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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8일 강정

2014.06.30 08:35

자발적 가난 조회 수:177

하느님 창조사업의 완성은 평화입니다.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628일 강정마을이 해군기지 반대를 외치여 살아온

2600일째 되는 날입니다. 7년 하고도 45일째 되는 날입니다.

전쟁 같은 7년의 세월입니다.

땅을 빼앗기고 바다를 빼앗기고 마을 주민들이 분열되고 있습니다.

 

 

627일 금요일 예수성심 대축일 사제 성화의 날

 

강론 황정연

 

어디계실까? 주님은 어디?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은 빛을 잃어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계실까? 어디계실까?

우리 구원 하실 그분 어디 계실까?

이 구절은 금관의 예수라는 노래의 일부입니다.

70년대 암울한 시대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하느님은

어디에 계실까? 라고 질문 했던 노래입니다.

박정희 독재 치하에서 불렀던 이 노래가

2014년 오늘 우리의 마음에도 와 닿습니다.

빛을 읽고 표류하는 시대 포효하는 세상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얼어붙은 마음으로 고통 중에 질문합니다.

하느님은 어디에 계실까?

하느님은 어디에 머무시고 어디에서 함께 하고 계실까?

이 질문은 비록 고통 중에 태어났지만 응답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응답하셨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70년대의 독재 시대를 넘어서 서서히 자라났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는 희망을 가지고 주님을 찾습니다.

사실 사람은 사람을 찾아 도움을 구하며 살아갑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합니다.

지난416일 눈앞에 보이는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이

희생되어가는 참사를 보면서 우리는 사람을 찾았습니다.

국민의 안전을 보장해야 될 경찰과 군인이 어디에 있는지?

정부는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없었습니다.

그 참담한 죽음 앞에서 그들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느님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인간들이 국민의 세금을 받아먹는 관료 군 경찰에게서

도움을 얻을 수 없으니 신앙이 없는 이라도 하느님을 찾 울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도 희생자들을 다 찾지 못했고 세월호 참사는 종결되지 않았습니다.

이미 보수언론들은 세월호를 망각하기 시작 했습니다만

이런 비정상적인 현실 안에서 우리는 그 사건의 아픔을 잊지 않고

구원의 희망을 잃지 않고 주님을 찾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현실은 더 절망적입니다.

필요할 때 도움이 되어야 할 정부 군대 경찰로 존재 하지 못했던 그들이

대양해군을 외치며 그들의 존재를 엉뚱한 곳에서 드러내려 합니다.

왜 주민들이 반대하는 이 강정에 나타나서 미국의 전쟁준비를 돕는

군사기지를 건설하려고 합니까?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고

없어야 될 자리에 존재하는 군대라는 것은 무수한 재앙의 근원이 됩니다.

이러한 위험을 우리는 묵과할 수 없기에 오늘 이 자리에 모여서 하느님을 찾습니다.

주님께서 강정에 있는 우리와 함께 하시고 구럼비와 함께 하셔서 당신의 평화를

이루어 주십사 기도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찾을 것이고 그분의 평화는 이루어 질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루 신문지상을 통해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용어를

자주 접하게 되었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심각한 사고, 즉 트라우마를 겪고 나서 나타나는

정신적 고통내지 장애를 말합니다.

배가 파선되고 건물이 붕괴되는 현장 또는 다른 사고 현장에서 생존한 사람들 중에

일부가 이런 고통을 겪는 경향이 있습니다.

모든 생존자가 다 경험하는 것은 아닙니다. 엊그제 참사에서 생존한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 학생들 중에는 이런 고통을 겪는 사람이 없길

배래봅니다. 이미 겪은 고통도 너무나 큽니다.

이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 받는 가장 일반적인 대상은 참전군인입니다.

전쟁은 가장 심각한 트라우마 가장 큰 상처 중에 하나입니다.

이 장애에 대한 연구가 가장 발달한 국가는 미국입니다. 왜 그럴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미국에는 이 장애를 겪는 환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답도 간단합니다. 미국이 전쟁을 많이 해왔기 때문입니다.

사실 수많은 미국 병사들이 한국에서 베트남에서 이라크에서 자신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상대방 국가의 군인들과 무자비한 싸움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불면증을 호소하기도 하고 갑자기 느껴지는 공포감으로 얼어붙기도 합니다.

참전으로 인한 이 장애의 가장 비극적인 종말은 자살입니다.

2010년도 한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베트남 참전군인 약 22명이

매일 매일 자살했습니다. 이 사건은 그 해만의 일이 아닙니다.

다소 숫자의 차이는 있지만 지금까지 매일 계속 같은 방식으로 죽어가는

참전 군인들이 있습니다. 전쟁의 참상은 종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 이후에도 계속됩니다. 이 조사를 보면서, 참전 군인들의 삶과 죽음을 생각하면서

참 안타까운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참전용사들이 70%이상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 나이가 50대 이후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 하겠습니까? 한번 같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이 20대에 참전을 했을 것입니다.

일부는 30대 일 수 있겠고 십대 후반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선 이들은 가장 아름다운 젊은 시기에 전쟁에서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과 장애를 짊어지고 오십대가 되기까지 30여년 20여년을 살았습니다.

이십년 삼십년 생활이 행복했을까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알코올이나 마역 중동에

빠졌고 가정 파탄을 경험 했습니다.

그렇게 고통의 세월을 살다가 결국은 오십대 육십 대 가 되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참으로 비참한 삶과 죽음입니다.

전쟁이 가져다준 결과입니다.

전쟁을 주도한 국가에게 순진하게 생각 없이 충성한 대가입니다.

이 조사가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전쟁은 피해야 한다. 전쟁에서 다른 군인을 죽였다고 승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이를 죽이고 승리 했다고 생각하는 이도 비참한 삶을 살다가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전쟁에서 승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패자와 피해자입니다.

그러므로 전쟁을 준비하지 말고 평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하느님을 찾습니다.

전쟁으로 가는 길에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평화는 전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전쟁을 준비하는 해군기지 건설에는 하느님도 그분의 평화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쟁을 반대하고 정의와 평화 생명으로 나아가는 우리 안에는 하느님이 존재 합니다.

하느님은 정의이시고 평화이시고 생명이십니다.

정의와 평화 생명에 머무는 우리 안에서 하느님이 계십니다.

이제 우리는 하느님을 밖에서 찾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권력의 주위에서 찾지 않습니다.

부자의 식탁에서 찾지 않습니다.

부정한 법률을 준수하는 삶에서 주님을 찾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평화를 추구하는 우리 안에서 찾습니다.

하느님은 마음에 머무르시는 분입니다.

하느님의 집터는 굳어버린 콘크리트도 아니고 케이슨도 아닙니다.

우리의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의 마음 구럼비를 아끼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서 예수 성심대축일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보여 주시고 자신에게 배우라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예수님의 성심을 배우라는 초대는 참으로 오묘한 것입니다.

내가 친한 친구를 내 집으로 초대하면 그 친구가 나를 초대하듯이

우리가 예수님의 성심에로의 초대에 응하면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초대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 마음에 당신의 거처를 마련하십니다.

그 안에서 우리가 안식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미국과 한국 정부와 군과 경찰과 재벌은 자연을 파괴하며 인류의 트라우마,

전쟁으로 나가는 마음에 예수님의 집을 짓고 있습니다.

어디에 계실까? 주님은 어디에 우리를 구원하실 그 분 어디 계실까?’

우리는 주님을 찾습니다.

정의와 평화 생명을 사랑하는 우리는 마음에서 그 분을 찾았습니다.

하느님을 찾아서 모시는 자가 승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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