14-21
화답송
시편 149,1ㄴㄷ-2.3-4.5-6ㄱ과 9ㄴ(◎ 4ㄱ)
복음 환호송
마태 4,16
복음
<신랑 친구는 신랑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3,22-30
예물 기도
감사송
<주님 공현 감사송 : 인류의 빛이신 그리스도>
영성체송
요한 1,16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공관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본격적으로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에 사라집니다. 반면, 요한 복음에서는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이 세례를 중심으로 함께 등장합니다.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은, 대개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하게 합니다. 뜻이 맞아 서로 호흡을 같이할 수 있는 경우와, 뜻이 달라 힘겹게 숨을 몰아쉬는 경우입니다. 전자는 함께하는 기쁨을 가져다주고, 후자는 함께하는 것이 경쟁이나 대립, 또는 질투의 감정을 불러오고는 합니다.
오늘 복음에 나타나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어떤 경우일까요? 사람들이 세례를 받으러 와야 할 곳은 ‘여기’이지, 예수님께서 계시는 ‘저기’가 아니라는 그들의 시선에서 경쟁과 질투로 얼룩진 적개심마저 느껴집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런 제자들의 모습을 질타하기보다, ‘기쁨’을 이야기합니다.
이 기쁨은 하느님과 그 백성의 결합을 상징하는 혼인에 빗대어 해석되기도 합니다만(호세 2,19-20; 에페 5,31-32 참조), 오늘 복음은 신랑과 신부의 결합보다 신랑의 등장에 대한 기쁨에 집중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등장을 기뻐합니다. 유다 전통에 따르면, 신랑의 친구 가운데 믿을 만한 친구 둘이 신랑과 신부의 결합을 지켜봅니다. ‘신랑의 목소리’는 신랑이 신부와 온전히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선포와 같습니다.
신랑의 친구로서 요한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과 인간이 서로 만나 한 몸을 이루는 친교를 기뻐하는 셈입니다. 내 것만이 옳고, 네 것은 그르다는 생각에 서로가 하나 되는 것을 거부하고 한자리에 있는 것조차 불편해하는 오늘의 세태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보여 주는 경쟁의 결과입니다. 하느님의 일에서조차 경쟁할 필요가 있을까요?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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