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8월 22일 강정

2014.08.23 09:09

자발적 가난 조회 수:137

하느님 창조 사업의 완성은 평화입니다.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미사를 시작 할 때 공사장 정문 앞에 프란치스코 기도문과

강정아 너에게서 평화가 시작되리는 기도문을 서각하여

함께 놓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이것을 방해물이라고 합니다.

차량이 다니는 쪽은 분명 다른 방향인데 기도문을 치우려

난리입니다. 서귀포 경찰 서장의 뜻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미사 중이며 기도문이라 함부로 하지 말라고 하고

경찰은 기도문이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느냐며 내동댕이치고

사람이 다칠 수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빌기도 하면서

…….

 

세월호 유가족 유민이 아버지 김영오님의 단식 40일째입니다.

상황이 위급하여 병원으로 이송 했으나 지금도 단식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8253시부터 광화문 농성장에 집결하여

세월호 참사 진상구명을 위한 전국 사제 수도자 단식기도회가 진행됩니다.

그리고 매일 1830분 미사가 봉헌 됩니다.

함께 하여주십시오. 유민이는 우리가 살리지 못했지만

유민이 아빠는 살려야 합니다.

 

 

822일 금요일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주례 강론 홍윤학

찬미예수님!

오늘 우리는 이곳 강정에서 생명 평화 기원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할 계명을 이야기 하고 계시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랑의 2중 계명입니다.

첫째 하느님을 사랑하고 둘째 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 하여라! 라고 하신 말씀이죠.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참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각자에게 서로가 다른 방법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죠.

그런데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드러나는 사랑은

우리가 바라볼 때 아 이것이 사랑이구나! 아니구나! 라고

하는 것이 한눈에 드러나게 되죠.

즉 이웃을 어떻게 사랑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도 중요하구요.

오늘 저는 복음에서 이웃이라는 단어에 집중을 해 봤습니다.

복음서를 살펴보면 예수님께 이웃이 누구였는지 분명하게 드러나죠.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 아파하는 사람들 고통받고 억압받고 굶주리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이웃이 되어 주셨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당신을 반대하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 까지도

당신의 이웃으로 삼으셨죠.

미워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진정으로 하느님의 마음으로 사랑을 했던 것입니다.

얼마 전에 교황님께서 이곳 한국 땅을 밟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보여주신 행적은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같았죠.

교황님께서 한국 땅을 떠나시고 난 뒤에 인터넷에서 가장 뜨겁게

가장 많이 검색되었던 단어가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 교황님께서 한국 땅을 떠나시고 난 뒤 그분이 남기신 것은 사랑이었다.

라고 한 신문기자가 글을 썼고요.

다른 신문 기자는 이렇게 썼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한국 땅에 이웃이 되어주다.”

그분께서 행하신 모습들 어찌 보면 우리가 해야 될 몫인데도

우리가 하지 못했기 때문에 교황님께서 직접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이 땅에 그 분의 모습을 실현 시키신 것이 아닌가?

우리들의 이웃은 누구 입니까?

지금 옆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나와 코드가 맞는 사람들

가까운 사람 친한 사람 나에게 잘 해주는 사람 나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

을 우리는 이웃이라고 부르죠.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이들을 찾아가서 이웃이라고 말하는 거

그렇게 힘들지는 않은 일인데 자꾸만 힘들게만 되어 버립니다.

(공사차량 지나가는 소음이 심합니다.)

왜 지나가는지 모르겠습니다.

분명히 미사시간 동안에 지나가지 않기로 약속을 했는데

어기고 있죠!

이러한 모습들 그 누가 이 사람들을 보고 우리의 이웃이라고 하겠습니까?

이곳 강정에 지금 저 해군기지에 이웃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우리들에게는 신앙인으로서의 모습으로 가난한 사름들을 보는 눈이 있습니다.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지 지금 강정 해군기지 안에는 눈이 없습니다.

그러면 저들에게 이웃은 누구일까요? 저들에게?

바로 권력과 자본이라는 것이 이웃이 됩니다.

나의 이익만을 내가 살 수 있는 방법

내가 돈 벌고 조금 더 잘 먹을 수 있게 되는 그것이 이웃이 되어버린 겁니다.

이곳에서 그렇게 때문에 인권이 유린당하고 하느님의 피조물들이 아파하고

공동체가 분열되고 하느님의 생명이 죽어 가고 있는 것이죠.

만약에 그들이 지금 이 사람들이 하느님의 피조물과 이곳에서 투쟁하고 있는

강정지킴이들 우리들을 이웃이라고 생각한다면

늦었지만 지금이라고 이 짓을 멈춰야 됩니다.

일이라고 하고 싶은데 일이라는 단어가 입에 안 들어옵니다.

나쁜 짓 이죠 나쁜 짓.

언제까지 권력과 자본을 내 이웃이라 생각하고 살아가려는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 하시지 않습니까?

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 하여라!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 사랑하니까 이렇죠.

그리고 이 안에서 어느 누가 하느님을 찾아 볼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는데 하느님을 파과하고 있지 않습니까?

다시금 십자가에 못 박고 가시관을 씌우고 숨을 쉴 수 없도록 막아 버리고

어떻게 이게 사랑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하느님께 매 달려야 하겠습니다.

이 사람들을 위해서 진정한 이웃을 알아볼 수 있게 해 달라고

당신의 진실 된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해달라고

그분의 사라이 이들 마음속에 깊숙이 자리 잡게 해 달라고

그리고 지금 이곳 생명이 파괴되고 평화가 해쳐져만 가는 이곳에

진정한 하느님의 생명과 평화가 깃들어 지기를

이곳에서 우리 모두의 평화가 시작되기를 우리는 하느님께

진실 되게 간절히 기도 해야만 하겠습니다.

잠시 오늘 말씀 묵상하시겠습니다.

 

  0821.jpg

08221.jpg


08222.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