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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부활은 자신을 미워하고 배척한 이들을 용서하고 목숨까지 내어놓으며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에게 하느님 아버지께서 내리신 응답이요, 선물이었습니다. 동족과 제자들에게까지 버림받은 십자가의 치욕적인 죽음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고통이요, 불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죽음을 받아들이셨기에 영원히 죽지 않을 새로운 생명을 얻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생명을 탄생시킨 역설이었습니다.


지금 지구촌 주민들은 전대미문의 돌림병 재앙을 맞아 고통과 공포에 시달리는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3개월 사이에 코로나19 바이러스는 120만 명을 감염시키고, 7만 명 가까운 사람이 죽음을 맞는 대재앙을 초래하였습니다. 병 자체가 동반하는 고통과 죽음도 두렵지만, 모든 나라가 국경을 폐쇄하고 사람의 여행과 물자의 유통을 통제함으로써 야기되는 부작용은 근래에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경제공황으로 다가와, 우리를 더욱 큰 불안과 공포로 움츠러들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재앙과 더불어 지난 한 달 사이에 지구상에 예측하지 못한 신기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푸른 하늘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해마다 봄철이 되면 미세먼지로 뿌옇게 회칠한 하늘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금년 봄에는 우리 몸과 마음을 시원하게 씻어주는 푸른 하늘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공장 굴뚝이 내뿜던 연기가 줄어드니 하늘이 제 색깔을 되찾고 있습니다. 하늘 높이 대형 항공기들이 줄을 이어 흘리고 다니던 배기가스 비행운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길거리의 자동차 통행량이 줄어드니 사고도 줄고 출퇴근 시간도 줄었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범죄율도 많이 감소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인간에게 보금자리를 빼앗겨 사라졌던 야생동물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야생 염소 떼가 마을에 내려와 정원의 풀을 뜯고 교회 묘지에서 잠을 자고, 칠레에서는 퓨마가 거리를 돌아다니다 포획되어 동물원에 옮겨졌습니다. 수많은 관광객이 찾던 인도의 한 해변에서는 관광객들의 출입이 통제되면서 80만 마리의 바다거북이들이 알을 낳기 위해 둥지를 틀었습니다. 이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놀라운 일은 좀처럼 전투를 멈추지 못하던 세계의 분쟁지역에서 어쩔 수 없이 무기를 내려놓고 휴전에 합의하고 있습니다. 대양을 항해하며 가공할 화력을 과시하던 거대한 항공모함이 항구에 닻을 내리고 아픈 군인들을 뭍에 내려놓았습니다. 어떤 정치가도, 외교관도, 과학자도 해내지 못한 일을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들이 해냈습니다. 시편 저자와 함께 소리 높여 주님께 찬양 노래를 읊고 싶습니다. 


“와서 보아라, 주님의 업적을,
세상에 놀라운 일을 이루신 그분의 업적을!
그분께서 세상 끝까지 전쟁을 그치게 하시고 활을 꺾고 창을 부러뜨리시며 병거를 불에 살라 버리시네.”(시편 46,9-10)


그동안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세계가 산업화의 기치 아래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여 더 큰 성장을 이루도록 끊임없이 인류를 유혹하고 압박해 왔습니다. 그러나 성장과 발전을 지상과제로 하는 경제정책은 지구의 자원과 생태계의 질서를 무너트려 왔고 인간과 피조물 모두가 한계에 이르러 울부짖게 되었습니다. 세계의 지도자들도 지구의 유한한 자원을 고갈시켜온 성장 전략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음을 함께 인지하고, 1997년 유엔 가입국 대부분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기후변화협약(교토 의정서)에 합의하였습니다. 하지만 화석연료 소비를 줄이지 못하겠다는 몇몇 강대국들의 불참으로 이 협약은 실질적인 효과를 크게 거두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2015년 기후위기의 초침이 사정없이 돌아가고 있음을 공유한 195개국의 대표들은, 각국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스스로 정해 국제사회에 약속하고 구속력 있는 국제법으로 제정하는 데 합의(파리협약)하였습니다. 2020년 12월에는 각국 대표들이 다시 스코틀랜드에 모여 파리협약의 세부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정하고 모든 나라가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일제히 출범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국가 이기주의와 선진국, 개도국의 입장 차이가 상충하여 계획이 과연 온전히 실천 단계에 진입할 수 있을지 확실치 않습니다. 


지구의 미래와 우리 후손들의 생존이 경각에 달린 위기의 순간에도 각자의 아집과 탐욕의 굴레를 좀처럼 벗어던지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인간들을 향해 지구 생태계는 바로 지금 바이러스를 통해 엄중한 경고장을 보내온 것 같습니다. 근래의 엄청난 전염력과 독성을 띤 신종 바이러스들은 자력으로 여러 대륙에 퍼져나간 것이 아닙니다. 인간들이 과도한 남획과 개발, 무분별한 유통과 소비로 자연 생태계를 교란하여 사방으로 실어나른 것입니다. 박쥐의 죄도 아니고 천산갑의 죄도 아닙니다. 인간이 저지른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류에게 당신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을 잘 보존하고 지키도록 맡기셨습니다. 그런데 인류는 관리인에 지나지 않으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과 책임을 남용하여 주인행세를 하며, 피조물들을 멋대로 약탈하고 멸종시켜 왔습니다. 이 횡포를 멈추지 않으면 우리 인간도 다른 피조물들과 함께 멸종될 수밖에 없습니다. 


코로나19 감염증으로 세상을 떠난 7만여 희생자들의 죽음은 인류 전체를 향한 계고장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희생자들의 죽음을 통하여 인류 전체가 자신의 오만과 무절제를 통회하고 피조물 하나하나에 대한 경외와 존중으로 생태계 전체와 화해하여 주님이 마련하실 부활의 새 생명으로 넘어가도록 초대하고 계십니다.


바이러스에 너무 위축되거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들은 주님의 수많은 피조물 중에서 가장 작은 미물입니다. 주님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는 하늘의 새들을 먹이시고, 일하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 나리꽃을 솔로몬보다 잘 입히시는 분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이들보다 우리를 훨씬 더 귀하게 여기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당신 아드님을 십자가에 돌아가게까지 하셨습니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부활시키신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부활하신 주 예수님의 평화가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20.4.12.     

주님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제주 교구 감목
                                                                강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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