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첫째주 둘째주 강정소식
9월 첫주 월요일 4시미사와 화요일 미사는 전주교구에서 수요일에는 신제주성당과 고산성당 그리고 대전에서 오신 수녀님들께서, 목요일에는 서귀복자성당에서 금요일에는 한림성당, 애월성당에서 토요일과 일요일은 강정현장팀에서 미사를 진행했습니다. 둘째주 월요일은 예수회, 화요일은 강정평화컨퍼런스 참석자들과 함께, 수요일은 하귀성당, 목요일은 신창성당, 금요일은 금악성당과 광주가톨릭사회복지시설팀과 함께 했고 토요일은 강정현장팀에서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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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럼비에 팬스가 쳐진지 어느덧 4년째
9월2일은 2011년 강정마을에서 구럼비로 향하는 지역에 팬스가 쳐진 날입니다. 육지 경찰 1000여명이 투입되어 36명이 연행되고 3명은 구속되었습니다. 아프고 슬픈날은 4년째 맞이하지만 언제나 그 날을 기억하고 언젠가는 구럼비로 향하는 길이 다시 열리기를 소망해 봅니다.
드디어 문을 열다! 성프란치스코 평화센터 9월5일은 성프란치스코 평화센터 축복식이 열렸습니다. 현재 센터가 완공된 부지는 1976년 3월1일 유신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3.1민주구국선언에 참여했던 문정현신부가 구속된 후 40여년이 지나 무죄 판결을 받은 것에 대한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이 이뤄지면서 마련되었습니다. 이후 천주교제주교구 강우일 주교와 제구교구 각 본당, 전국에서 강정을 응원하는 익명의 손들이 모여 현재의 센터가 완공 됐습니다. 이날 축복식에는 약 600여명의 천주교신자들과 마을주민들, 제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모여 성프란치스코 평화센터의 개관을 축하했습니다. 앞으로 성프란치스코 평화센터에서는 해군기지에 맞서 평화교육의 장으로,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는 전시관으로, 주민들의 쉼터로 마을에 자리 잡으려 합니다. 많이 오시고 응원도 해 주세요.
강정평화컨퍼런스 열려 9월7일부터 9일까지는 ‘비무장 평화의 섬 그 의미를 조명, 성찰하고 계획한다’는 주제로 제2회 강정평화컨퍼런스가 열렸습니다. 이 행사에는 제주와 육지를 비롯해 일본에서 많은 평화활동가들과 신부, 수녀들이 함께 모여 비무장평화의 섬 선언 10주년을 맞아 제주의 비무장평화의 섬의 의미를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주교구와 평화의섬실현을위한 천주교연대, 예수회 한국관구가 함께 주최하는 본 컨퍼런스는 동북아시아지역의 여러 섬들을 비무장평화의 섬으로 만들기 위한 인식을 확장하고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동북아 평화의 섬을 만들기 위한 연대, 평화교육, 평화공원조성등을 위한 토론과 기조 발제가 진행되었습니다.
많은 것이 변해갑니다. 강정마을 지킴이들이 공동으로 먹고 쉬는 삼거리 식당 인근은 현재 민군복합항 우회도로 건설로 인해 백합하우스, 밀감하우스가 철거되고 도로를 내는 공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우회도로 건설부지에 삼거리 식당 또한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해군기지 팬스 안쪽에서 우물이 발견 됐던 것처럼 삼거리 인근 토지에서 유적이 발견되어 도로 공사 중 유적발굴조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마을이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해군기지 우회도로, 크루즈 항만공사등으로 기지 인근 뿐 아니라 마을 곳곳이 변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에 정면으로 부딪히며 저항하는 예수님
9월7일 김영근신부 (예수회)
예수님 시대에 율법주의가 무엇인가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로마로부터 해방되는 길은 철저히 율법 준수로서만 가능하다고 믿었다. 율법을 철저히 지키면 하느님이 언젠가는 해방시켜 줄 것이란 것이다. 그래서 바리사이인들은 율법을 절대시했다. 이 율법은 이스라엘의 국가 사회를 유지시키는 헌법과 같은 것이었다. 안식일 법을 목숨보다도 더 중요시하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정면으로 대항하며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신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분명 그 사회에서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이고 가난한 사람이고 그 신체적 조건 때문에 많은 것을 빼앗긴 사람이다.
