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14.192.140) 조회 수 8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먼저 주임 신부님의 초대로 홍제 본당 신자 분들을 만나 뵐 기회를 허락하신 것,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사는 간성은 금강산 가는 길목 입니다.

 

 성당 뒤로 높이 향로봉이 솟아 있고 성당 마당에서 보면 앞에는 동해 바다가 보여,

 

 누구라도 오시면 참 아름다운 곳이라고 찬탄을 하는 곳입니다.

 

 저희 성당은 1958년도에 건축되었는데 당시 미군 부대에서 자재를 지원해줘서

 

 건축하였습니다.

 

 둥근 원형의 지붕을 이고,철골 구조를 갖추었으며 바닥은 마루 바닥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춘천 교구 내에 간성 성당이 아마 유일하게 신을 벗고 들어가는 성당이었는데

 

 지난 해 7월 3일 새벽 3시 반경, 불행히도 화재로 전소되고 말았습니다.

 

 그 날 새벽 3시 반경, 저는 자다가 급하게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잠결에 런닝 셔츠 바람으로 밖으로 나와 보니, 성당이 불타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게 꿈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꿈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얼마나 꿈이기를 바랐겠습니까?

 

훨훨 타오르는 불길을 보면서,제일 먼저 미치는 생각이,

 

어서 감실 안에 모신 성체를 모시고 나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맨발로 성당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성당 문이 밀어도 밀어도 열리지를 않았습니다.

 

이미 불기운이 너무 세서, 문이 부풀어서인지 밀리지 않았습니다.

 

감실 쪽을 바라다 보았더니, 실제로 그 쪽에 더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참으로 무시무시한 정경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새벽 그 시간이 되면 깨곤 합니다.

 

내가 아직도 왜 이러나, 합니다만.

 

여전히 성당 내에 그렇게 이글이글 타오르던 불을 보던 그 때 광경이 기억이 나면서

 

잠을 깨곤 합니다.

 

당시, 성당 내에 타오르는 무서운 불꽃을 보면서, 문을 열고 들어갈 수도 없게 된 저는,

 

성체를 모셔내올 수 없음을 생각하면서,


참으로 하느님께 대죄를 지었구나, 싶어 망연자실하게 되었습니다.

 

소방관들이 한 시간 여 넘게 진화 작업을 마친 후, 겨우 성당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요.

 

그 안에 들어갔더니, 참으로 지옥 불이 있다면 이렇게 뜨겁겠구나, 싶었습니다.

 

얼마나 뜨거운지, 참을 수가 없더군요.

 

감실 앞을 찾아 들어가 보니, 아직도 감실 문은 빨갛게 달구어져 있더군요.

 

감실 안에 모신 성체가 다 녹았겠구나, 하는 기막힌 생각이 들었지요.

 

성작과 성체를 모셔둔 성합을 하얀 보로 덮어 두었었는데,

 

어둠침침한 속에서 그대로 하얗게 보였습니다.

 

성합이 얼마나 뜨거운지 만질 수 조차 없었습니다.

 

어렵사리 사제관으로 성합을 모시고 왔는데,가지고 나온 제 손은 물론

 

온 몸이 타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차마 성합을 열어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근 본당에 계시는 신부님께 청하여이 어려움을 말씀드리고

 

오시기를 청하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신부님께서 오셔서 성합을 열어 주셨습니다.

 

성합 안을 들여다 보니…

 

참으로 놀랍게도 성체가 그대로,바로 그대로 온전히 거기 그렇게 있었습니다!

 

계셨습니다!

 

저는 어찌나 고맙고 감사로운지…!

 

그대로 눈물이 쏟아져 내리는 것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성체가 바로,“나다!”하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성체 안에 살아 계시는 주님께서 저를 향하여

 

“얘야, 나 여기 살아 있다!”고 말씀하시고 계시는 듯 하였습니다.

 

참으로 제게 얼마나 큰 위로를 주시던지...!

