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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구세주 예수님이 세상에 태어나실 무렵,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제국 영토내 모든 주민들에게 호적등록을 명하였습니다. 제왕들이 호구조사를 하는 목적은 더 많은 세금을 걷고, 군 병력을 충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보잘것없는 산골 마을 노동자 요셉과 출산이 임박한 마리아까지 베들레헴으로 긴 여행길에 나서야 했던 것은 황제의 권세와 욕망 때문이었습니다. 제왕과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명령에 묵묵히 따를 수밖에 없는 힘없는 백성들의 순종과 희생 위에 제국을 건설하였습니다. 이 시대에도 국가지도자들은 경제성장과 정치업적을 자랑하지만, 밑바닥 인생들은 그 밑에서 고달프고 배고픈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습니다.

  며칠 전 인천 어느 편의점에서 한 남자와 아들이 우유와 사과 1만원어치를 훔치다가 발각되었습니다. 그는 34세의 젊은 택시 기사였으나, 당뇨와 갑상선 질환이 악화되어 일을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요양기간이 여섯 달이나 지속되자 끼니를 거르는 날이 많아졌고, 너무 배가 고팠습니다. 아침도 점심도 못 먹고 배고파하는 아들 모습에 아버지는 자기도 모르게 눈앞의 먹거리에 손이 갔습니다. 자초지종을 알게 된 편의점 주인도 고발을 취하하고, 경찰관은 자기 주머니를 털어 그 부자에게 국밥을 대접하였습니다. 가게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어떤 이웃은 식당까지 따라와서 현금 봉투를 두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습니다. 우리나라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이라고 하지만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야 최저기초생활이 가능한 174만이나 되는 국민이 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국회는 50조원이라는 사상 최대의 국방 예산을 통과시켰습니다. 그중 33.3%에 달하는 16조7천억 원이 무기 도입 예산입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우리 군은 금년부터 세계 최강의 스텔스 전투기 F35기종을 미국으로부터 구매하여 배치하기 시작했습니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40대를 구매하는데 대당 가격이 1000억 원에 달합니다. 해마다 벌여온 한미군사연합훈련에는 800억 원에 달하는 군사비를 투입해 왔습니다. 북한은 이러한 우리 군의 군비증강을 비난하며 자신들도 핵실험을 하고 갈수록 더 가공할 탄도 미사일을 계속 시험 발사합니다. 북녘 땅에 많은 어른 아이들이 식량부족, 영양부족에 허덕이고 있는 상황에서 대당 20억 원이 넘는 미사일을 수 없이 허공으로 날려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민들 중에는 단 돈 1만원이 없어서 진열대의 우유를 훔칠 정도로 가난에 시달리는 이들이 생겨나는데, 국민을 위해 봉사하라고 권력을 위임 받은 의원들은 세계 최고수준의 연봉 1억5천176만 원을 누리며, 생명을 죽이는 무기구입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너무도 손쉽게 통과시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이 모순적 현실은 인류 역사의 발전과 문명에 너무나 역행하는 반인간적, 야만적인 처신임을 정치 지도자들은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는 군비축소를 호소해 왔습니다. 많은 이들은 무기를 충분히 비축함으로써 적에게 전쟁을 단념하게 하고 국가 간의 평화를 보장해주는 가장 유효한 방법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군비 경쟁은 평화를 보장하지 못하며, 전쟁의 원인을 제거하기보다는 국가 간의 안전과 평화에 심각한 위협이 됨을 가르쳐 왔습니다.(간추린 사회교리 508-509항) 또한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고 보유하는데 소요되는 엄청난 재원의 낭비는 가난한 이들의 구제를 막고, 민족들의 발전을 방해합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2315항) ‘군비 경쟁은 인류의 극심한 역병이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견딜 수 없는 상처를 입히는 것입니다. 군비 경쟁이 계속된다면 언젠가는 가공할 온갖 재앙을 일으키고 말리라는 것을 몹시 두려워하여야 합니다.’(사목헌장 81항)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남기신 평화는 힘의 균형으로 만들어져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잠정적 평화가 아닙니다. 포대기에 쌓여 구유에 누운 가장 무력한 갓난아기가 보여주는 평화입니다. 아기는 누구의 것도 탐내지 않고, 빼앗지 않고, 감추지도 않으며 모든 것을 내어놓습니다. 그리하여 누구도 아기를 적으로 여기고 맞서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이 갓난아기에게 배워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아기 예수님의 평화가 가득히 내리시기를 기원합니다!



                                                 2019년 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에      
                                                 제주 감목   강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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