안식일에 굳이 그를 고쳐주고자 함은 그가 신체적으로 지금 당장 숨넘어갈 만큼 절박하지는 않겠지만 모든 것이 빼앗긴 그에게 있어 사회적 생명은 하루하루, 한 시간 한 시간 살아가는 것이 숨 넘어 갈만큼 위태로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이 사람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은, 바로 편협하며 완고한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분노로 저항하며 동시에 죽어가는 사회적 생명을 일으키고 그리하여 공동체의 재구성, 평화마을 만들기를 위해 행동하시는 것이다.
지난 토요일 강정에 평화센터 개관식이 있었다. 여기서 강우일 주교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기억하는 것이 좋겠다.
“전쟁은 재앙이고 결코 국가 간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길이 아니며 지금껏 한 번도 그러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러지 못할 것”이라면서 “무력을 통한 정당방위는 엄격한 조건들을 충족시킬 때만 도덕적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하셨다.
“전쟁을 긍정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전쟁은 언제든지 일어 날 수 있다”며 “평화센터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간 공동체를 말살해도 된다는 비이성적이고 야만적인 세력과 싸워 참 평화를 배우고 메시지를 발신하는 평화의 전초기지가 되길 바란다.” 여기 강정에 해군기지라고 하는 것이 “전쟁을 준비하고 전쟁을 위한 기지가 버티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큰소리로 세상을 향해 평화가 전쟁 준비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야 한다.”
4일(현지시간)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에 따르면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켈레티 역에서 독일행을 기다리던 시리아 난민 소년 키난 마살메흐(13)은 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럽으로 가길 원하지 않아요 그냥 전쟁만 멈춰줘요, 그게 전부예요"라고 전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저들을 비난만 하지 마라. 그들의 율법에 의한 윤리강령 즉 아무도 돌보지 마라라는 주장에 행동으로 저항하라. 거부하라. 아무것도 하지 마라라는 그들의 명령을 거부하고 행동하라. 낡은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이들에 맞서 창의적이며 살아있는 새로운 행동으로 저항하고 행동으로 평화마을, 평화의 섬을 만들라.
평화는 정의의 결과입니다
9월1일 김회인신부
2014년 시카고 초고층 빌딩에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외줄타기 전문가 ‘닉왈렌다’라는 미국인이 눈을 가리고 건물 사이를 이동하였는데요.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이를 220여 개국에 중계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외줄타기 공연이 흥미를 끈 것은 외줄타기 전문가인 그가 일체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는 공연을 잘 해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던 반면 만일의 사태로 벌어지게 되는 불미스러운 일에 대한 두려움에 기인한 짜릿함이 극도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는 성공했습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았지요.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의 조부와 증조부, 2대에 걸쳐 이와 같은 모험을 즐겼다는 것이며, 이들은 줄타기의 전문가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전문가들은 결국 외줄타기 공연을 하던 중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렇듯 위험천만한 외줄타기 공연을 흥밋거리로 많은 사람들이 접하게 되는 데는 전문가라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전제되어있습니다만, 이러한 믿음이 깨지는 순간은 반드시 존재합니다.
나라와 나라와의 관계를 외줄이라 한다면 외줄타기 전문가가 들고 있는 수평봉은 국가 간의 힘(물리적 힘-무력)입니다. 국가 간 힘을 겨루는 가운데 발생하는 긴장감이 바탕이 되어 이루어지는 안정된 상태, 이를 평화라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은 국가 간의 관계가 무정부상태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정부는 유사시 국민의 권리를 통제하게 되는데 이를 법적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오히려 법의 처벌을 받게 되지요. 국제관계에서는 이렇듯 국제사회의 무정부 상태를 전제로 두고 개별단위인 국가들이 권력(Power)을 위한 투쟁을 하게 되는 것으로서, 국가는 생존을 위해 선택을 함과 동시에 이를 위한 힘을 비축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런 세상, 거창한 용어로 설명하지 않아도 직관 알게 되는 것. 깡패들의 섭리와 똑같습니다.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론이라며 설명합니다만, 결국 행하는 꼴은 딱 완력다툼인 게지요.
잘 아시다시피 평화의 소극적 의미는 힘의 균형입니다. 국제관계에서 강자가 폭력으로 약자를 억누름으로써 유지되는 세상이지요. 이러한 의미가 냉혹하게 유지되는 한편 국가 간 관계는 형성되고 있는데, 우리네 위정자들과 사회 엘리트층들은 바로 이러한 상태를 두고 완곡하게 주장합니다. “평화롭다 안전하다.”
