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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3일 강정

2014.02.14 08:42

자발적 가난 조회 수:295

하느님 창조사업의 완성은 평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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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한국을 방문하신다고 합니다.

강정 지킴이들이 교황청에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강정을 방문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만약에 교종께서 강정을 방문하게 한다면

한국에 있는 많은 주교님들도 강정을 방문하시겠죠.

정진석 추기경님 염수정 추기경님 이한택 주교님 그리고

제주도에서 은퇴하셔서 이시돌 수녀원에 계시는 김창열 주교님까지

저는 소망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강정을 방문 하시기전에

대한민국에 계신 모든 주교들이

강정을 방문해 주기를 간곡히 부탁합니다.

이곳에서 미사시간에 얼마나 많은 공권력의 폭력이 자행 되는지

얼마나 많은 하느님의 창조물이 파괴를 당하는지

무관심이 예수님께 어떻게 십자가의 못 박음이 되는지

 

멧부리 앞에 새로운 방파제가 완성되고 있습니다.

3년 동안 바다에 수많은 시멘트 쓰레기를 부어 놓고

만들어 진 방파제입니다. 덕분에 세계 제일의 연산호 군락지가

괴사되고 있습니다. 바다가 썩어 가고 있습니다.

 

213일 연중 5주간 목요일

 

주례 이규섭

강론 임남용

 

찬미예수님! 반갑습니다.

저는 지난 4일 성산포 본당으로 발령받은 임남용 라파엘 신부입니다.

월요일부터 수요일 까지 제주교구 사제 수도자 연수가 있었습니다.

지난 연수 때 저희가 배운 내용은

프란치스코 교종의 첫 번째 권고라고 할 수 있는

복음의 기쁨이라는 내용을 가지고 연수를 하였습니다.

복음의 기쁨.

교회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서

교종님 당신이 걸어온 삶 안에서 통찰되어 온 것들을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입장을 표명하신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소비주의 그리고 물질주의 개인주의 …….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 그저 무심코 넘길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우리에게 그것들이 좋은 것이라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하지만 이러한 세상 안에서 하느님을 따르는 이들의 모습은

분명 세상 사람들과는 달라야 할 것입니다.

남들이 한다고 그저 우리들도 따라야 한다면

예수님의 제자는 아닐 것입니다.

교종님께서도 이 세상 안에서 하느님을 따르는 이들은

하느님의 사랑 그리고 자비의 마음만이

그 답임을 우리에게 밝혀주고 계십니다.

또한 교종께서는 평화라는 것이

그저 폭력이 없는 상태라든지

부유한 이들이 지금의 자기 생활 방식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난한 이들을 무마하고 억압하는 사회 구조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정의로운 우주를 담는 것이 곧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것이 평화로 해석 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는 시리아 페니키아인과 예수님과의

대화 내용이 나옵니다. 마귀 들린 딸을 위해서

예수님을 찾아온 한 여인 그 여인에게

예수님은 너무나도 가슴에 큰 대못을 박는 말씀을 하십니다.

먼저 자녀들이 배불리 먹어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어쩌면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당신의 모상대로 창조된

한 인간을 처참히 짓밟아 버립니다.

한 인간의 아픈 마음을 당신과는 그저 다른 민족이기에

더욱 짓밟아 버리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기 까지 합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그 여인은 대답합니다.

주님! 그러나 상아래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어미의 그 심정이 많이 드러나는 대답입니다.

나는 어떠한 모욕을 당하더라도 내 자식이

다시 건강해 질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다 포기 할 수 있는 어미의 마음

그러한 어미의 마음에 예수님께서는 말씀 하십니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가 보아라!

마귀가 이미 너의 딸에게서 나갔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저는 어머니의 사랑에 대해서 집중해 보았습니다.

자식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던 한 어미

어미가 무엇이기에 그 사람이 무엇이기에

되지 않을 일을 되게 만들어 낸 것은

폭력도 아니고 강함도 아니었습니다.

약함 한없이 연역함이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 저의어머니의 한없이 약한 모습이었습니다.

초등하교 2학년 심하게 앓은 적이 있습니다.

열이 40도를 오르내리고 밤마다 잠을 못자는 저를 위해서

어머니는 밤마다 물수건으로 저의 이마에 대어 주셨습니다.

하루는 저녁 무렵에 열이 너무 많이 나고

코에서는 피가 흘러 그 피가 모두 목구멍으로 넘어간 적이 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저의 모습을 보고 저를 등에 업고서

4km가 넘는 거리를 한 걸음에 달려 가셨습니다.

아주 약한 모습 안에서 어미라는 그 이름을 큰 힘을 발휘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그 어미의 그 마음에

예수님께서는 두 손을 드십니다.

우리가 믿는 다는 믿음은 바로

나의 연약함을 발견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기적을 일궈내는 믿음은 이 연약함을 고스란히

봉헌하는 바로 거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세상 곳곳은 강함만을 추구합니다.

돈을 우상으로 숭배하고 권력을 우상으로 숭배하며

인간은 하나의 소모품으로 전락해 버린 그러한 세상입니다.

저는 삼성이라는 기업을 무척이나 싫어합니다.

제가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삼성이라는 기업에

잠시 입사를 했었습니다. 인턴사원으로서 그곳에 있으면서

거기에서 나오는 관료의 이미지 인간을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고

오직 돈을 벌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는 모습

그 안에서 저는 그 삼성이라는 기업의 이미지를 다 바꾸어 버렸습니다.

지금 저는 삼성 이라는 그 기업의 어떠한 제품도 쓰기를 거부합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는 다면

그 기업이 이 세상이 아무리 돈이 많고 정의롭게 보인다 할지라도

그것은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닌

바로 지옥과 같은 곳입니다.

세상의 강함 결코 우리들의 약함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약함을 통해

부활의 기쁨을 우리에게 남겨 주셨듯이

오늘 복음의 한 어미가 약함을 통해서 딸을 살려내 엇듯이

우리 또한 철저히 약함의 길을 걸어가야만 합니다.

우리나라에 많은 곳 특히나 이곳 강정마을

온 세상에 강하다는 자들에 의해서 연약한 이들이

무참히 짓밟히고 있는 그러한 현장입니다.

하지만 그 강함이 그 강함을 통해서

평화가 결코 이루어지지도 않을 것이며

그 강함이 영원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들의 이 약함을 통해서 평화가 이룩되고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참 기쁨이 넘쳐날 것입니다.

보잘 것 없는 이들과 한없이 약한 이들과

늘 함께 해 주시는 우리주님 그분께서는 이곳 강정마을의

모든 아픔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누구보다 먼저 이곳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들의 작은 마음들 예수님의 마음에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미사 안에서 그 분의 사랑을 조금 더 담고

그 안에서 이곳 강정마을의 평화가 이룩될 수 있기를

기도 한다면 그분의 아픈 마음 조금이나마

더 치유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아픈 상처를 달래는 것은 강한 힘이 아니라

우리들의 연약한 마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기도.jpg미사.jpg파괴.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