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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3일 강정

2014.06.24 09:49

자발적 가난 조회 수:230

하느님 창조사업의 완성은 평화입니다.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617일 화순에서 들어온 케이슨이 23일까지

제대로 작업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슨 이유인지 잘 모르지만 안개 때문 인 듯 하기도 하고 …….

정말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고 그저 추측만 할 뿐이지만

인간의 교만이 자연을 거스르며 파괴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강정 해군기지 건설을 보면서 구약의 바벨탑을 묵상합니다.

 

  바벨탑.jpg


 

623일 연중 12주간 월요일

 

주례 강론 이균태 안드레아

 

돌아가신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께서 언젠가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적이 있었다. 평생 참으로 많은 곳을 돌아다니신 분께서 평생의 여행 가운데

가장 멀고 가장 힘든 여행이라는 것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손과 발로

가는 여행라고 하셨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보다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가슴으로 느끼는 것보다 손 한 번 더 내밀고, 발 한발 더 가까이 가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말씀이셨다.

한 인간에게서 드러나는 자신의 신념이나, 신앙, 혹은 자신의 사상에 대한

실천여부는 그 신념이 그 신앙이 그 사상이 옳다는 것을 몇 마디의 말보다

더 진실되게 알려준다.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가르침을 실천하녀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이

복음이라는 것, 자신의 신앙을 증거 하는 삶을 뜻한다.

말씀을 알기만 하고 전하기만 하고 실제 삶속에서 실천하지 않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를 속이는 것이다.

하느님을 속이는 것은 둘째 문제다. 오늘 복음을 들으면서 나는 맨 먼저 나 자신에

대한 반성을 했다. 한국에서 신학공부 10년 한 것으로도 모자라서 프랑스에 가서

거의 10년 가까이 신학을 공부하고 왔는데, 지금의 내 삶은 과연

내가 알고 있는 만큼 실천하며 살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2001년 부산 가야성당에서 보좌신부 생활을 1년을 하고,

이듬해 4월 프랑스 파리로 떠나면서 가야성당 신자들에게 더 잘 사랑하기 위해서

공부하러 간다고 했다. 10년 가까운 외국생활로 늘어난 것이 있다면,

넉살이 늘었고 뱃살도 늘었고 얼굴에 철판도 참 많이 두꺼워 졌다는 것이다.

말빨도 예전에 비해서 많이 늘었고 세련되게 표현하는 것도 참 많이 늘었다.

예전에는 공권력에 대항하는 것에 대해서도 그저 말로만 했다면,

지금은 그냥 나 잡아가라 하면서 대놓고 으름장을 놓기도 하고

비디오 카메라로 체증이라도 하려면, 관등성명 밝히고 이름표 붙이고 하라고

조목 조목 따지는 것도 늘었다.

그러나 과연 나는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을 지키고 있는가?

신자들에게 함께 해보자고 말은 그럴싸하게 하지만,

오히려 그 말 속에 나의 게으름과 태만함을 애써 감추고는

이 정도 하면 되겠지, 사람들은 이것도 안하는데 할 때도 있지는 않은가? 있다.

본당사목을 하면서 말이 많아 졌음을 절감한다.

어딜가나 좋은 말씀 한 말씀을 거의 강요받다 시피 한다.

거기에다 외국물 한 10년 먹었다고 여기저기서 글 좀 써주세요.’하고

요구받기도 하고, 사순시기나 대림시기때면 여기저기서 특강 좀 해달라고

난리가 나기도 한다. 한다. 울산 대리구 뿐만 아니라, 부산교구 평화방송 조차도

메인 MC 맡고 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그래 내가 배운 것 다 내어 줘야지,

이러는 것도 사제직의 은사인데 내 몸이, 내 건강이 허락하는 한 거절하지 말자.’

하고 주먹을 불끈 쥐며 살아가고는 있다.

그러나 가끔씩 기쁨보다는 공허함이 클 때가 있다.

말은 그럴싸하게 하는데 그 말을 정작 내 삶속에서 실천하고 있지 못하는

이율배반을 느낄 때 그 때는 정말 얼굴이 화끈 거리기도 한다.

실천이 따르지 못하는 삶, 마치 빈 깡통이 더 요란하다는 말과 똑 같은 삶이다.

흔히 사제 수도자들은 사랑과 용서의 전문가들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신부님들도 계시고 그런 수녀님들 수사님들도 계신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 만큼은 거짓말을 못하겠다.

나 자신이 내 눈에 박혀있는 들보는 보지 못한 채, 남의 눈에 있는 티를

빼내려고 하는 사람임을 나 자신이 알고 있고, 하늘이 알고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 꼬라지가 어떻다는 것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이 있다는 말씀에

위안을 삼아본다. 자기 꼬라지가 어떤지도 모른 채, 똥인지 된장인지

모른 채 살고 있는 사람도 있고 자기는 분명 똥인데

된장인체 하려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강론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나 자신에 대한 비판을 해 보았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자아비판만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복음을 가지고 장난질 쳐대는 것들도 이 세상에 버젓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믿는 사람들만 성서의 말씀을 인용하고 성서의 말씀을 토대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마귀들도 성서의 말씀을 인용하고 이용해 먹는다.

