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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강정

2014.06.30 08:36

자발적 가난 조회 수:164

하느님 창조사업의 완성은 평화입니다.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주일에도 공사는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주일에도 구럼비는 계속 파괴되고 매립되어지고 있습니다.

24시간 계속되는 공사에 우리는 그저 맥없이 바라만 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주일에는 경찰이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사시간 평화롭게 온전히 봉헌 할 수 있습니다.

미사 중에 오던 공사차량들도 미사 봉헌시간인 것을 알고는

포기하고 이른 점심을 먹으로 갑니다.

공사장에서 나오는 공사 노동자들도 11시부터 12시 반까지

어쩔 수 없다고 서오 이야기를 나누며 지나갑니다.

그러나 경찰이 있으면 저들의 행동도 바뀌게 됩니다.

오늘 수녀님들과 신혼여행을 온 신혼부부가 강정의 미사에 함께 해 주셨습니다.

 

629일 주일 성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 대축일

 

주례 강론 조신홍

 

오늘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입니다.

이 두 사도가 교회에서 함께 축일을 지내는 것이 의아하게 생각되기 합니다.

생활방식이나, 성격 등이 두 분의 삶은 전혀 다른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오늘 말씀에서 두 사도의 접점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그리스도 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 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너는 베드로 이다.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지기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이렇게 믿는 이로서 더 이상의 영광은 없을 정도로 칭찬을 받은

사도는 예수님이 가까이 두셨던 열두 제자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제자들 중에서도 대표로 꼽히시는 분이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1서에서 부활에 대해 말할 때 예수님이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고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1코린토 15,4-5)는 말로 베드로를 다른 사도들과 구별하여 언급합니다.

또 바오로는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회심한 후 선교활동에 나서기 전에

예루살렘에 가서 보름동안 그와 함께 지냈지요(갈라1,18). 이것은 모두 베드로가

사도들을 대표하는 분이었고 그것을 널리 인정받았기 때문에 가능 했습니다.

그러나 바오로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바오로사도는 예수님을 직접 만나지

못한 분입니다. 유대교 율법에 독살했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극렬히 박해했던

분이지요. 그랬던 사도는 다마스쿠스에서 주님을 체험하고 극적으로 전향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 한 생활은 없는데도 불구하고 사도가 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 만약 바오로 사도가 없었다면 이반민족으로의 선교는 그렇게 빠르게

진행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사람이 갑자기 180도 변해서 선교를 할 때에

그것을 바라보는 사도들의 마음이 어땠을지 저는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오로는 스스로가 얘기했듯이 사도라는 위치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사셨지요. 오히려 당시 그리스도교를 대표하던 베드로 사도의 잘못을

꾸짖을 수 있었던 것처럼 대단한 사도였습니다.

이런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의 관계를 두고 많은 역사학자들과 성경학자들은

그 두 분의 관계를 연구했습니다. 많은 연구만큼이나 방대한 결과가 나왔고

지금도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인정하는 것은 바로 두 사도가 언제나

어디서나 어떻게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전파했던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사도의 순교가 그것을 증명한다고 얘기합니다.

이런 두 사도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시간가 장소 그리고 방법을 은연중에 다른 이들에게 요구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것을 따르는 것이 주님과 더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지요.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베드로 사도처럼 주님과 함께 생활 했으면서도 성급한 성격을 지녔어도,

또 바오로 사도처럼 주님과 만남으로 어느 한 순간 전 생애가 바뀌어도

그 중심에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성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처럼 언제나 어디서나

내 삶 전부를 주님께 가득 채우고 살아가시길 기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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