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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3일 강정

2014.08.24 10:16

자발적 가난 조회 수:141

하느님 창조사업의 완성은 평화입니다.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프란치스코의 평화기 기도문을 서각한 작품을 감금하는 경찰들…….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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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3일 연중 20주간 토요일

 

주례 강론 이동철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수난과 죽음을

택하시려고 예루살렘에 입성 하신 후 벌어진 상황에 대한 부분입니다.

오늘 마태오 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십니다.

상인들과 환전상들을 꾸짖으시며 몰아내신 후 바로 그 자리에서

눈먼 이들과 절름거리는 이들을 고쳐 주십니다.

하느님의 집에서 하느님의 일을 하신 것입니다.

이때에 다윗의 자손께 호산나! 라고 아이들의 외침을 듣고

곁에 있던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 백성의 언로들이

예수님의 말씀과 행위에 대한 권한을 문제 삼습니다.

율법보다 사랑을 먼저 생각하시고

율법보다 사람을 먼저 택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못마땅하였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두 아들의 비유와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

혼인잔치의 비유를 통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

즉 위선자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십니다.

수석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이 비유를 듣고서

자기들을 보고 하신 말씀 인 것을 알아차립니다.

화가 난 그들은 어떻게 하면 예수님께 올가미를 씌울까?

의논까지 합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문제였습니다.

예수님을 옭아매려고 하였지만 도리어 예수님의 답을 들은 그들은

경탄하며 돌아갈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억울했는지 다시 한 번 예수님을 옭아매려고

예수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그 질문은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질문 이었습니다.

이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어제 복음이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있다.’

그들의 질문에 대답을 하셨지만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몇 번의 질문들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악의를 분명히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당신 앞에 두시고

군중들과 제자들을 바라보시며 오늘 복음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있다.

그러니 그들이 말하는 것을 다 실행하고 지켜라.’

율법학지들과 바리사이들의 역할에 대해서 부정하시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들의 역할은 존귀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하는 일들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분리시키는

역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다가 갈 수 있게 해주는

순 기능 역할을 함을 분명히 말씀 하십니다.

바로 모세의 자리입니다.

모세의 자리는 율법을 해석하는 자리였습니다.

율법의 전문가인 율법학자들은 율법에 대한 해석 그 권위는 인정 하셨던 것입니다.

그 율법의 고유한 해석은 바로 어제 복음이었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된다.

이는 율법에 대한 생명과 시대에 맞는 해석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마라.

그들은 말만하고 실행하지 않는다.

해석은 해주지만 실행은 하지 않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하면서 이웃을 사랑 하라고 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고 이웃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그러한 모습을 분명히 보여 주십니다.

그들은 여러 가지 성경구절을 담고 다니는 성구갑을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잘 띄게 하려고 넓게 만들거나

자리의 상징인 옷자락 술을 길게 늘여 자신을 과시 하였습니다.

즉 성경구절과 갑이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인데 하느님을 드러내기 보다는

하느님을 통해 자신을 더 높이려고 한 것입니다.

즉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실행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도 실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율법의 권위를 두고자 그들은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을 부과하고 있지만

그들은 자신의 손가락 하나 대려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너희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을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는다.

이 말씀은 같은 복음인 마태오 복음 1128절에서 30절까지의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는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어깨에 올려놓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무거운 짐을 진 이스라엘백성들을 기다리시며

그들의 무거운 짐을 가벼운 짐으로 바꿔준다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율법을 삶으로 살아본 적이 없던 아니 처음에는 그러지 않았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위선적인 행동으로 인해 점차 첫 마음을 잃어가고

첫 모습들을 잃어 버렸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었기에

그들은 법만을 알고 있었지 어떻게 삶을 살아가면서 살아가야 할지

구체적인 실천 방법들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방법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의 삶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머리에서 나오는 말들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것뿐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직접 삶으로 사셨기에 율법을 어떻게 삶에서 살아가야 할지

탁상공론이 아닌 뜬 구름 잡는 피상적인 방법도 아닌

구체적이고 실천적이누 방법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 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짐과 멍에는 가볍고 편안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지도자라는 단어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지도자 전 세계적으로 만은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한국에는 한국을 이끌어 가는 대통령 각 정당을 이끌어 나가는 국회의원들

그리고 교회를 이끌어 나가는 교회 지도자들

특히 몇 일전 한국을 방문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떠올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교황님이 한국에 오셔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오셨다고 생각이 듭니다.

특히 고통받고 있는 이들 소외된 이들 사회가 미쳐 돌보지 못하고 있거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이들의 마음에 말입니다.

특히 세월호 가족들을 만나는 그 모습은

마음을 울리며 눈물을 흘리게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세월호 가족들을 만나는 장면을 단순히 힘없고 딱한 사람들을

돌보아 주고자 다가 가셨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교황님의 문헌을 보면 모세가 신발을 벗고 하느님 앞에 선다고 나옵니다.

사람에 대한 교황님의 생각이 드러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힘없고 약한 사람들을 내가 돌보아야 하는 측은한 사람으로 보는 게 아니라

신발을 벗고 하느님 앞에 서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다가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황님께서 사람들을 당신의 아들딸들을 보는 그러한 마음입니다.

지도자의 마음입니다. 버거운 짐을 그들의 어깨에 올려놓지 않으셨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가지고 있던 무거운 짐들을 모두 들고 가신 것이 아닌가?

아니면 내려놓게 만드신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에 오셔서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갈등들에서 예수님의 복음으로

그 방법들을 제시해 주시며 우리의 짐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가벼운 짐으로

바꿔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교황님을 묵삭하면 든 생각을 그렇다면 한국 가톨릭교회 지도자들은

?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인가? 라는 질문을 제 스스로 던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많이 반성 하게 되었습니다.

수도자이며 사제이기에 더욱더 저 자신의 부끄러움을 감출수가 없었습니다.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신자들의 어깨에 올려놓는 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또 예수님처럼 무겁고 힘겨운 짐을 진이들을 기다리며 첫 번소식의 복음인

가볍고 편한 멍에를 지기를 피하고 있는 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섬김을 받으려고 하는 저의 모습들 참으로 부끄럽고 무거운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마지막 말씀에 머물러 봅니다.

너희가운데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가톨릭 수도자이며 사제인 저 뿐만 아니라 이 땅을 밟고 계시는

모든 사제이며 수도자 교회의 어르신 성직자 분들 오늘 이 말씀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되지 않을 것인가 생각해 봅니다.

만약 교회의 모습을 잃고 있다면 반성과 깊은 성찰을 통해

교황님께서 전해 주셨던 그리고 본질적으로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전해 주셨던 그 교회 지도자 모습을 찾아 나서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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