 

그 성체를 보는 순간 저는 이제까지 사제로서 살아오면서도 잘못 살아온 것이

 

순간 다 눈 앞에 떠오르면서, 마치 어린 아이가 잘못을 많이 하고

 

그래도 엄마 앞에서 반성하면서 엉엉 울듯이 소리 내어 마냥 엉엉 울었습니다.

 

이제까지 잘못한 것이 다 기억이 나면서 모조리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엉엉 울고 눈물은 줄줄 끝없이 솟아나더군요.

 

제 자신이 신부로서 이제까지 매일매일 미사를 드리면서,

 

성체를 모실 때 “그리스도의 몸” 이라고 말을 하면서 미사를 하였는데 

 

정작, 살아 계시는 예수님을 그렇게 모시게 된 것을 알고,

 

그렇게 뜨겁게 고백하게 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 날 7월 3일, 바로 그 날은 성 도마 사도 축일이었습니다.

 

그 날 미사에서, 제 1 독서는 에페소서 2장 2절로서,

 

<여러분은 여러분의 건물입니다. 건물에서 가장 요긴한 것은 모퉁이 돌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여러분의 모퉁이 돌이십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날 복음 말씀은, 요한복음 20장 29절 말씀으로

 

<도마야,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렇구나! 내가 보고도 제대로 믿지 못했구나, 제대로 믿지 않았구나,

 

제대로 고백하지도 않았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눈물로 미사를 드리고


사제관으로 들어갔습니다.

 

사제관에 들어가 있는데 밖에서 레지오 단원들이 성당 안에 들어가서


잿더미 속에서 성모상을 꺼내 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둘째 수요일은 레지오 모임이 있는 날 이었습니다.

 

그 성모상을 보니 정말 아주 새카맣게 그을려 있었어요.

 

레지오 단원들이 그 그을린 성모님을 모시고 눈물로 묵주기도를 드리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안에서 듣는 저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주회를 마치고 약속한 듯이 성모상을 수도가로 모시고 가서 닦고 있었습니다.

 

연기에 찌든 성모상이 얼마나 잘 닦이지 않았던지, 아니 얼마나 열심히 닦았던지,

 

아니 얼마나 빡빡 밀어야 했었던지, 씻어서 모셔둔 성모상을 보니,

 

그 예쁜 성모님의 얼굴에서 눈썹이 아예 없어져 있지 않겠습니까?

 

그 날부터 저희 간성 본당에서는 성체 조배를 두 사람씩 조를 만들어 계속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하느님께서 저희에게 바라시는 뜻이 무엇인지 알아보자고 하였습니다.

 

저희는 건물 짓는 것은 두 번째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하고 생각을 해도 건물 지으라고 하신 것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결국, 저희는 우리 자신이 살아 있는 성전이 되라는 말씀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우리가 함께 기도를 계속하면서,

 

저도 신자들도 모두 조금씩 조금씩 변화되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이 생각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얘기를 자주 합니다.

 

매일 미사를 드리면서, 우리는 입으로 성체를 받아 모시지만,

 

진정, 성체를 모시는 의미를 잘 알면, 우리는 변화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하면 “아멘!”하고 입으로 꼴깍, 성체를 받아 모시면서

 

마치 영양제 하나 받아 먹듯이 받아 먹고 돌아가 버리고 맙니다.

 

바로 그러기에 신앙생활이 10 년이 넘어도 하나도 변화되는 것이 없습니다.

 

그저 고해성사하기 싫으니까, 미사 참례하고, 입당과 퇴장을 그저 경쟁하듯이  서둘러 들고 날고

 

하는 것입니다.

 

성체를 받아 모시고 참으로 감사드리는 마음을 갖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모신 후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조배 드리는 신자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십시다.

 

미사 시작 전에 미리 와서 기도하고 조배하고 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습니까?

 

그저 서 너 명 꼽아요. 꼽습니다.

 

그저 미사 끝나고 나서도 밖에서 모여서 잡담이나 하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하지요.