지금 우리가 이곳 강정 해군기지 건설현장 앞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평화를 위해서 거짓에 항거하기 위해서 생명의 소중함을 알리고

인권을 무참히 짓밟는 국가의 공권력에 마치 바람 앞에 선 촛불처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그 공권력의 폭력성과 불법성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기 위해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이 미사를 반대하는 것들, 이 미사를 불편하게 여기는 것들은

오늘 복음을 듣고는 쾌재를 부를 것이다.

봐라, 너희들이 주님이라고 부르는 저 예수라는 양반이 뭐라고 하고 있느냐?

제 눈에 있는 들보부터 빼라고 하지 않았느냐?’ 하면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는

우리를 조롱 할 것이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마귀들도 성서의 말씀을 인용하고

성서의 말씀을 이용해 먹는다.

그것들은 성인들에게 기도나 열심히 하고 자기 성찰이나 열심히 해서

착하게 살고 죄지은 사람을 용서하고 가난하고 힘없고

소외받고 버림받는 사람들에게 동 몇 푼 쥐어 주며

눈물 한두 방울 뚝 뚝 떨어뜨리며 사는 것이 신앙생활의 전부라고 여긴다.

그 이상을 행하면 박해가 가해진다.

대한민국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명시하지만,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는 종교가 기득권에 순응하고

기득권에 봉사 할 때에나 보장되는 것이다. 기득권에 대항하고 거짓을 폭로하고

불의에 맞서기 시작하면 재 아무리 종교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반드시 박해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것들은 너희 그리스도교 신자들 기독교 신자들은 회개하고 사랑하고

용서하라는 예수의 말씀을 왜 실천하지 않느냐,

왜 너희 눈앞에 있는 들보는 보려하지 않고 미사를 무기삼아

국민을 우롱하고 선동하느냐고 일장 연설을 하며 우리들은 가르치려 든다.

그러나 인권을 무참히 짓밟고 거짓 평화를 이야기 하면서

부강하고 힘 있는 나라 만들려고 하는 자기들이 하는 일들을 이해하라고

혹시라도 국민에게 잘못한 일이 있으면 용서하고 잊어버리라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우리들을 압박하는 것은 폭력의 문화 죽음의 문화에서

나타나는 병적인 충고에 지나지 않는다.

정의에 입각한 불의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는 인권을 무참히

짓밟힌 사람들아 자기 몸과 영혼에 새겨진 억울한 생체기 들을 용서 할 수도

잊어버릴 수도 없다. 입에 발린말로 용서하고 이해하라는 것은 불의한 요구다.

무조건 다 용서하고 잊어버리라고 하는 것은 학대받는 사람들

인권을 유린당한 사람들 가난하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삼들에 대한

억압을 조장해 왔을 뿐이다.

오늘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68일이 지났다.

너 나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자기의 삶에 대한 회의와

반성을 이곳 저곳에서 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삶, 돈 지랄에 미쳐가는 사회로 치달아 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 대한민국에서 별 다른 바른 소리 않고, 좋은 게 좋은 것이고

굳이 비싼 비용 안 물어도 사고 안 나면 괜찮은 것이고

국민이 지도자를 뽑을 때에 정의 평화 생명 같은 가치를 중시하기보다는

경제 살리고 국민들 주머니에 돈 좀 지어주고 콩고물 많이 떨어지는 사업들

벌여주고 각종 규제 완화 하거나 없애주면서, 아파트 값 올려주고

땅값을 올려주고 금리 올려주고 코스피 팍팍 올려주는 사람들에게

표를 몰아주었던 국민의 지난 삶을 반성 하는 것 물론 조은 일이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이 모든 반성에 앞서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정의를 세우는 일이다.

세월호 참사를 일으킨 장본인들 세월호 대 참사에 1차적인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

청해진해운 종사자들 국민의 안녕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국민을 보호하고

지켜야 할 책임을 진 사람들 이 나라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을 비롯하여

그러한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직무유기에 대한

공정한 심판이 우선 되어야 한다.

또한 사실을 사실대로 보돼야할 언론들이 제 위치를 지키지 못하고

정부의 사태 은폐 조작을 돕고 거짓을 보도함으로써 저지른 만행에 대한

공정한 심판도 있어야 한다.

국가 전체의 슬픔과 분노에 별다른 대응 없이 국민 전체의 화개만 부르짖는 종교도

반성해야 한다. 그렇게 국민 전체의 회개만 부르짖다보면 자칫 권력의 시녀

권력의 개로 전락한다. 종교가 눈치를 보아야 할 곳은 단 한곳이다.

그 종교의 설립자 창설자다.

불교는 부처님 눈치만 보면 되고 그리스도교는 예수님 눈치만 보면 된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 책임 져야할 사람들을 압박하는 것이 2014623

제 눈에 있는 티를 먼저 빼내어야 하는 우리들이 할 일

우리들의 해애 할 소명이고 성소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목자로 알아보고 그 분의 목소리를 알아들으며

그 분을 따르는 삶, 그 삶은 정의와 평화와 진리와 생명의 존중과

민주주의 회복과 분단된 조국의 평화 통일을 요구한다.

이 가치들 가운데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기울어져 가는 정의의 회복이다.

불의하게 모은 보화는 소용이 없지만 정의는 사람을 죽음에서 구해주기(잠언 10,2)

때문이고, 불의가 가져오는 것은 죽음 뿐(토빗 14,11)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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