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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4일 강정

2014.08.05 20:33

자발적 가난 조회 수:101

하느님 창조사업의 완성은 평화입니다.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2014 평화 대행진이 지난 29일 시작되었습니다.

참가인원은 450명 더하기 알파 라고 합니다.

당일 오전에 참석하여 저녁 시간 전에 빠진 사람들을 모두 포함하면

참가인원은 500명이 훨씬 넘습니다.

43의 유적지와 함께한 이번 순례는 참석한 많은 분들에게도

의미가 있었지만 마을 주민들과 평화 지킴이들에게 너무나

큰 의지와 연대의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태풍으로 하루 이틀 더 묵는 분들은 미사와 인간띠 잇기에

함께 해주셨습니다.

모두가 평화를 위한 한 마음을 가장 평화롭고 즐겁게 나누는 2014

강정 생명 평화 대행진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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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일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주례 강론 박동호

안녕하십니까?

오늘 독서 말씀 또 복음 말씀을 성찰하면서 두 가지 내용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는 예레미아서 말씀 가운데 거짓 예언자 하난야와 예레미아 사이

나눈 이야기를 놓고 성찰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베드로의 태도를 놓고 성찰 한 것입니다.

우선주님께서 예레미아를 통해서 하난야에게 말한 내용인데요.

너는 나무 멍에를 부수고 그 대신에 쇠 멍에를 만들었다.”

거짓 예언자의 행태이죠.

거짓 예언자는 멍에를 부순 것 같아서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고

존경을 받고 때로는 환호 박수갈채를 받았을 지도 모릅니다.

오늘 하난야는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 바빌론 임금의 멍에를 부숴서

유배 간 이스라엘을 해방 시킬 것이라는 예언을 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아마 이 말을 듣고 이스라엘은 참 기뻤을 것입니다.

나무 멍에를 부수었으니까 드디어 해방과 자유라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하난야 예언자야 말로 그들이 학수고대 했던 메시지를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 하난야에게 나무멍에는 부쉈는데

그 대신데 쇠 멍에를 만들어서 씌웠다고 그렇게 그의 거짓을 질책합니다.

그런 나무멍에를 부수고 더 무거운 쇠 멍에를 만들어 씌운

일에 대한 준엄한 질책이겠죠.

저는 이 말씀을 예례미아와 하난야 사이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짧은 근 현대사를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의 지도자 들은 이 땅의 백성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고통을 시련을

극복하는 데 내가 한 몫을 하겠다고 나섰죠.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나무멍에를 부수어 주는 것처럼

그렇게 온갖 언사를 다 동원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100동안의 우리의 근 현대사를 살펴보면

끊임없이 나무멍에를 부수어 주는 미끼를 내던지고 그 대신에

더 무거운 쇠 멍에를 씌웠던 것 같습니다.

이 자리에서 여러 차례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구한말에 대한제국 시절에 을사늑약을 통해서 외교권과 국방권을

일제에 넘긴 사람들도 바로 이 명분이었습니다.

당시에 여러 강대국이 있었는데 그 강대국 가운데 일본편에 서는 것이

나무멍에를 벗어던지는 유일한 길이라고 그 오부 대신이 늑약을 맺은 것이죠.

그 명분은 이 땅에 이 천만 조선 우리의 조상들이 나무멍에 던지기였습니다.

그런데 그러고 났는데 35년 일제 강점기동안 이 땅 곳곳과

이 땅의 우리의 앞선 어른들에 돌아간 것은 쇠 멍에 였습니다.

그리고 그 쇠 멍에의 상처는 오늘날까지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고

그리고 그 다음에 516 군사정변 구테타를 했던 사람들도

이 땅의 혼란 무질서 때문에 겪는 시련을 이겨 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을 내가 열어주겠다고 말하자면 나무 멍에를 내가 부숴 주겠다고

그 사람들이 남겨 놓은 것도 나무멍에는 부쉈지만 군사정권

20여년 이상이 되는 그 기간 동안에 시민들에게 쇠 멍에를 얹어 놓은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사이에 잘 살게 해 주겠다.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 주겠다.

