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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영성에서 행동으로 나아가는 소공동체”

  우리의 보금자리 제주도는 지난 10년 사이에 중병에 걸렸습니다. 제주의 인구가 10년 사이에 19% 증가했고, 관광객은 세 배로, 달리는 자동차는 두 배로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45.9㎢에 달하는 제주의 농경지와 녹지(농지 26.3㎢, 녹지 19.6㎢)가 지난 10년 사이에 사라졌습니다. 이는 여의도 16배 면적의 자연생태계가 사라지고 도시화가 무분별하게 진행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제주 생태계 모든 생명의 원천인 지하수가 말라가고 있습니다. 제주인들이 오랜 세월 의지했던 용천수의 반이 말라버렸습니다. 제주의 지하수 수질은 갈수록 악화되어 농업용 지하수의 59%가 먹는 물 기준치를 초과할 정도로 오염되었습니다. 쓰레기 배출량은 처리 용량을 초과하여 쓰레기 매립장들이 대부분 포화상태에 이르고 쓰레기 오름이 생기고 있습니다. 하수처리장도 한계상황에 달하여 정화되지 않은 오염수를 틈틈이 방류함으로써 제주 바다가 백화현상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제주의 생태계가 더 이상 회복과 지속이 불가능한 지경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생태계의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창조주께서 관리 보호하도록 맡기신 생태계를 지키는 집사일 따름입니다. 이 생태계를 지속과 회복이 불가능하도록 변형하고 훼손하는 행위는 인간과 하느님을 향한 죄입니다. 우리는 후손들이 살아갈 삶의 터전을 빼앗고 파괴하고 있습니다.

  2019년 10월 세계 150개국에서 수백만의 청소년들이 기후위기를 우려하며 등교를 거부하고 어른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젊은이들은 진실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보는 직관적 통찰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의 외침은 절박합니다. 스웨덴의 16세 소녀 그레타 툰베리는 유엔 기후정상회의에 초대받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죽어가고 있어요. 생태계 전체가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우린 대멸종의 시작점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오로지 돈과 동화 같은 경제 성장 얘기만 하고 계십니다. 어떻게 그러실 수 있습니까?” 우리 현실을 엄중히 들여다보면 이들의 외침은 결코 과장이나 왜곡이 아닙니다. 지금 한국의 어른들, 제주도의 어른들도 오로지 개발과 성장에만 사로잡혀 사태의 심각성을 못 느끼고 생태적 무감각에 빠져 있습니다.

  2020년 우리는 ‘지구의 날’이 선포된 지 50주년을 맞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도 2015년부터 9월 1일을 가톨릭교회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로 정하고 온 세상이 피조물 보호에 동참하도록 초대하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지난 9월 1일에도 이렇게 호소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피조물(창세 1,27 참조)로서 공동의 집에서 형제자매로 살아가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폭군이 되라고 창조된 것이 아니라, 창조주께서 사랑으로 함께 연결해 주신 수많은 종(種)들의 생명 연결망 중심에 서도록 창조되었습니다. … 이제 참회하고 회개하여 우리의 뿌리로 돌아갈 때입니다. 우리 가운데 너무나도 많은 이들이 피조물을 향하여 폭군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변화하기 위하여 진지하게 노력합시다! 더 소박하고 반듯한 생활양식을 수용합시다! … 소비주의의 탐욕과 만능에 대한 환상에 ‘아니오!’라고 말합시다. 이러한 것들은 죽음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내일의 생명을 멀리 바라보며 오늘 우리는 책임성 있는 희생의 여정에 나섭시다. 눈앞의 이득만 좇는 사악한 논리에 굴복하지 말고 우리 공동의 미래를 바라봅시다!”

  2019년 10월 한국천주교주교회의도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한 전 세계의 노력과 프란치스코 교종의 가르침에 적극 부응하여 각 교구, 본당, 개인이 생태환경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고 생태계를 살리기 위하여 취할 수 있는 모든 행동에 동참하기를 결의하였습니다. 

  주교회의의 요청에 의하여 2021년 제주교구에서는 한국청년대회가 두 번째 열립니다. 이는 한국교회의 젊은이들이 지역과 교구를 초월하여 한 형제자매로 모여 청년들의 고민과 아픔, 기쁨과 희망을 공유하고 세상에 변화와 쇄신을 일으키는 강한 그리스도적 연대를 함께 건설하기 위함입니다. 저는 제주에 모이는 한국교회의 청년들이 젊은이 특유의 순수함과 패기를 통하여 어른들이 주저하고 멈칫거리는 피조물 보호에 선구자적 전망과 표징을 보여주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우리는 모두 이 젊은이들의 모임이 한국교회에 새로운 희망을 던져줄 수 있도록 최선의 도움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2019년 12월   
                                                      대림 1주일에   
                                      천주교 제주교구 감목  강  우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