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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서한비판

-2019년 부활절 사목서한을 읽고-

다시  교구장의  사목서한을  대한다. 읽다가  다시  되돌아가기를  몇 번이고  되풀이한다. 그런데도  무슨 말인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얼른 파악이 안  된다. 마치 안개 속을 더듬는 기분이다. 부끄러운 고백이 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여기서 단편적이나마 느끼는  바를  솔직하게 적어 보려 한다.

얽히고설킨  역사적인 사건은  나에겐 언제나 딱딱하고 어렵다. 이들은 건너뛰고 넷째  단락부터  들여다보자.

1. 이 해방과  일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지난 100년  동안  이미  수많은  우리  선열들이  기꺼이  젊음을  바치고  생애를 바치고  목숨을  바쳐서  2019년의  오늘이  만들어졌습니다.”

     1) 여기서 해방과  일치, 실현  등의  말은 하나씩  따로  떼어놓으면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은데, 한  문장으로 해방과  일치를  실현하기 위하여에  이르면 그냥  단순하게  들리지  않는다. 추상적으로  다가온다. 구체적으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얼른  잡히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런가  하고  그냥  넘어가면 그만이다. 지금까지  사목서한들은  대개가  그런  식으로  넘어갔고  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2) “2019년의 오늘도  마찬가지다 . 그러나  이에  대하여서는  구체적인  설명이  따랐다. 서한의  문장을  따라가 보자.

2. 100년 전  불과  180여명  밖에  없었던  제주의  신자가  지금  7만 명이  훨씬  넘고  사제가  한  명도  없던    곳에  50명이  넘었습니다. 초가삼간으로  유지하던  두  공소가  지금  아름다운  본당  스물 여덟과  공소  아홉의  거목으로  자랐습니다.

      여기서 해방과  일치는  신자, 사제  및  본당  수가  늘어난  것을  말하고  있으며,

    1)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지난 100년 동안 이미 수많은 우리 선열들이 기꺼이 젊음을  바치고  생애를  바치고 목숨을 바쳐서 2019년의 오늘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위와 같이 그 수가  늘어난  것을  두고해방과  일치의  실현으로  보는가? 그리고  이것이,“선열들이 기꺼이 젊음을  바치고  생애를  바치고  목숨을  바쳐서이루어낸  결과란  말인가? 이건  좀  납득이  안  간다.

      2) 나는 짧은 소견인지 모르나, 위와 같이 교세가 확장한 것은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맨  먼저  생각나는 것은 외국 신부님들이다. 그들은  본국에서  보내온  돈으로  성당을  짓고  어려운  신자들의  생계까지도  도우며 함께  어려움을  헤쳐  왔다. “2019년의  오늘의 밑바탕에는 그들의 물심양면의  무조건적인 희생이 깔려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된다. 아마도  그  당시를  겪었던  신자들이라면  이  말에  이의를  달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거창하게  멀리서  선열들을  끌어들일  일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요컨대해방과  일치를 말하고  있지만 방향이  빗나갔다고  생각되며  차라리해방과  일치라는  말을  쓰지  말던지  썼다면  그에  걸맞은  내용을  채워 넣던지  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3. 의문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이어서 사목서한은,“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권리와  특전이 실현되기까지  수많은  분들의  희생과 고 통이  거름이  되었음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1) 후반부인,“수많은  분들의  희생과  고통이  거름이  되었음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는 막연 하나마   동의를  할 수  있 다.

     2) 그런데  전반부는  문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모두가 자유와  권리를 누린다고  할  수  있는가? 이는 실현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중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사회교리에서도 지적하고 있지만  인간의  자유와  인권은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으며  이에  대하여  교회가  적절히  대응할 것을 주문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구나특전이라니  이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며  이를  누리는  자는  누구인가?

      3) 특히  강우일  주교의  사목서한의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것은  한결같이, 질병과 간난 속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자, 기득권 층에  막혀 소외된 자, 기타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자들을  등장시킨다. 그런데  이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이들을  열외로 하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권리와  특전이 실현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4. 교회에서  빚어지는 말도 안 되는 비리들은  이제  넘쳐나고  있다. 대구  희망원 사건 하나만  들자. 수용자들  중  인권유린으로  인하여 사망한  자들이  3년  동안 10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미  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 교회에서  운영하는 시설  안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니  이는  설명할  길이  없다. 이러한  참상을  앞에  두고도  어느 사목서한에도  이  문제를  거론하고  참회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자신의  죄를  묻어둔  채  남을  단죄할  수  있는지를 묻고  싶다.

     그런데 우리의  사목서한은  한가하다. 교구장의  사목에는  문제가  있다고  여겨진다. 그것은  바로  사목서한에  잘  나타나  있다고  본다. 당장  해야  할 시급한  것을  제쳐 두고  막연하고  추상적인  말이  대부분  차지한다. 한  마디로  현장을  떠난 사목이다. 끝에 가서는 의례적인 축복의 인사말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이번의  서한도  다르지  않다. 무엇이 급한  것이냐고  따져  물어  온다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2019. 4.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