이러한 것들이 1900년대 양극 체체 안에서 분명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현재 미국이라는 단극 체제 안에 매몰되어있는 가운데 이를 변화시키려는 세력이 부상하고 있지요. 바로 중국입니다. 이미 알려진 바대로 사드의 한반도 배치 논쟁 관련, 표면적으로는 북쪽의 위협을 내세웠다지만 사드의 유효한 사거리니 효력 등을 평가하였을 땐, 어떤 군사전문가들도 단연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려는 수단이라고 못 박고 있는데요. 이렇듯 미국은 이미 중국의 위협을 감지하고서 과거 소련을 해외 주둔 미군 혹은 군사협정으로 에워쌌던 것처럼 중국을 감싸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평화를 운운하며 해군기지를 건설하겠다는 것은 스스로의 운명을 패권국가에게 넘긴 꼴이 되고 맙니다.
2주전 리사 프란테티 주한 미 해군 사령관이 이임식에서 제주해군기지를 이용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과 관련해서 설전이 있었음을 기억합니다. 이와 관련한 논쟁이 불거지자 정부는 “동맹국인 미군 함정이 제주민군복합항에 일시적으로 기항할 수 있"지만, "이러한 일시 기항은 중국, 일본 등 어느 나라든지 가능하다”고 밝혔다는 데요. 조금만 생각해 보면 얼마나 위험한 외줄타기 평화 전문가의 장난질인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에는 "미국의 육·해·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주변에 배치하는 권리를 한국은 허여(許與)하고 미국은 수락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조약에 따라 체결된 주한미군 주둔군 지위협정(SOFA)에는 "(미국의) 선박과 항공기는 대한민국의 어떠한 항구나 또는 비행장에도 입항료 또는 착륙료를 부담하지 아니하고 출입할 수 있다"(제10조 1항)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제10조 2항에는 주한미군 기지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항구 또는 비행장간을 이동할 수 있다"고도 나와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미국은 우리의 허가 없이 원하는 때 원하는 만큼 강정에서 건설될 해군기지를 활용할 수 있는 반면, 중국, 일본 등은 분명히 우리나라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상식적으로 물음을 던지며 답을 찾자면, 유사시 과연 우리나라가 중국과 일본에게 우리의 항을 활용할 수 있도록 허락할 수 있겠습니까? 평상시 군사훈련을 핑계로 제주입항허가가 이뤄질지는 몰라도, 이것은 정례적은 형식일 따름입니다. 줄타기와중에 힘겨루기의 상황이 발생되었을 때, 과연 미국은 제주강정이라는 천혜의 군사 요충지의 입지 조건을 포기할 것이라고 여기십니까?
이러한 점에서 오늘의 독서를 강정, 역사의 현장에서 새로운 의미로 해석하게 됩니다.
“평화롭다 안전하다” 말할 때 아기를 밴 여자에게 진통이 온 것처럼 갑자기 그들에게 파멸이 닥치는데 아무도 그것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어둠 속에 있지 않으므로 그날이 여러분을 도둑처럼 덥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위정자를 비롯한 사회의 권력자들이 소극적인 평화가 전체 인 냥 왜곡하여 사람들의 귀를 먹게 하고 눈을 멀게 한 순간에도, 빛의 자녀로서 살아가기를 다짐한 이곳 주민들과 활동가들, 그리고 이곳에서 이뤄지는 평화운동을 잊지 않고,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 있는 많은 사람들 그들의 노력이 간직한 참된 의미 말입니다. 이는 자칭 평화 전문가로서의 외줄타기 공연 중에 실수 한 번에 파멸의 때가 닥쳐 올 날을 예견하여 수많은 생명들의 안전을 하고 참 평화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고 계시다는 숭고한 의미입니다.
이곳에서의 평화지킴이들이 외치는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평화가 아닙니다. ‘간디’는 평화를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황이 아니라, 정의가 구현된 상황으로 보았다고 합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상태. 평화는 정의의 작품"(사목헌장 75항)입니다. 이 땅에 참된 정의가 살아가도록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모든 분들 응원하며 마지막으로 말씀 올려 봅니다. 무기를 들고 평화를 말할 수는 없습니다. 평화의 섬 제주에서, 그리고 그 안의 작은 고을 강정에서 평화를 논하기 위해서는 해군기지가 원천적으로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그날을 위해 끝날(!)까지 자신의 생명력을 기꺼이 내어 바치실 모든 분들, 강정에 함께하는 이 있어 그날이 닥치더라도 마냥 어둡지는 않을 것입니다. 잊지 않고 응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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