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시작 : | 2021-04-24 (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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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 또는
[홍] 식마린겐의 성 피델리스 사제 순교자
입당송
콜로 2,12 참조
본기도
말씀의 초대
베드로 사도는 리따에서 중풍 병자를 고쳐 주고 야포로 가서, 병들어 죽은 타비타라는 여제자를 다시 살린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라고 하시자, 베드로 사도가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다고 고백한다(복음).
제1독서
<교회는 굳건히 세워지고,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가 늘어났다.>
9,31-42
화답송
시편 116(114─115),12-13.14-15.16-17(◎ 12)
복음 환호송
요한 6,63.68 참조
복음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6,60ㄴ-69
예물 기도
감사송
<부활 감사송 1 : 파스카의 신비>
영성체송
요한 17,20-21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많은 유다인이 생명의 빵과 성체성사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알아듣기 거북하고, 따를 수 없다며 예수님 곁을 떠납니다. 유다인들뿐 아니라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도 그러합니다. 여기서 제자들은 열두 제자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보고 따라나선 사람들로서 예수님을 임금으로 모시고자 환호하던 이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살 수 있다고 하시자 그만 돌아서고 맙니다. 이들이 돌아선 이유를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이 영과 육의 대비를 보면서 창세기의 인간 창조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7). 사람의 마음 안에는 흙으로 빚어진 육에서 나온, 더 받고 싶은 마음, 곧 탐욕이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숨에서 나온 하느님의 마음, 더 내어 주고 싶은 마음, 곧 사랑이 있습니다. 그런데 탐욕으로 하느님과 인간 그리고 자연의 관계가 서로 어긋나 이 세상에 고통과 죽음이 들어옵니다. 이 고통과 죽음의 울부짖음을 들으신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 아드님을 내어 주십니다. 이 세상에 인간으로 오신 아드님께서는 아파하는 이들을 찾아 나서시고 그들을 사랑해 주십니다. 그리고 이제 시간이 되어 아버지께 건너가시게 되자 그들을 더욱 극진히 사랑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몸과 피를 내어 주십니다.
더 받고 싶은 마음, 탐욕이 고통과 죽음을 들여왔다면, 목숨까지 내어 주는 그 마음, 사랑이 생명을 가져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내어 주신 살과 피를 우리가 먹고 마실 때 우리는 살게 되고, 생명을 얻습니다.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자기의 탐욕을 채우려고 예수님을 찾아 나선 이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내어 주는 사랑 앞에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믿지 않는 자들’이 되어 예수님 곁을 떠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나의 길은 십자가의 길이며, 고단한 사랑의 길이다. 나와 함께 이 고통의 길을 걷겠느냐? 아니면 떠나고 싶으냐?’
(서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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