 

성체 모시는 그 뜻을 미처 깨닫지도 못하고 그저, 성당에 왔다 갔다 하고만 있는 것입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따로 시간을 내어 성체 조배를 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영하는 성체가 무엇인지 깊이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미사에 참여해서도 저 뒤에 늦게 와서 살짝 앉아 있다가 미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나가려고 하지요.

 

이 앞에 제대 가까이 와서 가까운 곳에서 성체를 조배하는 것은 느낌이 다릅니다.

 

참으로 다릅니다.

 

어디, 유명한 가수의 공연이나 영화배우를 보려고는 서로 다투어 앞자리에 앉으려고 하면서,

 

성당에 와서는 그저 뒷자리부터 채우고 앉습니다.

 

그래서 미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나가기가 바쁩니다.

 

이제부터 이리 제대 가까이 와서, 예수님 가까이 와서 보세요.

 

무릎 꿇고 기도 드려 보십시오.

 

정말 느낌이 다릅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가까이 갈수록 마음도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정말로 성체 안에 살아계시는 하느님을 새롭게 기억해 내고,

 

영하는 성체를 뜨겁게 기쁘게,  찬미하면서 기도하면서 노래하면서 영하시기 바랍니다.

 

성체를 정말 기쁨 가득, 감사로운 마음으로 영하시면 성체의 삶으로 변화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이 얼마나 미사 참례함이 은혜롭고 기쁜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그 기쁨이 감미로운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크신 은혜와 힘으로 복음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 간성 본당 신자들이 우리 집 짓기는 두 번째 이고

 

우리 자신의 변화가 첫 번째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을 하느님이 기뻐하시고 계심을 압니다.

 

지난 해 두 번이나 수재와 화재를 겪은 저희들이지만

 

우리 공동체가 하느님을 삶 속에 모시고 살아가는 살아 있는 공동체가 되어

 

저희 모두 기쁘게 일하고 있습니다. 

 

저희 간성 본당을 지켜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어느 시인이 ‘사랑하는 법’에 대해서 한 말이 생각납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저기서 혼자 비를 맞고 있고 내가 이쪽에서 우산을 받쳐 쓰고 있다면, 

 

만일 내가 진정으로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하는 물음이었습니다.

 

있을 수 있는 답의 하나로 ”어서 이리 와!”혹은

 

아니, 달려가서 우산을 씌어 준다.”라고 하겠지요?

 

그러나 둘 다 아니라는 겁니다,

 

아니에요. 사랑한다면,내 우산을 접고 달려가서 함께 비를 맞아 주는 것,

 

함께 하는 것,  고통을 함께 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적선하듯이 가지고 있는 것을 뚝뚝 잘라서 주는 것이 아니랍니다.

 

고통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랍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하시면서 저 높은 하늘에서 계시면서

 

“예 있다, 이거 받아라!”고 우리가 필요한 것을 떼어 보내 주시면 될 것이지,

 

왜 우리 인간의 몸을 취해서 오셨겠습니까?

 

우리와 함께 우리 고통을 함께 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사랑이 이해가 되시나요?

 

여러분 본당 공동체에서도 사랑을 나누면서 뜨거운 공동체가 되어

 

주임 신부님을 비롯하여 모든 본당 신자들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게 되기를 기도드리겠습니다.

 

저는 돌아가서, 기도 중에 여러분을 기억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저희 본당 신자들이 힘을 내라고 큰 박수를 보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저는 돌아가서 여러분들의 뜨거운 사랑과 관심을 간성 본당 신자들에게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항상 기도 중에 함께 만날 것을 바라며, 늘 건강하기를 빕니다.  

 

그리고 성찬에 초대된 그 기쁨을 자주자주 함께 느낄 수 있기를 빕니다.

 

-아 멘-


<주님 안에서 편안한 저녁 되셔요.> 

 

                                                            (춘천 간성본당 서범석 신부님 강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