이른바 조국 근대화 빈곤의 멍에를 벗겨주겠다고 나섰지만

남은 것은 쇠 멍에입니다.

비록 짧은 기간입니다 만은 5년 동안 이명박 대통령도 747공약을 내놓고

남겨놓은 것은 쇠 멍에고 지금의 대통령도 국가 혁신 경제 활성화라고 해서

우리에게 얹은 나무 멍에를 부숴주겠다고 하지만 보이는 조짐은 쇠 멍에입니다.

우리의 경우를 보면 이렇게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그리고 이 금력 돈을 탐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나무멍에를 부숴 주겠다고 현혹 했고 그리고 우리는 이겨내지 못했고

그리고 남은 것은 쇠 멍에의 아픈 무거운 짐이고 그렇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우리 교회 신앙인은 무엇을 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 베드로에게서 그 태도를 보게 되는데 베드로는 예수니께서

물위를 걸어오라고 했을 때 걸어봅니다.

우리 교회도 그랬을 겁니다.

주님께서 가자는 대로 갔을 것이고 오라는 데로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 졌죠.

베드로는 물어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거센 바람을 교회는 만났을 때 두려웠고 그래서 물에 빠져 들었고

그리고 물어빠져 들어 보니까 그런 대로 살만 한 것이죠.

비유적으로 물에 빠지면 죽는 거지만 그 거센 쇠 멍에를 짊어진 현실

쇠 멍에를 짊어지지 않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지내고 보니까

금력과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종교 권력을 보장해 주는 대신에

쇠 멍에를 얹어주지 않은 거죠.

댓가로 편안함이라든지 부 라는가 좋게 말하면 종교자유를 보장해 주는 대신에

현실에 보통 사람들이 겪는 쇠 멍에 고통에 대해서 침묵하라는 요구에

우리교회는 특히 이 땅의 천주교회는 침묵했던 거 같습니다.

그렇게 침묵하니까 괜찮은 거죠.

사람들은 쇠 멍에 때문에 신음을 하지만 교회는 보장을 받은 자리에서

그저 성당을 찾고 교회를 찾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찬미하도록 하면

그것으로 마치 모든 임무를 다했다는 듯이 끝 한 것이죠.

그래서 베드로의 모습이 거센 바람을 보고 한편의 두려움 두 번째로는

현실에 눈을 감는 것에 뒤 따라온 댓가 편리함 안이 풍요로움.

좋게 말해서 성장 이런 것에 대한 그 달콤함에서

한편에서는 두려움으로 현실에 마주쳤을 때 겪어야 하는 쇠 멍에를

짊어지기가 두려워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 이 쇠 멍에의 바다 속에서

가만히 있어 보니까 누리게 되는 편리함과 또 편함과 풍요로움과 성장의

달콤함 이 둘 두려움과 달콤함 사이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이 교회 모습을 보게 됩니다.

물론 이 가운데 언론도 큰 몫을 했겠고 우리 사회 지식사회도

큰 몫을 했을 것입니다.

그 결과는 뭐냐 하면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쇠 멍에를 짊어지고

오늘 복음에서 말 한 것처럼 집안의 모든 지방으로 사람들을 보내보니까

병든 이들이 곳곳에 널려있는 형국이 되는 것이고 그래서

옷자락의 술에 손이라도 대면 낳고 싶었던 절박한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대신에 하난야 같은 거짓 예언자 거짓 지식인

거짓 언론인들이 금력과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힘을 합하여

모든 민족들에게 쇠 멍에를 씌우고 대신 자기들은 편안한 평화로운

안위의 길을 가고 있는 형국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베드로는 오늘 물속에 빠지면서 주님 저를 구해주십시오!”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우리 교회가 지금 이 현실에서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주님께 구해 달라고 탄원하는 것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만 저희를 구해 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두려움 때문에 혹은 편안함 때문에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그 동안에 수많은 예수님의 형제자매들이

그 분의 옷자락 술에 손이라도 대려고 지금 몸부림 치고 있음을

우리는 한 순간 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비록 두려움 때문에 혹은 달콤함 때문에 손을 내려 놨다면

지금 이 순간이 주님 교회를 주님 저희를 구해주십시오!” 하고

소리 지를 때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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